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딤전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본문을 중심으로 중보자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매 주일마나 1부예배 시에 케이블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부예배에 참으로 신경이 쓰여서 설교를 잘못하였습니다. 그 원인을 우리 전도사님이 찾으려고 노력하였고 그리고 범섭형제에게 물어보니 중간에 있는 짹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아서 영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영상과 그리고 미가엘 반주기에서 나오는 영상을 연결해주는 선이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어도 그 장비가 바르게 연결되어있지 못하면 그 물건을 바르게 사용할 수없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중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 3: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성경에서 6번 나옵니다. 중보자라는 헬라어는 메시텐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좀더 쉽게 중보자라는 뜻은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할 때에 중보자 (보증인)이 있어여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그 보증인을 믿고 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뜻은 어떤 건물을 사거나 전세로 계약할 때에 그 건물의 주인과 그 건물을 사려는 사람과 중개하는 중개인(복덕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라는 말씀처럼 속전이라는 헬라어 원어로는 안틸뤼트론입니다. 안틸은 대신해서, 뤼트론은 풀어주다른 뜻입니다. 즉 제 3자가 대신 지불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즉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를 속전하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을 통하여 기도의 중보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첫 번째로 예수님처럼 중보기도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종류는 4가지가 있는데
1) 간구 – 구체적인 기도 (마7:7-9) 즉, 이 기도는 우리의 제목기도입니다. 김갑희 권사님을 위하여, 구자현집사님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는 기도가 간구 기도입니다.
2) 기도 – 공적 기도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기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3) 도고 – 중보 기도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Vision 넓어진다.”
4) 감사 – 믿음의 기도 (빌4:6-7) 근심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어도 기도하기 시작하면 감사로 마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중보기도자의 모습을 성경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4절에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 중에서 처음 예수 믿는 다고 고난을 많이 당하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아내를 심하게 때리고, 예수 믿는다고 협박하고 멍석으로 때리고 그리고 심지어 솥가마 속에 넣어버리는 간증도 들어보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하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시는것입니다.
성경에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기도의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을 쫒아가야합니다. 복은 누가 복입니까? 복있는 예배중심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합니다. 사귀어도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습니다. 롯도 복을 받았습니다. 육축과 양식에 복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보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저 같으면 아브라함 작은아버지여 먼저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다음으로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할 것인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늘 아브라함은 롯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롯을 위하여 하나님께 6번 중보기도하였습니다. 50사람, 45사람, 40사람, 30사람, 20사람, 10사람까지 중보기도하였습니다. 멸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롯과 그의 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2) 아론과 훌과 함께 나라의 전쟁중에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 그 손을 역사하시사 여호수아가 이기게 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모든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비로 내가 그분을 투표하지 않았어도.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중보자는 바로 예수님처럼 영혼사랑하는 구원의 중보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전체적으로 흐른 것은 바로 중보기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좀더 더 자세히 들어가면 예수님의 중보와 그리고 세상의 중보에 대한 내용도 나옵니다. 두 번쩨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있는 것은 ‘구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세기 칼빈주의자들 (장로교)과 알미니안주의 (감리교, 순복음)사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들만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감리교인들은 만민구원설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준비되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믿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예정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있는 구원은 일본사람도 그리고 북한 사람도 다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 그리고 남성들 밑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중동의 여성들, 그리고 질병과 가난의 저주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바로 페니미즘이라는 단어입니다. 페니미즘은 바로 남성 우월주위에서 여성 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 전에는 모든 사회는 남성이 위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랍비들은 지금도 감사는 것이 첫째로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드리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페니미즘이라는 뜻을 알고 계십니까? 남성우울적인 사상이 여성과 함께하는 사상으로 바뀌는 것을 페니미즘이라고 합니다. 페니미즘적인 사람들은 사람들이 성, 여권이나 그리고 주민등록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것을 싫어합니다.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젠더라는 것입니다. 성적인 구별이 없이 중성과 같은 것입니다. 요즘 우리사회에도 하리수와 같은 사람은 남성이 여성으로 바뀌어서 트렌스젠더라고 하는 것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페니미즘주의적인 사람들이 여성상위시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문화가 들어가는 곳마다 노예를 해방시키고, 성적으로 탄합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비록 최진실은 죽었지만 그녀의 자녀들은 조씨의 성이 아니라 최씨의 성을 갖게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치료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들을 위하여 오지 않고 약한자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같이 아파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그 아품을 같이 느끼셨던 것입니다.
리즈 하월즈는 1879년 영국의 웨일즈에서 태어나 수년간 아프리카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중보기도로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의 중보기도는 사랑과 긍휼의 행동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윌즈가 복음을 전하여 회심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심한 폐병에 결렸습니다. 그 때 하윌즈는 환자와 같이 깊이 아파하면서 그를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그는 ‘만일 내가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내게 그 병을 허락하실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중보기도 대상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부랑자와 고아들을 위해 그들의 삶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중보기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윌즈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통해 중보기도자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늘 핍박하고 그리고 우리교회에 비리를 캐내어서 조사한다는 옆집 박스줍는 아저씨 병원에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책에 반에스더라는 여자 의사가 나옵니다. 워싱턴에서 살고 있는데 갑자기 관절통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견딜수 없을 고통이였습니다. 몸이 쇠약하였습니다. 30살 안되는 나이에 몸이 늘어지고 기력이 없었습니다. 반에스더의 아버지도 43세에 소천했습니다. 할머니도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았습니다. 병력대로라면 반에스더도 질병으로 죽든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보자 예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반드시 치료받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매일 선언하며 기도하였습니다. 3년이 되어도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반에스더의 신앙을 꺽지 못햇습니다. 3년 3개월에 조금씩 낳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상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중보자이 예수 그리스도인신 것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우리 사이에 중보자입니다. 예수님은 화목의 중보자입니다. 죄인과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하나님은 모든 선함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거룩한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긍휼과 선함을 줄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예수님을 통하여 중보자를 통하여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피조세계를 잇는 중보적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하시기 때문에 그를 대표하는 자들인 우리도 다른 사람과 피조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 9절과 18장 18절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 중간 문헌에 보면 이 “매고 푼다“는 말이 사단을 결박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일차적으로 “하늘과 땅은 상관관계가 있다”, 즉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불안전한 것 같지만 지금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중보기관의 성전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인간의 아버지처럼 엄하시고 공의로운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사랑과 용서의 어머니로서 삶을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우정의 무대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중에 마지막 부분에 어머니를 찾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많은 장병들이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때에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서 아들아 부르면 여러분 얼마나 어색하시겠습니다. 아들의 중보자는 바로 어머니인것입니다. 군생활 가운데 어머니 은혜를 부르면 모든 장정들이 다 웁니다.
우리는 3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합니다.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헌신하고 봉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든지 성공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되어야 저도 잘되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에게 인정받기가 어렵고 힘듭니다. 이 분들은 우리를 잘되기를 바라는 분들입니다.
목회자가 마치 어머니와 같은 심정입니다. 여러분 여성이라고 다 젖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들이라고 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녀를 낳아야 그 젖이 나오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말씀의 신령한 젖이 나오기 위하여 성도들 사랑하고 중보자가 되어야합니다. 구역장도 마찮가지입니다.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을 나타내려면 그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능력을 큰 능력을 사람들을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전도되면 우리가 성도가 낳게되면 우리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홍철기목사에게 신령한 젖을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성도들과 우리 청년들에게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교회의 중보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나이드시는 분들은 밤이고 낮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교회를 도와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때나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기 보다는 여러분들의 전공을 살려 하나님게 영광돌렸으면 합니다.
우리 범섭이 컴퓨터 공학과 그리고 빛나와 언론정보학과 그리고 우리 용희자매 얼마나 감동적인 말주변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사이버 공간이 열려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늘 제 블러그에 올립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서 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항 그들을 사이버로 후원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많은 후원하고 있는 정연준 장로님 사우디에서 파송받아서 10년을 제타지역에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예배도 드릴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할 수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인터넷 도메인이 필요하면 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자유롭게 들어와서 설교를 읽고 그리고 듣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