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총 66권입니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는 구약,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40장부터 66장까지는 이스라엘 회복, 위로에 대한 말씀입니다. 신학자 중에 어떤 이는 39장까지는 이사야가 쓰고, 40장 이후는 다른 사람이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완전이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왜 위로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36년동안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70년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큰 위로가 필요하겠습니까?
요즘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고,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 드림에 인터넷으로 예배드리게 됨으로 지금도 젊은이들은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2, 무엇으로 위로를 삼아야합니까?
영원한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합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영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들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붙잡혀야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말씀를 붙잡아야 합니다.
영원한 차원이 있는 하나님은 영원하지 않는 차원을 다스립니다. 1차원의 식물들은 2차원의 동물들에 의하여 지배를 받습니다. 동물들은 식물들을 먹이로 풀을 먹습니다. 동물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지배를 받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사자 호랑이 곰이라도 사람들이 그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3차원을 살아가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4차원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4차원의 삶을 살아 갑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나라들이 잘 삽니다. 미국 케나다, 유럽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자연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잘 살고 경제적으로 낮은 나라를 다스리며 살아갑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장 1절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어떻게 위로하라고 합니까?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이 끝났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사역 희년를 외치는 것입니다.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외치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사함을 받은 우리가 외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벌이 무엇입니까? 형벌을 다 치루웠다는 뜻입니다.
설마 노역과 죄악과 벌을 끝났을까 하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형벌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주의 종을 통하여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고합니다. 마음에 와 닿도록 평강이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외처야합니까?
이사야 40장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외치는 자가 누구인가? 이사야가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곳의 천사가 이사야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사야에게, 신약에서는 세례요한에게, 오늘날은 주의 종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광야와 사막에서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신광야에서 바벨론 포시에는 출애굽기와 같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세례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거나, 왕이 어느 지역을 가기 전에 선발대가 길을 예배하고 보호하는 개념입니다.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심을 준비하고 길을 평탄케한 것 처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면 재림을 주님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1년 한번 대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과 만남을 갖는데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는 모든 성도들이 언제든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예배합니다. 그렇게 열어놓은 길들을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에 찾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성도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습관이 되어서 인테넷 유튜브를 통하여 예배드립니다.
골짜기가 낮아졌기 때문에 높아지게 만들고, 산과 언덕은 높아졌기 대문에 낮아지게 하고 평탄한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낼 때에 골짜기에 교각을 설치하여 평탄하게 하고, 산을 터널을 뚤어서 길을 평탄게합니다.
세례요한이 이처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실 때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죄 용서를 위하여 세계를 베풀었으며, 겸손한 자리, 회개의 자리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소개하였으면 그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여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주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식을 통하여 보여주셨지만 예수님은 영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장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교회에서 부활주일과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놓은 화분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입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4000년전에 구원의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오시기 전 아브라함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지 않았지만 구원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구원의 강물이 이방인에게까지 임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게 까지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지 못했거나, 알면서 육신의 정욕 때문에 말씀을 거부하한 사람들은 100%가 영육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울할 때나, 절망할 때나 상관없이 그 말씀은 항성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곳은 언제나 치료가 임하고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산 소망되신 예수님를 모시고 가는 길 속에 우리에게 살아있는 기적들이 오늘날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제물포항 부활주일 아침)
오늘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살아있는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합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무엇을 외칩니까? 아름다운 소식를 외처야합니다.
이사야 40장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의 말씀처럼 양 떼를 위하여 양 팔로 모아 품으시고 안아 주신는 모습입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맹수와 싸우시는 모습은 마치 다윗의 어린 시절 목동을 대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읽어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가도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종진선교사님의 글 인용으로 마칩니다.
선교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성호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그가 차고 있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저를 처음 몽골로 파송한 교회는 송천교회입니다. 당시 송천교회는 김여일 목사님께서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의 아들 김성호군은 2000년 7월 외항선교회에서 모집하는 단기팀의 일원으로 몽골을 방문했습니다. 이 선교 단기팀은 으블항가이도의 수도인 아르바이헤르에 있는 영원한 구원의 별 교회에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이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서남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곳이고, 몽골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교회의 낡은 지붕을 수리하는 일이 이 단기팀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붕수리를 마치고 내려오던 중에 김성호군은 공중에 방치되었던 전선에 가슴부위가 닿으면서 심장마비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당시 단기선교팀으로 함께 동행했던 팀원들에 의해서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우현 감독의 ‘부흥의 여정’이란 책에 첨부된 DVD 영상에 담겨있습니다. 아마 기독교 2000년 역사중에 순교의 장면이 기록된 많지 않은 자료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거룩한 죽음이 계기가 되어 저와 저의 가족이 2002년 4월에 파송 예배를 드리고 5월에 몽골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 1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008년부터는 종교교회(최이우 목사님)의 파송선교사로 몽골의 이곳 저곳을 오가고 있습니다.
2008년 6월에 고 김성호군의 부모님인 김여일/조영희 선교사는 몽골로 파송되어 선교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30여년의 목회를 5년 먼저 자원은퇴하고 아들이 묻힌 몽골사역을 위해 헌신한 것입니다. 현재 김여일/조영희 선교사님은 몽골 감리교신학교에서 학장으로 그리고 학생들을 돌보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31일, 저는 카나다광림교회 목사님(김태원)과 교우들을 모시고 으블항가이도 중바양올랑 솜(군)에 개척된(2008년, 어린양교회 5주년기념교회) 어린양교회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왕복 900km의 여정에 김여일 선교사님 부부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제가 몽골에 파송되어 개척한 10번째의 교회 봉헌예배입니다. 이 교회는 카나다광림교회의 후원으로 건물을 짓고 하나님의 교회로 봉헌되었습니다.
봉헌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김여일 선교사님은 자신의 낡은 시계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이미 줄이 다 닳아서 다시 줄을 갈면 4번째라고 합니다. 시계는 평범해서 오랫동안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였지만 이 시계가 그분에게는 참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12년전 7월 11일. 몽골로부터 전해져 온 비보. 선교여행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전해듣고 달려간 그 몽골의 중앙내륙 오지. 아들의 심장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아들의 굳어버린 손목에 채워진 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의 심장은 이 땅에서 더 이상 뛰지 않지만, 그가 이 땅에 와서 이루고자 했던 그 하나님의 선교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가게 해야 한다는 그 일념으로 김여일/조영희 선교사님은 몽골선교를 돕고 후원하였고 저도 하나님의 선교의 시계가 뛰는 일에 종으로서 부름받아 일터에서 뛰어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