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월 1일부터 새해 신년 성회 때에 강사 목사님으로 오신 이준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성산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교단입니다. 보수 중에 극보수의 교단입니다. 교회에서 키타나 피아노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단입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악기파와 무악기파로 나누워있다고합니다. 무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성경에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0절, 사도행전 16장 25절, 로마서 15장 9절, 고린도전서 14장 15절, 야고보서 5장 13절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번이라도 금식하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금식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는 금식기도가 제일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 응답이 빠릅니다. 이 보다 더 빠른 것은 작정예배입니다. 합심하여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빠른 것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당시에도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금식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세인들입니다. 지금도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이틀 (월요일, 목요일날) 금식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실 때에 말씀입니다. 레위는 누구인가?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을 때에 그 마태인 것입니다. 마태의 직업은 세관, 세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데아오마이) 일반적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고 관심있게 주의 깊게 응시하여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보시고 레위는 세리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예수님도 계셨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리세인들이 본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가난한 자 세상에서 손 꼬락질 받는 사람들과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시고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특별히 세례요한의 제자들까지 금식하지 않고 잔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에 경건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레위는 이제 죄인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초보의 제자입니다. 수준 높은 눈으로 보는 바리세인들에게는 하수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시비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신랑이 있을 때에는 금식할 필요없다. 신랑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난 뒤에 그 때에 금식하여도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 처음으로 오시는 정명순 성도님이 계십니까? 그분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합당합니까? 이제 겨우 주일성수하고 있는 엄인식 성도님에게 금식하라고 하면 합당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신앙이 들어가고 난 뒤에 어는 정도 믿음이 굳건해지고 난 뒤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처음 온 성도님들에게 십일조를 강조하고 우리 교회 처음 나온 성도님들에게 헌금을 강조하면 금방 신앙을 포기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이 형성되고 난 뒤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대리고 와서 모세의 율법에는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이 여인에게 죄를 용서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숙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술 담배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의 입장은 그러합니다. 초신자에게는 조금 문을 열어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강압적으로 술 담배를 금하기 보다는 믿음이 조금 들어가고 난 뒤에도 얼마든지 금주 금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홍보라매 장로님입니다.
우리 정서남 권사님의 딸 빛나와의 예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교회 오는 문제입니다. 권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때니까? 조금 기다리면 결혼하면 자신이 스스로 고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빛나와 자매를 만날 때에는 고등학교 3학년인데 지금은 결혼하여 40대입니다. 지금은 입으라고 하여도 입지 않습니다. 다 때와 기한이 있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16절)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여러분들 중에 명품 옷을 입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입 중에 명품옷 수입이 그렇게 많다고합니다. 명품의 옷을 입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오래가고, 둘째는 명품이기 때문에 자랑하면서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이 명품이 오래되어서 몇가지 흠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천 조각으로 낡은 옷에 붙이면 그 옷이 잡아 당기어 해어짐이 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
옛날에도 좋은 옷들이 있습니다. 자색옷입니다. 구약시대의 야곱의 아들 요셉은 4가지 옷을 입었습니다. 첫째는 권위의 상징인 채색옷입니다. 두번째는 종의 옷입니다. 세번째는 죄수의 옷입니다. 네번째는 꿈의 실현으로 입은 옷 세마포 옷입니다. 신약시대에도 부자의 옷이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생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색옷은 귀족이나 제사장이 입던 겉옷이고, 고운 베옷은 속옷입니다.
지금 시대의 옷은 어떤 옷이 명품입니까? 버버리, 꾸찌, 프라다 그러한 옷들이 좋은 옷들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옷이 있지만 이름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3가지만 열거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생베조각과 낡은 옷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유대교들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옷은 신약입니다. 천주교 시대의 옷들은 명품 옷들입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옷들은 새로운 옷들입니다. 지금 시대의 명품 옷들은 개혁주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교단은 제일 늦게 생겨서 새로운 옷(순복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 연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별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나오시는 분들 중에 장로교인도 있고, 감리교 출신인 권사님도 계시고, 침례교회에서 생활하신던 분들이 오셔서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영적인의 의미는 예수님은 생베 조각도 사랑하시고, 낡은 옷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신자도 사랑하시고, 오래 신앙생활하시는 분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교회 성령님이 임재하는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성도들이 거듭남으로 얻어 기존에 잘 다니고 있는 성도들과 융합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할례를 강조하여 신약에서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쫓아다니면서 사도 바울을 핍박한 것은 그들의 전통인 율법과 할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에서 말씀하셨듯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남자의 표피를 잘라서 구분하였다고합니다.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이나 블레셋 족속, 바벨론, 앗시리아 사람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하나님에 대한 계약의 표시로 남자아이 생후 8일째에 할례를 행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율법이 되고 교만이 되어 자신이 선민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개 취급하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정한 할례는 마음의 할례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표피를 벗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종교의식이되었고 선민의식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교의식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섬김의 표시를 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서 교만한 마음으로 정죄하거나 초신자를 판단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초신자도 사랑하시고 오래된 성도님들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예수님 당시에 포도주를 만들 때에 염소 가죽으로 만든 가죽부대를 사용하였습니다. 새 포도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옛날 오래된 포도주를 담는 내용의 말씀이 아닙니다. 새로운 지금 막 만든 포도주를 넣어 두어었을 때에 오래된 가죽 부대는 새포도주가 발효할 때에 터지기 때문입니다. 포도즙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가스가 팽창하여 가죽부대를 부풀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부대는 신축성이 약하여 터지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부대는 신축성이 좋아서 포도주가 팽창할 때에 같이 팽창하고 포도주가 수축할 때에 같이 수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터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오래된 부대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포도주입니다. 오래된 부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새로운 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성령님입니다. 새로운 포도주 성령님을 우리 교회에 받을 때에 새로운 부대로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영으로 임하여서 우리 마음의 부대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부대가 유연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 속에 터집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베드로의 사역 속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새 포도주의 역할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게바가 안디옥에 있을 때에 야고보에게서 어떤 사람들이 이르기 전에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과 식사하고 교제하다가 할례자 유대인들이 오자 두려워하여 외식하면서 식탁의 교제를 물리치는 모습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책망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로인하여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한 성령과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모든것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외식함으로 바나바까지 외식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새 포도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새 부대가 담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기둥같은 사도가 흔들리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가 제대로 된 복음으로 거듭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