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설교를 하다보면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물 중에 약한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토끼입니다. 잠언서에는 사반과 같은 종류입니다.
성격이 차분하고 둔하며 귀가 큽니다. 토끼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에 신경이 날카롭고 스트레스도 쉽게 받습니다. 사람도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끼를 빗대어 놀란 토끼 눈이라고합니다. 우리 주변에 놀란 토끼 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부터 목회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논란 토끼 눈을 가진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꼭 성전에 내려가서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매일 새벽기도회 설교, 주일날, 금요철야 준비하는 설교입니다. 설교를 잘하기 위하여 성경의 본문을 읽고, 또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의미들과 여러가지 다른 목사님들의 생각을 찾아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삶에 적용되는 예화들입니다. 기도로 잘 준비된 설교는 성도들의 가슴을 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목사님과 성도님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가끔식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또 가끔식 부족한 설교를 함으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지 못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얼마나 듣는자의 마음의 밭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옥토의 밭이라고 합니다.
제가 교구장일 때에 지금부터 35년전에 김애순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구역장이였는데 저에게 엉청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당시의 설교는 더 부족한 상태였는데 놀란 토끼눈으로 저의 설교를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내가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우리 사모가 목사님 오른쪽만 보지 말고 좌우로 보면서 가운데도 보고 설교하세요한 기억이 있습니다. 저를 놀란 토끼눈 처럼 바라고보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을 보면 눈을 어디에 둘 수가 없습니다. 시편 42편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새벽에 모든 성도들이 다 피곤하여 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 서둘러서 설교를 마칩니다. 강대상에 성전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그래서 한 두사람 놀란 토끼 눈처럼 저를 보고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옛날에 토끼 눈을 가진 성도들이 인터넷 FACEBook에 자녀들의 모습을 올리 때면 얼마나 자녀들이 대견한지 모릅니다.
요즘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의 설교가 훌륭하다고 하며 설교를 합니다. 정말 제가 들어도 은혜롭고 눈물이 나오는 설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설교를 듣지 않고 설교 못하는 저의 설교를 열심히 듣기 위하여 놀란 토끼 눈을 하면서 저를의 설교를 듣는 모습을 볼 때에 목회자로 행복합니다.
놀란 토끼 눈을 가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세가지를 제시합니다. 1) 칠년 기근 2)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는 것 3) 사흘 동안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손에 징벌 받기를 원합니다. 그로인하여 전염병으로 칠만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2023년 8월까지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3만 5934명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우리나라보다 작은 나라인데 삼일 동안 7만명이 죽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다시 코로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무 코로나를 과민대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에서 예배도 못드리게 하고 성도들을 인터넷으로 예배 드리게 함으로 인터넷 예배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백신들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보고 백신맞은 사람들만 식당에 들어가고 공항에 출입하게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들 중에 하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촌동생 홍용준이가 백신 과민 반응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다윗의 회개
역대상 21장 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전염병으로 칠만명이 죽자 하나님은 뉘우치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뉘위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왜 뉘우치셨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 저자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지 하나님이 뉘우치거나 후회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다윗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됨으로 마음이 아푸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이 양 무리가 무엇을 행하였습니까? 제가 악을 행하였사오니 청하오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라고 회개합니다.
제단을 쌓으소서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진노를 거두기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우리 교회는 예배를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예배하였습니다. 죽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예배가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구청에서 경찰서에 나와서 우리를 감시하여도 우리 교회성도들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다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친밀감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관계가 친밀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의 관계가 친밀했고, 결혼시절에는 배우자의 관계가 친밀했습니다. 지금은 나 혼자있는 시간이 친밀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 하나님의 관계가 친밀하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사님들과 만남도 즐겁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만남이 더 즐겁고 행복합니다.
아라우나 타작마당은 마치 쓰나미 가운데 방파제와 같은 것입니다. 진노의 칼을 멈추게 하는 방패와 같은 것입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역대하 3장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다윗은 선지자 갓의 말을 따라서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영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아라우나 타작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곳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운 곳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모든 저주가 풀어지고, 질병의 저주가 풀어지는 고십니다.
아라우나는 여부스 사람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산지를 점령하기 전부터 살았던 여부스 족속의 사람입니다.
아라우나와 오르난을 같은 말입니다. 아라우나의 축약형 애칭은 오르난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로 로버트는 밥, 윌리암은 빌, 토마스는 톰으로 부른 것입니다. 오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III. 다윗은 돈 주고 샀습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갓 선지자의 명령을 받아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쌓으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돈 주고 샀습니다. 돈 주고 사려는 다윗에게 아라우나는 거저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굳이 다윗은 돈주고 샀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8절에 보면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관계였을 때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신중하게 생각하여 댓가를 지불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도 성원순복음교회 오면서 이 곳의 땅 문서를 서류를 꼭 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나, 다른 사람들이, 법적인 문제가 형성될 때에 이 문서와 서류를 들고 있으므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곳에 땅 값을 지불한 이유는 세를 살면서 목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가 점점 올라가고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질 때를 대비하여 땅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얼마 주고 샀습니까?
사무엘하 24장 24절에는 은 50세겔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1장 25절에는 금 600세겔을 지불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금 600세겔은 부지 전체의 가격입니다. 희생제물의 가장 중심은 타작마당의 장소입니다. 소들, 장작들입니다. 이것이 약 은 50세겔입니다. 역대상 21장 25절에는 희생제물을 드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마당과 그것에 필요한 주변 땅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1:22절 “그때에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마당이 있는 곳을 내게 주라. 내가 그 안에서 주께 제단을 쌓으리니 너는 충분한 값을 받고 그것을 내게 주라…”
대부분의 주의 종들은 꽁자로 주면 아무런 답변없이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주의 종들은 그 댓가를 지불해야 주의 종도 복을 받습니다. 공짜로 먹는 것도 좋치 않지만, 억지로 성도에게 손해를 끼치며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지불하는 이유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돈 주고 사는 이유는 소유권의 이전입니다. 다윗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영구적으로 소유권이 다윗에게 있습니다. 다윗의 자녀들이 어려움 당하여 땅에 대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희년이 되면 소유권이 다윗의 가족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냥 우리에게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인하여 우리를 속량하시고 죄사하여 주셨습니다. 은 30냥으로 팔리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은 자신의 온 몸과 영혼을 다드렸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꽁자로 받지만 은혜를 주기까지는 많은 희생의 댓가가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거저주는 것이지만 그 속량은 엉청난 지불의 댓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솔로몬의 성전이 되고, 솔로몬의 성전에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 성전이 허물어졌지만 삼일만에 예수님의 성전을 지으심으로 새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우리가 예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