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4월 2일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신약 바울 서신 중에 제일 먼저 기록 된 것이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마지막에 기록된 것이 디모데서입니다. 디모데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옥중 서신입니다.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당시에 사람의 생명은 파리 목숨과 같았습니다. 종말론적인 편지요. 유서 같은 편지입니다.

둘째는 디모데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디모데 한 사람을 위해서 주시는 편지입니다. ‘나’ 라는 말이 디모데서에 1274회 반복되어 나옵니다.

셋째, 목회서신입니다.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목회할 것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목회의 멘토로서 디모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우리 구주 하나님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하나님이 그 신앙고백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신앙고백이 분명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나 마나입니다. 신앙고백이 있어야 헌신하고, 신앙고백이 있어야 물질도 드리고, 신앙고백이 있어야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소망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도 산소망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소망이 예수님입니다. 살아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이땅에 대한민국에 와서 헌신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어린 자녀를 위하여 생명을 던졌습니다.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대한민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다. 그의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 대부분의 자료에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차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앞바다(혹은 목포 앞바다)에서 충돌사고로 익사하였다”고 되어있다. 또한 사고당시 아펜젤러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한국인 조사와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영웅적으로 죽어간 순교자적 인물로 묘사 및 평가되어왔다.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까? 요즘 국회의원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당 대표로부터, 대통령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주변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입니다. 그러나 사도라고 발히는 이유는 자신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1) 근원이 누구냐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 근원이 바로 예수님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능력이 나오고 힘이나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이만희에게 나왔다. 스스로 계시를 받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베드로사도, 안드레 사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하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난 분은 예수님이고 그분에 의하여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참 아들 디모데

2절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솔찍하게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참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들도 다 아들이 아닙니다. 못된 아들이 있고, 효도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디모데는 참아들입니다. 영적인 아들이며, 순종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부모의 걱정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크고 나면 자신의 고집있어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통거리를 만들고 근심 거리를 만듭니다. 프랑스 속담에 자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사람도 불행하지 않다고하였습니다.

미국의 전도자 무디는 자기의 생일을 묻는 이에게 항상 자신에게는 두 가지 생일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하나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육신의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를 믿고 거듭난 날이라고 했다.우리 크리스천은 모두 이 두 가지의 생일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두 가지의 삶을 누리고 있다.하나는 생리적인 삶 곧 육체적인 생명이요, 또 하나는 신앙적인 삶 곧 영적인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육적인 생명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육신의 생명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전부 3000여원어치에 해당하는 값싼 것이라고 한다.호흡이 끊어지면 죽고 만다.우리는 죽고 나면 한줌의 흙으로 변한다.아무리 얼굴이 아름다워도 얼마 안가서 주름이 지고 만다.시편 90편은 ‘인생은 70이 지나면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이슬처럼 이 땅에서 사라지는 존재’라고 했다. 성경의 주제는 참 생명이다.육신의 생명이 아닌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이 성경의 주제다.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우리 교회 옆에 세탁소가 있습니다. (딸에게 모든 유산 물려주었습니다)

로마에는 바울의 성당이 있습니다. 그 한 가운데는 바울의 시체가 있습니다. 바울의 시체 밑에 디모데의 시체가 있습니다. 죽는데까지 따라갔습니다. 바울이 죽은 밑에 디모데를 묻었습니다. 그만큼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합니다.

  •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

  1.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주의 종이였습니다. 그곳에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의 헬라철학과 영지주의 이단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에덴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철학적으로 가르치다가 교회가 형성되지 않고 복음이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와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증거하니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공생애를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면 부활하여 우리에게 산소망을 주신 분이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만 가르치는 것이 복음입니다.

또한 다른 복음은 유대인들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가르쳐 복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을 준수해야 진정한 복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례를 받고 모세의 복음을 받아야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1.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라

몰두하다라는 말은 딱 붙어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와 족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몰두하다라는 말은 무엇에 집중하다는 것입니다. 신화와 족보에 집중하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합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족보에 집중하였습니다. 제가 몇년 전에 남양홍씨 문정공파로부터 족보를 만들게 돈을 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붙이지 않았습니다. 족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리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부안에 가서 문중 땅과 여러가지 문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그리스도 신화와 로마신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화를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닙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미화된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것입니다.

반면 십자가는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정말로 열어주시는 말씀입니다. 김일성, 김정은

용비어천가에 보면 이성계의 조상을 성인처럼 만듭니다. 이것을 끝없는 족보라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은을 백두혈통으로 미화합니다.

김일성은 북한의 중학교 5학년 사상교육서 등 교과서들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이곳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조직인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김정일을 ‘백두산의 아들’, ‘하늘이 낸 옥동자’ 등으로 치켜세우며 “탄생 소식이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고 일제 놈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불안을 주었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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