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사도 바울이 개종할 때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그에게 다가오는 얼마나 많은 핍박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1) 율법과 할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갈라디아 4장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2) 사도 바울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적대적이였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고를 위하여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것, 즉 어둠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옮겨간 것의 한 가지 표시는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요일 3:14).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그러한 변화의 증거를 봅니다.
우리나라 개화기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쫓겨난” 후에 그들을 만나 교제하고 싶은 큰 열망을 드러냅니다.
사도행전 17장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한 일을 언급합니다. 그로 인해 그 도시는 소란을 일으켰고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 도시를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가 데살로니가를 떠난 것은 그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강요한 일이었습니다. 사도와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은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의 심정입니다.
“더욱 간절하고 간절히” 애썼습니다(살전 2:17).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대면”하기를 원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면 그 가족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요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 때 아직 데살로니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살전 2:18).
사탄은 질병이나 다른 장애로 바울을 괴롭게 함으로써(마귀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음) 바울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말로 거기에 있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을 속이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다고 하였습니다.
적먹는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성장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권면하는 아들처럼 여러분들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가장 귀한 생명까지도 너희와 함게 나누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곧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믿는 너희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
유대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는 것을 막으려고합니다.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죄를 극한까지 쌓아서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저와 바울도 몇 번이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 길을 막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 그 앞에서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이 아닌가요? 진실로 당신은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십니다.
21세기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전과 다릅니다. 따라서 여러 측면에서 농촌 지역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의 특징이 무엇인지, 우리의 위대한 임무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우리를 무관심, 냉소주의, 심지어 절망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변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말씀, 그분의 약속, 우리 삶을 향한 그분의 목적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이나 구원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좋은 소식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지역사회의 큰 요구입니다. 성경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필요 사항을 다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요.
신앙은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우리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기름부음과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서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