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요한복음 6: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2023년 마지막 금요철야입니다.
모든 금요철야에 의미가 있지만 2023년을 마지막으로 잘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돌리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마지막이란 말은 평범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워줍니다. 알풍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수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살았던 프랑츠는 평소에 공부보다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소년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 갔을 때에 교실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독일에 귀속된 알자스 로렌지방의 모든 학교에서 앞으로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수업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날이 프랑스어 수업 마지막 수업이였고 아멜 선생님은 칠판에 Viva La France 프랑스 만세를 남기고 끝났습니다. 평소에 평범하게 사용했던 모국어가 그렇게 소중하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금을 주셨는데 3가지 금입니다.
황금입니다. 물질입니다. 황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예전에 우리 평강이 백일일 때에 우리 목사님들이 한돈씩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금으로 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금덩어리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요즘 제택크로 금을 많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두번째는 소금입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데 소금없이 먹으면 얼마나 음식이 맛없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몸에 소금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혈액에도 소금기가 있고 오즘도 소금기가 있습니다. 적당한 소금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허경희 목사님은 좋은 소금을 적당히 먹으러고 유튜브를 보내주었습니다.
셋째로 지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중에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지금입니다. 황금(물질), 소금(건강), 그러나 지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시간에 은혜받고 지금 이 시간에 예배드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마지막이란 말은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할 순간에 다가온 다는 사실을 떠올르게 합니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의 태양이 귀한 것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오늘을 지상의 마지막날 처럼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람이 한층 더 소중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예화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낳은 인류 최고의 문호 표도르 미할일로비치 토스토예프스키입니다. 그는 4년동안 시베리야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849년 12월 러시아 세묘뇨프 광장에서 사형 집행장에 반체제 혐의로 28세 청년이 서 있게 되었습니다. 사형전 5분을 주겠다고 집행관이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이 이제 5분 뒤면 끝이나는 구나 나는 이 5분동안 무엇을 할 까?
먼저 가족과 동료들에게 감사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먼저 떠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 때문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지 마시오,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집행관은 2분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후회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난 왜 이렇게 헛된 시간을 살았을까?
마지막으로 집행관은 1분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매서운 칼바람도, 땅의 냉기도 못느끼겠구나 볼 수도 만질 수도 모든 것이 아쉽고 아쉽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행관은 이제 집행을 시작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저편에서 사격하는 사람들의 대열을 이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고 싶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고 싶다, 철컥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면서 형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사형 대신에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급박한 전갈이였습니다.
그 후의 삶은 하나님이 자신에 주신 선물인줄 알고 게으름이나 허송세월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혼을 울리는 예술작품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이란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호세아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마지막 날이 되기전에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해야합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두렵고 떨림으로 섬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며 존경함을 의미하고있습니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마지막이란 하나님 앞에서 다가오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뜻입니다. 마라톤에 임하는 사람들이 고비마다 다가오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결승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열심히 달려 이곳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브란스라는 병원을 알고 계십니까? 모두 알고 계십니다.
세브란스는 자선가입니다. (Louis Henry Severance ; 1838~1913)
루이스 H. 세브란스 씨가 미지의 나라 한국에 의료선교를 위해 기부함으로써 오늘날 세브란스병원의 기반이 놓었습니다.
병원의 이름 역시 기부자를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명명된 것이다. 세브란스라는 인물이건 세브란스라는 병원이건 우리나라에서 세브란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브란스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해서 미지의 나라 한국에 거금을 쾌척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는 1800년대 후반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의 거부(巨富)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부한 헌금한 물질이 이렇게 큰 병원이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3년 연속 순이익 1위 자리를 지킨 세브란스병원은 2017년(1,121억원)과 2018년(1,169억원)에는 1,000억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3년 연세의료원 진료기관으로는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대학병원, 용인등, 매출 1조 클럽기업의 매출액이 1조를 넘는 우량 병원입니다. 함께 일하는 의사분들과 종업원들만 8000명입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진실성을 반복하기 위하여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말씀은 반복하고 계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나사로를 지금 살리시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전날 예수님께서 친히 수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장 9절 – 14절)과 요한복음 6장 32절의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을 먹는 자들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모든 사람들을 틀림없이 받으실 것이고(요 6:37), 그들을 영생을 보게 하도록 틀림없이 지키실 것입니다(요 6:39).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면서 마리야에게 다시 살것을 믿는다면 나의 하는 일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채로 남아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에 의해 진정으로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은 결코 상실될 수 없습니다.
(이 본문을 잘못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길자와 무관한 구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며 살아 있는 우리가 변화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날 그 날을 가리켜 이처럼 “마지막 날”이라고 …
오늘 극동방송에 이러한 말씀이 나오더라고요.
어느권사님이 암으로 고생하시면서 죽음에 이르는 극한 두려움으로 목사님의 심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목사님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하여 예전에는 기쁘게 생각했는데 이제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오는데 두렵고 무섭습니다. 솔찍한 자신의 마음을 목사님에게 상담하였습니다. 그때에 목사님이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권사님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모두 암송하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워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하나님이 000권사를 사랑하사라고 바꿔서 암송하고 묵상하세요. 그런데 오랜시간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두려움이 떠나가고 수술도 잘받고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새벽에 양권사님이 찬송을 부르시더라고요.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찬송가 563장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10).
마지막 날에 복음성가의 가사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 모든 백성에게 부어 주리라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 임하면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