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30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1. 序
글을 쓸 때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시점입니다.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초보자가들이 가장 많이 쓰는 시점입니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입니다. 작품의 서술자가 신과 같은 위치에서 인물의 성격과 심리까지 서술하는 시점입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전지적시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야곱에 대하여, 그리고 나에게 대하여 인생의 성경을 자서전을 쓰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야곱을 전지적시점을 통하여 야곱을 바라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도 하나님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볼 때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성경의 인물중에서 야곱과 나와 많이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기꾼이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처럼 ‘가는 곳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고요한 바다로,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3.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우리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적 시점에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도 그것을 만사형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은 처음은 고난이지만 나중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2. 본문 설명
양과 염소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내 품삯으로 하였으면 좋겠다고 외삼촌 라반에게 제의 합니다. 라반은 동의합니다. 라반은 자기의 아들들에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모든 짐승들을 사흘 길쯤 되는 곳에 두게 하여 야곱의 것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껍질을 벗기고 양 떼가 와서 물을 먹을 때에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새끼를 낳게 될 때 얼룩무늬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낳게 됩니다. 그렇게 낳은 짐승들을 구분하고, 야곱의 얼룩무늬 짐승과 라반의 짐승들을 마주보게 하여 튼튼한 것이 새끼 밸 때에 바라보게 하고 약한 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 약한 것을 낳게합니다. 마침내 큰 부자된 이야기입니다.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3. 내 발이 머무는 곳마다 복을 받기 위하여!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의 일터 속에 일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을 일했지만 라반의 속임수로 인하여 다시 7년을 일합니다. 창29:20절에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그리고 6년을 더 일한 이야기입니다.
● 인간관계
여러분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은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일할 때의 노동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서 직장을 그만 두는 사람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상관과의 관계 때문에, CEO가 더려워서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악덕 노동주 때문에 야곱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만 두는 것입니다.
내 발이 이른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준다는 말과, 요셉이 이르는 곳마다 하나님이 그 곳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이 어는 왕을 만나든지 복을 주셨다는 말고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 왕은 “하나님 살아계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속에 상관과 밑에 있는 부하직원의 인간관계는 !
에베보서 6장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에 육체의 상전에 복종하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육체의 상전에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일터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직장에서 훈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저를 순복음인천교회에서, 평은 순복음교회에서, 성원순복음교회에서 섬기게 하셨습니다.
살다보면 내가 원하는 일만 하고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이 내린 직장인 선생님, 공기업 준공무원들, 그중에 최고의 직장으로 선생님을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처에게 물어보십시요. 35년을 근무하였는데 매일 학교가기 싫다고 합니다. 무려 학교를 53년동안 다녔습니다. 2013년 한국 직장인들의 만족도를 보면 55점입니다. 이것은 평균이고 연령에 따라서는 또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직업, 다니고 싶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자식만 먹여 살릴 수 있다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이 많습니다.
모세는 40년을 왕궁에서 살다가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의 기간이 미처버리는 기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듭니다. 요셉의 첫 직장은 보디발의 종살이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직장은 바로 감옥이였습니다. 이 곳도 미처버리는 곳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4. 발이 머물는 곳에 복을 받기 위하여 참고 기다림의 영성
성원순복음교회에서 20년을 어떤 분들은 30년을 어떤 분들은 40년을 어떤 분들은 50년을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버티는 힘이 바로 영성입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기다림을 주시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훈련입니다. 잘 되지 않고 힘들은 기간에도 버티고 있으면 그 속에서 나를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라반이 그렇게 속이고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야곱을 계속 보고 계셨습니다. 전지적 하나님의 시점에서 야곱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힘든 시간이였지만 마지막 성격표를 받았을 때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겠습니까? 결과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견딜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영성인 것입니다.
5. 아롱진 것을 만드는 야곱의 노력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야곱이 사용한 방법이 하나님이 꿈을 통하여 알려주신 것인지, 아니면 오랜시간 외삼촌의 집에서 양을 치는 과정 속에서 목동으로 얻어진 경험인지는 우리가 추론할 수 없습니다.
1) 성경에는 의학적, 과학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난제들이 많은데 이 구절도 그렇다. 생물학적으로 양은 흰색이 우성이고, 염소는 검은 색이 우성이라 얼룩진 것이 태어나려면 얼룩무늬의 열성 유전자를 가진 것들이 정확하게 교미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지금도 중동 땅에서 얼룩무늬의 양과 염소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야곱이 멘델의 유전법칙을 알았을 리도 만무하다. 멘델은 야곱 이후 약 4천년 후 나타난 인물이고, 야곱이 취한 방법은 멘델의 유전법칙과는 전혀 상관 없는 황당무계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근동의 목동들 사이에 미신처럼 내려오는 비법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비법만 믿고 야곱이 라반과 약속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야곱은 꿈에 얼룩진 가축이 태어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고(창세기 31:10~13), 이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하셨음도 고백한다(창세기 31:9). 얼룩양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꿈의 계시를 확실한 담보로 하면서, 악착같았던 야곱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만히 기다리기 보다는 뭐라도 하면서 축복을 갈구하기 위해 그런 의식을 행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런 야곱을 하나님도 이해하셨던 것 같다(창세기 31:12).
출처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2) 조용기 목사님은 이 본문을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보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난 것 처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살아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설교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6. 야곱의 발이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매우 번창함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번창하게 되는 것은 야곱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로 계산되어 살면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되고 실패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망원동에 가면 떡갈비집이 잘되는데 그 옆 라인에다 또 떡갈비집을 창업하였습니다. 그런데 떡갈비집이 잘되지 않습니다. 한 쪽은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줄 서서 사먹고 다른 집은 파리 날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우주선을 날린다고하여 우리나라도 우주선을 날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실패하였습니다. 미국의 우주선을 만드는 나사가 우주선을 발사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사 한 개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농작물 하우스가 잘된다고 하여 그 작물을 심었는데 그 해 태풍이거나 병충해로 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머리만 깜아도 염색이 되는 삼푸를 발견했다고 나리입니다. 코로나 치료제를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주식에 투자하였는데 그렇게 안되다가 갑자가 주식이 폭등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변수라고 합니다.
결과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를 변수라고합니다. 축복의 변수도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삭은 다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만 소출의 100를 얻어서 거부가 되었다고하였습니다. 코로나 한 가운데도 정말 줄서거 먹는 집이 있습니다. 연남동에 방어집이 있는데 줄이 얼마나 긴 줄을 서서 방어를 사먹는지 모릅니다. 망원동과 성산동에 방어집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집은 안되는데 그 집만 잘되는 것입니다. 변수를 움직이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늘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려야합니다. 99%의 실패 가능성이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뒤집히는 것입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창30:27)
야곱은 자신의 장인, 그리고 외삼촌에게 10번이나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열악한 근무조건, 객지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가 발을 딛는 그곳에 하나님이 역사혔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창28:15)”약속하였고 그것을 믿고 라반에게 간증한 것입니다.
퍼즐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조각만 보는 사람은 너무 힘이 듭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큰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그림은 하나님이 보여주셔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수업을 잘 받기를 바랍니다. 그 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일터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앙이 깊어지고, 노동을 통해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된다면 실패할 수 없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6. 내 발이 이르는 곳 (예화)
1989년 갑작스런 사고로 딸이 물에 빠지고, 이를 지켜보던 남편은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당해 죽음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마침 사고 현장에는 병원을 출근하지 않는 파업중인 2명의 간호사가 남편을 구해주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던 중에 간호사 한 분이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해주며 어느 무명의 그리스도인의 시인 ‘모래 위의 발자국’읽어주었습니다.
나의 삶에 가장 어려운 부분에 주님의 나의 친구라고 하면서 어디 계셨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내가 가장 어려울 때에 네가 너를 엎고 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가장 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한 그 때에도 결단코 떠나지 않았다.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본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이란다.
사실 이 시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청혼할 때 쓰여진 시였습니다.
“만일 우리 둘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주님이 우리를 안고 가실거요.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그분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말이오.”라며 격려해주었다. 저자도 근심을 씻고는 마음을 굳게 하였는데 갑자기 남편이 저자를 들어 올려 빙빙 돌리면서 장난을 쳤다. 몇 바퀴를 더 돌아 어지럽다며 저자가 기쁨의 비명을 질렀을 때 남편은,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을 안고 있으니까 당신은 안전해요.” 바로 이 두 가지 경험을 근거로 식당에 앉아 종이 냅킨에 써 내려간 것이 ‘모래 위의 발자국’의 초안이었다. 물론 그때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저자는 이 시를 남편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부모님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께도 호숫가의 일들을 말씀드리며 읽어 드렸습니다.
이사야 63장 9절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히브리서 13장 5절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시가 무명의 시가 된 이유는 이러합니다.
1980년도에 부부는 이사하면서 이 시가 든 박스를 분실하였고, 1983년 처음으로 ‘모래 위의 발자국’이란 제목의 액자가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되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의 시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시의 저자로 되어 있는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그녀의 남편이 이 시는 표절이 아니니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나중에 다시 그 서점에 가서 확인해보니 자신이 잃어버린 다른 12편의 시들도 액자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법적인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하였습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은 폴의 아내인 마가렛 쉬셔백 파워즈(Margaret Fishback Power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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