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장 14절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 序
룻기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룻과 나오미, 룻과 보아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서로 영적인 소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의 뜻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연히 평강이 책상에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정병태 저자가 지은 소통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로 예상 할 수 있다고 한다고합니다. “당신은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있습니까?”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잘 설득하고 말함으로 그 사람을 설득시켜 자신을 원하는 방법대로 하게하는 기술적 대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스티브잡스입니다. 신앙생활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통하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러분의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강력한 것은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크고 놀라운 일을 보아여주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세상에 열심히 여러분의 생각과 말한 것을 실천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섭리인 것입니다.
말솜씨는 타고나는 사람보다는 준비하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미국격언에 말하기는 연애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는데 완성하고 마무리 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연애는 말로 시작하여 말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를 사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 말이 천량 빚을 값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풀의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상황에서 기업의 목표와 비전을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경영자의 능력은 앞으로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약장수처럼 겉만 번지르르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말의 골격에 심오한 성경적인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기도 속에 진실이 있어야합니다. 성도들과 하나님께 신뢰와 응답이 있습니다. 말을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중에 하나가 글로 작성하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둘째로, 물 흐르듯이 하듯 기도하기 보다는 내용과 핵심이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칠줄 모르고 길게 길게 하는 기도가 중요한 기도가 아니라 핵심이 있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막상 개인 기도할 때에는 10분도 기도하지 않는데 대표기도를 하면 20분 기도하면 대표기도가 아닙니다.
셋째로 기도는 확신에 찬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무는 손자병법에서 지휘관이 분명하고 또렷하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 병사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2. 체험적인 만남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룻은 모압에서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를 공궤供饋하기 위하여 타작마당으로 나갑니다. 그곳에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를 통하여 이삭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아스에게 식사 초대를 받게 됩니다. 초를 찍어서 빵을 먹게 되었을 때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한 에바를 얻어 집으로 돌아올 때에 시어머니를 부터 안식처를 얻기 위하여 기업무를 자의 이불로 들어가라는 말에 순종함으로 룻은 보아스의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막연한 기도로 보아스 이불 속으로 들어갔지만 보아스는 이제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룻을 안심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장면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보아스의 만남은 특별한 체험이듯, 우리 주님을 만남이 특별한 체험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우리 담임목사님으로 부터 교회에 오면 놀러오지 말고 주님을 만나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과자를 주는 것이 좋고, 교회에서 밥을 주는 것이 좋아서 교회를 왔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 목사님은 밥도 좋고 친구도 좋고 과자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면서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모세가 떨기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만난 것 처럼, 이사야가 성전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것 처럼 주님을 만나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체험하기 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하였지만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주님을 체험하고 난 뒤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능력있는 사도로서 죽을 때까지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를 책으로 만난 사람과 호랑이를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은 호랑이 대하여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책으로 만난 사람들은 호랑이는 호피무늬, 발톱, 이빨, 그리고 크기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호랑이를 만난 사람은 무서움, 그리고 놀란 가슴, 자신의 체험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성경에서 만난 것, 성경의 말씀을 잘 알고 성경공부는 잘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두려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느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책으로 만났을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났을 때에는 자신이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 줄 알고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3. 영적인 만남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뜻은 주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하는 말이지만 영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주고자하는 의미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룻을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아스에 대하여 알지 못하지만 룻은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이 교회 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관심없지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만남을 안다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것이 개인적인 것 처럼 주님를 만나는 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NIV) 16. When Ruth came to her mother-in-law, Naomi asked, “How did it go, my daughter?” Then she told her everything Boaz had done for her
KJS)16. And when she came to her mother in law, she said, Who art thou, my daughter? And she told her all that the man had done to her.
문맥상으로 NIV성경의 해석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해석하면 KJS 성경해석이 맞습니다. who are you?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입니다. 문맥성으로 그 남자가 무엇을 하였느냐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버전에는 당신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룻에게 한 말입니다. 시어머니가 룻을 누구인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룻의 모습이 변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자부에게 한 일을 다 듣고 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내가 완전히 다름 사람이 되었구나? 너 누구니?
죽은 남편을 두었던 룻이 이제는 살아있는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룻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보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예전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BC before christ, 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AD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라틴어: Anno Domini 아노 도미니 ‘주의 해(年)에’)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미리 깨닫고 알고 받은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은혜를 입고 받고 있는 은혜를 조금씩 깨달아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있고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4.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2번이나 반복해서 여섯 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여섯번이라는 뜻은 사람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의 숫자는 바로 일곱이라는 숫자입니다. 안식일 안식년이 일곱이고 완전의 숫자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은 2장 6절 이하에 보면 혼인잔치에서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다고 하였습니다.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많은 성경 연구가들은 보아스가 룻에게 준 보리 여섯 되의 의미를 안식을 준비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장차 엿새 동안 일을 마치고 일곱째 되는 날에 주일을 성수하여 안식일을 주일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958년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창립한 조용기목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시는 조용기목사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어린시절 장로교회를 다녔지만 매일 주일 아침이면 조용기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밥을 먹고 교회갔습니다. 그리고 장로교회 신학교를 갔어야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순복음신학교를 가게 되었고 지금은 순복음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시간에 조용기목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조용기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저의 삶에 그리고 저의 목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목사님이 이제 안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목회자를 사용하셔서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2021년 9월 15일날 여의도순복음교회 1층에 마련된 조용기목사님의 빈소에 윤석렬 전 총장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윤석렬 전 총장보고 이영훈목사님, 김삼환목사님, 오정현목사님, 김장환목사님, 오정호목사님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안수기도를 해준 것을 보고 사회에서 비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장소에까지 하나님의 영광과 주의 복음의 증거의 자리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5.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나오미는 룻에게 우리 가만히 기다리자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고 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위하여 기업 무를 자를 알아 보고 그리고 장로들과 상의하고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자고 하였습니다.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다윗의 다음 시대에도 우리 주님이 계속일하고 계십니다.
룻의 핵심 단어입니다. 헤세드 은혜가 있기를 원하다. 가알(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식할 처소를 준비하는 메누아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제 기업무를 자 고엘의 만나 하나님이 준비하는 기간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쉬지 않고 우리를 돌보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이레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2장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인간에게는 쉼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시편에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인간이 아무리 여러가지 꾀를 부려도 하나님의 역사의 바퀴는 쉼이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신의 사역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 세례요한, 베드로와 사도바울도 주의 사역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죽지 않고 모든 시대 마다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워가고 있습니다. 우리한국에서도 한국 교회 신유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김익두 목사, 이성봉 목사, 조용기 목사을 통하여 침체된 기독교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 놓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저희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조용기목사님의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이 계속적으로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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