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인간이 태어서 하는 행동이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근원반사(Rooting reflex)입니다. 젖을 찾아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입주위에 손을 갖다 대면 그것을 빨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살려고하는 원초적인 행동입니다. 두번째 행동은 파악반사(Grapsing reflex)입니다. 아이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갖다대면 그것을 꽈 쥐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이는 세상에 무엇을 잡으려고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 사람의 심리행동입니다. 세상에 무엇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줄 수 가 없습니다. 오늘 나모미는 무엇을 쥐려고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고향에 돌아와서 룻에게 고백하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혜가 그치지 않습니다.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지난 시간에 고백한 내용중에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과 롯에게 은혜가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 본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남편과 자신의 자녀들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 자신으로 보아야합니다.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나오미라고 하지말고, 마라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한 에바를 가지고 며느리가 오고 그리고 기업무를 자가 있음을 보고 밝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은혜가 그치지 않는다고, 은혜가 있으면 행복이 있고 소망있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부 장로교회 다닐 때에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 때 대구의 서현교회, 그리고 인천의 제일 장로교회 학생면려회라는 수련회를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김화일목사님의 설교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모두 은혜를 받고 그리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한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철야한 기억 이원명 형님과 함께 주보를 만들은 기억들이 생각이 납니다. 공부도 안했는데 열심히 공부도 하고 소설책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은혜는 자신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미에게 은혜가 계속되는 과정속에서 자신의 자부에게 안식할 곳을 예배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2. 안식할 곳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은혜는 자신만이 누리는 축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질 때에 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전의될 때에 은혜가 배가되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음식으로 은혜를 나누고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할 곳을 준비하는 은혜입니다.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에 나오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룻기 1장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이곳의 위로, 안식의 히브리어는 ‘메누하’는 안식처, 안정의 상태,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안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安息處는 여성들에게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남편으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팔자는 남편에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슬픔과 한 숨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고부들에게 안식하라고 하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을 하여 남편을 보호를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우리가 신랑을 만나야 진정한 안식을 얻습니다. 안식을 돈이나 직업, 결혼, 출세, 여행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잠깐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솔로몬을 향하여 백합화보다 못한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본인도 전도서 1장 2절로 3절에 헛된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17절에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이 다 위로 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찬송가 469장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사실 룻은 정결한 신부가 아닙니다. 한번 결혼했고 과부기 때문에 신랑이 보면 정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의 눈에는 가장 좋은 신부감이리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주님도 여러분들을 깨끗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사모가 정년퇴직 하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이 고양이를 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양이를 기르고 싶었지만 자신이 학교에 가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고양이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기르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번 우리 뭉치를 키우면서 참으로 어려움을 격었습니다. 똥치워야지요. 제가 비염에 걸리지요. 개 털빠지지요. 그리고 사람 물지요. 밖에 나가서 임신하지요. 개를 사랑하면 개똥도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모가 고양이를 전적으로 키울 수 있을 때 고양이를 키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모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수많은 고양이 중에서 길양이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분양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돈 주고 살 것인가? 고심해야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합니다. 수많은 고양이 중에 하나 또는 둘을 선택해야합니다. 전적으로 사모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수많은 당시의 여성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롯과 나오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가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이러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정리하여본 것은 내가 받은 축복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고, 내가 고난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결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신앙생활은 고난 가운데 그 죄를 조금씩 깨닫고 죄를 줄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3.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고 한 밤입니다. 만약에 이 주제로 소설을 쓰면 조금 길게 여러가지 요소들을 설명하였을 것입니다. 밝은 보름달 그리고 물결이 흐르고 주변 대지는 온갖 보리와 밀로 타작 마당을 덮였습니다.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취해가고 있을 그 밤이라고 더 정확하게 묘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기 때문에 간결하게 쓰여졌습니다.
타작마당에 도리개로 두들겨 보리나 밀의 낟알을 떨어지게 합니다. 떨어진 낟알을 공중에 던져서 까불리면 죽정이와 곡식 낟알들이 구분이 됩니다. 알곡들을 자루에 담으면 됩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바람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주로 오후 5시 이후 밤에 내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바람이 불어 타작을 주로 저녁에 합니다. 밤이 맞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 지치면 타작마당의 곡식 더미 곁에서 그대로 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밤에 나오미는 저녁에 룻에게 은혜가 계속되기 위하여 안식처를 마련해 줄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 밑에 정신적으로 이상한 할머니의 딸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소원은 어떻게든지 정신적으로 혼미한 딸보다 하루 오래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먼저죽고 그의 오빠도 죽어 그 집을 팔고 요양원으로 보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룻은 결혼하고 얼마나 지냈을까요? 룻기 1장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10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10년동안 자녀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전에는 결혼하여 아이가 없으면 무조건 여자의 문제로 취급하여 소박을 맞거나 친정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불행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온 것입니다.
3. 목욕, 기름, 의복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저작거리에서 일이 일어나지만, 이스라엘은 타작마당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사시대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하는데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시대입니다. 룻을 험지로 보내는 시어머니의 생각은 여러가지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개를 분양 받거나, 고양이를 분양받거나, 고아를 입양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바로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이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도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시어머니와 룻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타작마당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가지만 완벽한 계획이 아닙니다. 그냥 은혜가 계속적으로 있도록 기도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늘 은혜가 있도록 기도하면서 살아가야합니다. 물론 우리가 준비할 목욕과 기름과 옷을 준비하지만 앞으로 미래에 전계될 일들은 하나님께 맞기고 가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영적인 의미의 목욕과 기름과 옷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목욕하는 일
제사장이나 성도들을 선택을 받으면 먼저 물로 씻는 것입니다. 성도는 바로 세례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제사장의 경우에는 출애굽기 29장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레위기 8장 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자신이 스스로 씻는 것이 아니라 씻김을 당하는 것입니다. 처음에게는 씻김을 받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씻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김을 받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지은 죄, 자범죄를 스스로 회개함으로 씻어야합니다.
구약에서도 제사장이 된 뒤에는 성전에 들어올 때에 물두멍에서 스스로 씻어야합니다. 회막문으로 들어올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씻어야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나올 때에 매 주일 마다 한 주간동안 잘못 살은 것을 회개함으로 씻김을 받아야합니다.
요한복음 13장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이미 목욕한 자라는 말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자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는 계속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손발을 씻으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회개는 우리가 용서받기 위함이 아니라 용서받은 자로서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가 무엇을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 은혜로 구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천국백성이 되었으니 천국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2) 기름을 바르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향수와 오일을 바른 사람이 있고 저처럼 전혀 바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종종 성도님으로 부터나 주변 지인으로 부터 남성 화장품을 받으면 청년 법섭이 형제가 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전혀 오일과 향수를 바르지 않고 매일 하루에 두번씩 샤워를 하는 편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냄세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기름을 바르다는 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받을 때에 성령님이 도와주셔야합니다.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더욱 능력있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우리교단에서는 성령받은 증거로 방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령받는 내적인 증거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 믿었느냐? 그러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성경은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시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을 동의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으로 구원을 받지만, 능력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성령을 받아야하는데 고린도전서 14장 1절말씀 처럼 사모해서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3) 의복을 입고
마태복음 22장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의복은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예복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신 임금되신 분이 손님들을 초청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으로서 성도로서 의에 옷을 입어야합니다. 사역을 위한 옷을 입어야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에 의의 전신 갑주를 입어서 마귀와 싸위기 위하여 우리는 옷을 입는 것입니다.
■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옷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6장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000년 전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지만 다시 올실 주님은 우리를 심판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입혀주시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지 않으면 우리는 상급도 어둠에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될 수 있습니다.
5. 말씀대로 다 행하였다.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세상 남사스러운 일을 시어머니가 시키는 것입니다. 발치에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청혼 방식중에 하나입니다.
이 장면 육적으로 생각하면 은혜가 안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이 장면을 보아야합니다. 믿음으로 눈으로 보아야합니다. 보아스를 구원자, 그리고 기업을 무를 자로 보아야지 은혜가 됩니다. 자신을 드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믿음으로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아주 쉽게 표현하면 이러한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란으로 바위를 처본 분이 있습니가? 그냥 싱크대 위에 떨어저도 깨지는데 바위에 부디치면 노란자가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바라면서 불가능 한 일을 바라면서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보아스를 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고 음난한 모습으로 보면 은혜가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믿음으로 병도 낳고, 믿음으로 가난의 저주도 물러가고 그곳에서 악한 것도 떠나는 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성공합니까? 실패하여도 다시 일어나서 걷는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도저히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고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이 과부이고 10년동안 아이가 없는 사람이였지만 그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고 보아스, 기업무를 자의 이불로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성도들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