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 1절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1. 序
남편 죽고, 아들 죽고, 성경은 남편과 아들이 어떻게 죽은지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추론할수 있습니다. 당시 전쟁은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사고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추론하기론 병들어 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을은 아직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일찍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고 하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베들레헴을 떠났기 때문에 이러할 불행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축복의 문지 활짝 열리지 않고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합니다.
2. 밭으로 (이삭 줍는 일)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1) 인생의 밑바닥
인생이 밑바닥이면 아무도 자기를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돈이 있고 여유 돈이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한 태도가 달라지지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데 누구 하나 관심을 써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동생들에게 제가 무엇을 조금 해주어야지 헌금도 하고 도움도 받지 제가 아무것도 없는데 동생 집을 찾아가면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다릅니다. 자신이 밑바닥이여야지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조금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한 것 처럼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수색에서 개척하였을 때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사모와 평강이 사모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붙어져시는 것입니다. 풀무원하시는 집사님의 가정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옆에 수색장로교회의 편의점하시는 분의 가정을 통하여 피아노치는 자매님이 우리 교회 와서 피아노를 아무런 댓가 없이 헌신해주셨습니다.
앞 뒤로 막혀있지만 하늘을 향하여 열려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7000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사도 바울시대에도 이 성에 믿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을 남겨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코로나 환경 가운데라도 하나님은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1) 모압여인 룻
성경은 모압여인 룻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얼굴도 비슷하고 언어도 비슷한 분들이 있습니다. 연길, 길림, 흑룡강 출신의 조선족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식당에서 써빙하는 분들입니다. 한국인 고객들은 그분들이 한국인 복장과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씨를 통하여 조선족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룻보다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 동내에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오미가 나가야하는데 룻이 믿음으로 나갑니다? 왜 그녀가 나갔습니까? 그녀가 입으로 고백한 내용 때문입니다. 내가 어머니를 따르겠다.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가고, 어머니 죽는 곳에 나도 죽겠다는 결심 때문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교회에 봉사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감독자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진정한 충성인 것입니다. (엄마 갈치장사)
룻이 밭에 나가서 추수할 수 있었던 것은 구약의 율법 때문인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레위기 19장 9절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룻이 베들레헴에서 밭으로 나가가 이삭을 줍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과부였고 거류민이고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땅이지만 가장 밑바닦에서 일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리 추수 때지만 일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신세타령만하거나 원망 불평만 하면 자신의 일들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일을 가장 열심히 하는 목사님도 다 착하지 않습니다. 아마 당시에 베들레헴도 이삭을 주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모조리 다 추수하는 주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성산동에 까치 밥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다 따버리는 사람도 있고, 까지 밥도 남겨두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워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은혜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대민봉사를 하기 위하여 대전에 있는 방동저수지로 대민 작업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보리도 추수하고 그리고 논에 묘를 심기 위하여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냥 추억으로 그리고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친구집이니까? 생개의 목적이 아니라 추억삼아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다릅니다. 생계를 위하여 나갔고 그리고 시부모님을 위하여 나간 것입니다. 즉 믿음의 고백이고 시부모님에 대한 효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그에 대한 헌신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시 어머니까지 같이 먹고 사는 것입니다. 친정어머니에게는 얼마나든지 잘 할 수 있으나 시어머니에게는 정말로 헌신하기가 힘들은 이야기입니다.
2) 작은 일에 충성하기
하루 하루의 이삭을 줍는 삶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많은 목사님들은 조용기 목사님처럼 되기 위하여 다 목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목사님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평강이가 빌게이츠처럼 스티브잡스처럼 되기 위하여 사업을 시작하지만 다 그렇게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꿈을 꾸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룻이 부자 보아스 만나서 안 주인,  다윗의 증조부, 예수님의 계보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간 과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른 믿음, 그리고 시어머니를 위하여 베들레헴에서 이삭줍는 장소까지 낮아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려 30년이상 매일 새벽기도회하고 매일 밤 기도하는데 왜 조용기목사님 처럼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고뇌와 갈등도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십일조하는데 왜 사업장에 복을 내려주시니 않는가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조들을 살펴보면 13년동안 17년동안 종살이, 감옥살이, 양치는 허드레 일들을 하면서도 자기 일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형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 자신의 일들을 충실하게 하였을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내게 주시는 아주 작은 일들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새벽기도회를 그리고 사모는 학교 가는 일들을 다윗은 목동으로 작은 일들, 도로가는 바늘 통하여 구제하는 일들을 하게될 때에 그곳에서 부터 축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방, 대박은 없습니다.
우리는 결말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들이 모아져서 하나님은 나중이 창대하고 룻처럼 자신이 그 밭에서 이삭을 주었지만 그 밭에 여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22:29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수요예배를 드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도니아에 대한 생각입니다. 열왕기상 1장 6절에 용모가 준수하고 아버지가 네게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하고 하는 말을 한 번도 들지 않는 모법생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열 1위입니다. 자신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군대장관 *요압, 대제사장 출신의 아비아달등과 함께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아도니아가 왕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되지 않고 더 좋은 쪽으로 나라가 성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솔로몬을 선택하고 하나님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아도니아의 결정적인 실수는 처녀 중에 심히 아름다운 수넴여자 아비삭을 밧세바에게 달라고 하자 밧세바는 왕위를 넘겨준 공도 있고 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솔로몬은 정색하고 화를 내면서 아도니야 형을 죽입니다.
하정우의 아버지 김용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나이가 76살이고 1946년생입니다. 39살 연하 여성과 함께 하면서 임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이 창피하니까? 낙태를 강요하다가 법적인 소송이되어 세상에 알려진 모습을 보게됩니다. 사람은 어렵고 힘들 때에는 죄를 별로 짖지 않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하면 죄를 생각하고 세상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도니야도, 솔로몬도 살만 하면 죄를 짖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을 때에
여호수아 1장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다윗이 죽을 때에 솔로몬에게
열왕기상 2장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모세와 다윗이라면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 저는 저에게 유산을 조금이라도 주는 줄 알습니다. 그런데 우리 작은 아버지분들에게 주시고 저에게는 한푼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개떡 같다고 생각하여지만 그것이 진실임을 살다가 살다가 느끼게되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은 그 당시에 2천만원씩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2천만을 받았어도 살고, 그러지 않아도 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별히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 진심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우연히, 마침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단어가 우연히, 그리고 4절에는 마침 보아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우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섭리라고 하고 그것을 은혜라고 규정합니다.
내가 일부러 성도들을 보이기 위하여 목회했다면 목회를 지금까지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헌금하였다면 얼마나 가식적인 헌금을 하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가식적으로 기도하고 헌금을 하더라도 가식적으로 헌금하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과 작은 두 렙돈의 헌금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룻은 우연히 그곳으로 갔지만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지를 주셨습니다. 그 길을 걸을 수 있고 걷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섭리가 있어서 우리에게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간섭에 순응하지만 요나처럼 거절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고 또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계속 포기하면 결국 하나님은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보아스의 집으로 인도하시고 그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삭을 줍는 것을 우숩게 여기는 것입니다. 매일 공부를 우숩게 여기는 것입니다. 매일 일상의 예배를 우숩게 여기는 것입니다. 매일 한 푼, 한 푼 돈을 버는 것을 우숩게 여기는 것입니다.
인천교회를 섬길 때에 이0열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분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먹는 커피한자 100원을 벌기 위하여 대학교내에 벤딩머신 사업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00원을 우습게 알면 부자가 될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능력도 없고, 대기업도 다니지 않고, 큰 사업을 하지 못하지만, 이삭 줍는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다 조용기목사님이 아니고, 다 이건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될 때에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인 것입니다.
워런버핏이 자신의 아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형 코로벳 자동차를 사다라고 하였을 때에 3년동안 생일과 크리스마스 졸업선물을 포기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추가로 2500달라의 잔고를 유지해야한다고 조건도 붙였습니다. 버핏은 하나뿐인 딸에게 단돈 20달러를 빌려주면서도 수표를 쓰게 하였으며 주차요금 낼 현금이 없었던 수전 주니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버핏이 20달러짜리 수표를 받은 후에 현금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부하는 일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많이하는 사람입니다. 워런 버핏 3조8000억 또 기부하였고 지금까지 총 44조 기부하였습니다.
4. 세상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보아스가 누구의 소녀이냐고 물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이라고 답변합니다. 창비하고 부끄러운 일을 한다고 느껴졌으면 그일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세상에 부끄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1) 죄를 지어서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쓰고 교도소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 경쟁하여 지게되면 부끄럽습니다. 양궁 3관왕 안산이라는 분은 당당하게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축구선수가 어떻게 귀국하였다고 보고한 내용이 없습니다. 시합에서 지게되면 머리를 숙이고 귀국합니다
3) 이삭을 줍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룻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 일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보아스가 묻습니다.
보아스의 논과 밭에서는 베는 자들이 있고 베는 자 위에 사환이 있고 조금은 큰 농지였던 것 같습니다. 룻도 함께하고 아마 고아와 과부들도 있었던 같습니다. 다음 주에 볼수 있지만 9절에 보니 여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한 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5. 보아스가 이삭을 주으라고 하는 이유는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이 예뻐서, 모압 여인이기 때문에, 과부 표시가 있어서, 눈에 잘 띠어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우연히, 마침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그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7절)
이삭 추수하는 장소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일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주인이 묻는 것입니다. 7절에 열심히 일하는 룻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정부에게 이렇게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박스 줍는 분들은 참 가난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국민에게 꽁짜로 돈을 주는 것보다. 열심이 이 더운데 일하는 박스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더 많은 비용으로 정부에서 사주었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김장철에 농수산물 시장에 나가서 김치 줄거리를 가져다가 깨끗이 씻어서 김장을 담그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결론입니다.
룻처럼 이삭줍는 가장 밑바닥에도 그일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화려하지도 그리고 큰게 성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이삭을 줍는 것입니다.
우연히, 마침내라는 단어속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성도들과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도 우연히, 마침내와 같은 축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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