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7장 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도다
잠언 21장 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잠언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부모님은 물질이 아닌 마음입니다.
좋은 아내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평안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 오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형제, 친구와 스승을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허락하신 분복입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허락한 복보다 이제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직장상사, 좋은 교회 좋은 성도들을 만남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기꾼을 만나고 도둑을 만나고 잘못된 부부의 만남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뉴스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자신을 뒤돌려차기로 때린 남자를 만났습니다. 고발하여 그 남자 가해자 이현우, 징역 20년형 확정을 받고 나와서 어떻게 보복할 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 내용입니다. A 씨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 있지만 피해자를 향해 “공론화 안 됐으면 3년 받을 사건인데 XXX 때문에 (1심 판결) 12년이나 받았다”, “항소심에서 올려치기 받으면 바로 피해자 X에게 뛰쳐나가서 죽여버릴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그냥 죽여버릴 걸 그랬다” 등의 보복성 발언을 해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
다윗과 나단 선지자의 만남
사무엘하 12장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사무엘하 11장의 내용입니다.
군사들은 전쟁하러 나가는데 다윗은 예루살렘 궁에서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를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누구냐고 묻자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라고 답변합니다.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데려오게 하고 동침합니다. 그 여인이 임신합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알립니다. 우리아를 보내라고 합니다. 우리아에게 네 집에가서 발을 씻고 잠을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아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부하들과 함께 잠을 청합니다. 이틀을 더 머물면서 왕궁에 있지만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자기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에 내보내면서 요압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그리고 요압 군대장관은 그대로 실행합니다.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소식을 다윗에게 알립니다. 다윗의 가식적인 말(20절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그러나 요압의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 삼키느니라.”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행한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말입니다.
사무엘하 12장에서 다윗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이 양과 소가 심히 많고, 가난한 사람은 오직 작은 암양새끼 한마리 뿐인데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다고 하면서 말할 때에 다윗이 노를 발하며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바로 당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잠언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잠언 25장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주의 종은 모름지기 이렇게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 같은 말을 해야합니다.
사도바울과 에바브라의 만남
골로새서 1장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사도행전 19장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동안 복음을 증거하는데 2년 동안 교육을 받았던 에바브라가 복음을 받아 자신의 고향인 골로새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하게 됩니다. 비록 자신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지만 자신의 제자가 교회를 잘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바울은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옥중서신을 쓰게 됩니다.
골로새서 1장 4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 하늘에 소망을 둔 소망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열매를 맺어 자라는 것을 보고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를 잘 만남이 복인 것입니다. 선생님들에게 제자를 잘 만남이 복이 있습니다. 요즘 학교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의 선생님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릅니다. 학생들 때문에 자살하고 학부모의 갑질로 인하여 고생하고 퇴직하는 선생님들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미투와 페미니즘의 사상들이 학교 내에 들어와 많은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만남이 복입니다.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만남
빌레몬서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갇힌 자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정체를 알고보니 도망자 노예입니다. 주인의 손실을 끼치고 도망 나온 자입니다. 만약 이 시실을 알게되면 사도 바울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오네시모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십자가 형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네시모의 주인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인 것입니다. 자신이 오래전에 복음을 전해준 빌레몬인 것입니다.
빌레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2절에 보니, 자신의 집을 교회로 제공한 사람입니다.
상시에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와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나그네들이 있던 시기입니다. 음식과 예배의 처소로 제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은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빌레몬은 부자로서 충성된 부자였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이러한 부자이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위하여 항상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4절) 제가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합니다. 그이 자녀들까지도 모두 기도합니다. 큰 교회의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너무 많아서 기도할 수 없지만 저는 성도가 별로 되지 않아서 우리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하나님의 천사가 보호하고 하나님의 천사가 늘 하나님께 보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빌레몬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사도바울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5절) 빌레몬은 성도들을 평안하게 하는 성도입니다. (7절)
2000년의 교회의 역사는 교회가 평안할 때 보다 더 어려울 때에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교회의 역사가 진행된 것이 아니라 몇 몇 충성된 사람들에 의하여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한 사람이 모든 교인들 평안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 추수 때에 예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한데 어떻게 구분할 까요? 교회의 평안을 깨드리는 성도가 가라지고, 성도들에게 마음의 평안함을 주는 성도가 알곡인 것입니다. 교회를 굳건하게 하는 분이 진정한 알곡입니다.
이러한 빌레몬에게 사도바울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결론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뒤에 이렇게 심정을 고백하고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세상의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우리 속담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짐승들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려고 하지만 사람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때문입니다. 도끼는 나무를 베거나 쪼갤때 쓰는 도구입니다. 익숙하게 사용하던 도끼지만, 가끔은 도끼에 발등을 찍힐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큰 도움이 주었던 사람들이 배신을 하였을 때에 이 속담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속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성도들을 좋은 만남을 위하여 노력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