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는 몇칠 전에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 무엇입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면 할 수록 내가 정말 행복한 일이 바로 가슴이 시키는 일입니다.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기도할 때에 그것이 떠오르고 그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입니다.
저는 총회에서 세계선교국에 일을 조금 도와주고있습니다. 그곳에 우리 선교사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요글레에 단둥에서 두 선교사 피살되었습니다. 독침에 맞고 피살되었습니다. 조선족을 선교하는 선교사인듯 싶습니다. 편한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시켜서 가슴이 시켜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입니다. 그리고 제사 어느 선교사님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북한에 들어가서 빵공장을 하시는 선교사님입니다. 북한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영국 영주권을 얻어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교회에서 북한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한 사람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입니다. 북한에 어린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그곳에서 빵을 만들어 파는 것이빈다. 그곳에 앙고를 넣으면 간부들과 간부자녀들이 먹기 때문에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가난한 어린아이들에게 음식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평양과 그 외에 3군데 빵 공장을 짖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의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시키고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좋으신 하나님이 더 합력하여 큰 일을 하게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했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 부르다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풍요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여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위에 있는 사람도 잘되고 자신도 유명해지고 잘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가슴이 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입니다.
소명은 꼭 목회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평신도 선교사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본문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풍부한 경우는? 그는 주의 복음을 증거하기 전에 그는 다소 출생입니다. 그리고 로마시민권을 나면서부터 얻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상당한 부의 가정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 28절에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
마치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살수 있었지만 그 부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학력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후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가말리엘의 후생은 상당한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출신이라이든지 하버드대학 출신이고, 그가 다메섹선상에서 주님을 만나 뒤에 많은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는 머리로 만난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루스드라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사도 바울을 시체를 집어 던졌지만 다시 깨어나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이틀 후에 다시 루스드라로 다시 들어가 복음을 증거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는 가슴이 그렇게 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내전으로 인해 2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빈곤과 기아, 질병에 허덕이는 최악의 마을로 불리는 그곳에 어느 날 낯선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병원 하나 없는, 그야말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경계의 눈빛으로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여기는 왜 왔소?” “왜 여기에 온 거요?” 남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을 남자들의 모양새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마을 남자들 대부분은 아랫니 세 개가 뽑혀 있었고 이마에는 V자 모양의 칼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용맹스러움을 상징하는 표시였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이태석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는 여러분과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랑 함께 산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남자와 마을 사람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가 이곳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1962년 부산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고 공부도 썩 잘했다. 우등생인데다가 반듯하고 착한 모범생이기도 했다. “엄마, 나 또 100점 맞았어.”“그래, 우리 아들. 잘했다, 잘했어.”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어린 10남매를 키우느라 모진 고생을 다했다. 어머니가 고생하신다는 걸 잘 알기에 그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다. 공부를 잘했던 그는 결국 의대에 들어갔고,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착실히 밟았다. 군대도 군의관으로 복무를 했다. 이런 그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손을 잡으며 눈물을 훔쳤다. “내가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내 자식 중에 드디어 의사가 탄생하는구나.”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딴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신부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용기를 내어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머니, 저 사제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아들의 뜻밖의 말에 어머니는 넋을 놓고 말았다. 형제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몰라서 그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놔두고 사제의 삶이라니. 안돼. 정신 차려, 이 녀석아!”
어머니와 형제들은 눈물을 흘리며 급구 말렸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그는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2000년에 사제품을 받고 마침내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2001년 가을, 어머니께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람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가장 가난한 땅, 톤즈로 주저 없이 떠났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마음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이렇게 떠납니다. 비록 의사 아들은 아니지만 절대로 부끄럽지 않는 아들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2008년 11월,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들렀을 때 대장암 4기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 더 이상 톤즈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곳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아직도 해줄 것이 많은데 더 이상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마냥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렇다고 죽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는 병원에 가는 대신 죽는 그 순간까지 뭔가를 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대림동에 있는 공동체에 머물며 자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봉사를 하며 지냈다. 그는 눈을 좋아했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날 자신도 하늘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그리고 결국, 그의 바람처럼 2010년 1월 어느 날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그가 영면했다는 소식이 톤즈 마을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부님, 우리를 놔두고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 “신부님, 보고 싶어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은 하나 둘 악기를 들고 학교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을 가슴에 품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마을을 행진했다. 아이들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한 남자를 위한 마지막 곡을 연주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이들은 서로 얼싸 안으며 통곡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남자. 그가 바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이태석 신부’이다.
배부르며 배고픔의 신앙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도바울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풍부하고 돈을 많이 모아두고 적금을 들고 좋은 집을 사는 일에 생애를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일생을 투자한 것은 바로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추석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행복하게 이야기도 하고 TV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속에 잠언의 말씀처럼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여러분의 배를 체우고 육선으로 여러분의 육신의 영양만을 체우는 성도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의 마음을 체우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석에 행복함을 위하여 모였다가… 부모님과 다투고 그리고 형제들과 다투고 생활 가운데 어려움으로 인하여 많이 싸우고 살인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육선으로 가득과 배로 많이 체운 사람을 생각하면 솔로몬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예쁜 여자들과 그리고 이방나라의 공주들과 함께 1000명이나 대리고 살았습니다. 한 명 대리고 사는 것도 어려운데 1000명이나 사모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금이 얼마나 많은지 돌처럼 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지혜를 주셔서 전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은 처음부터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전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솔로몬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래전에 타게 하신 이중표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자신은 너무 어렵게 살아서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에 제일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대신에 물로 배를 체웠다고 하였습니다. 동산에 올라가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물로 배를 체웠지만 이 가슴은 하나님으로 채우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비로 환경은 가난하고 어렵다고 하여도 하나님의로 가슴을 체운 사람들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필리핀 지진 날 때에는 그곳에 있었습니다(1990). 저는 선교사는 아니였고 그곳에 공부하는 학생이였습니다. 물론 선교사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삶의 터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솔찍히 죽음도 무서움도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선교사님들을 이해합니다. 그 곳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서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하여 선교헌금을 모금하여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선교사님들이 없습니다.
얼마 전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일본 센다이 이후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상당 수의 이재민들이 학교 등에 마련된 임시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곳에서 한 선교사를 만났다. 40대 초반의 여 선교사였다. 대학 실패 후 도피하다시피 일본에 왔다. 복음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일본의 명문대도 졸업했다. 사회에 나가는 대신 하나님이 원하는 곳에 가기로 했다. 하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센다이로 건너와 교회를 개척했다. 독신이었다. 외모는 곱상한, 착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왠지 서늘한 그늘도 보였다. 40대 초반의 독신 선교사로부터 어찌 한없이 구김살 없는 맑음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진 이후 그녀는 각 지역의 피난소를 돌면서 밥을 지어 일본인들을 먹였다. 함께 지진 지대를 둘러보면서 일본인들이 그 선교사에게 보내는 존경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지진 이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그리운 사람들을 찾기 위해 미친 자들처럼 뛰어 다녔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이 선교사 역시 사방을 헤매었을 터이다.
지진 이후 적지 않은 한인 선교사들이 잠시 일본을 떠났다. 그러나 남은 사람도 있었다. 떠난 이에게는 수만 가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은 자에게도 같은 만큼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방사능 위험은 여전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가장 위급할 때 함께 있어줬던 그 고마운 마음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떠난 선교사와 남은 선교사’는 엄연히 존재했다.
센다이 인근 지대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어김없이 그 선교사 생각이 난다. 솔직히 나에게 친절했던 도쿄의 어떤 일본 선교사님들보다도. 인간인 나의 마음이 그럴진대 하늘 아버지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예수님 안에 있는 삶이 행복이고 능력입니다.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의 배를 위하여 신앙을 파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옷 로비 청문회)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은 어디에서 왔습니다. 비천함에서 그리고 배고품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구유의 비참한 곳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도하시고 복음을 증거하면서 주리고 헐벗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주리고 헐벗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정신만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처음부터 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슴을 위하여 살았지 배를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가슴을 위하여 산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배를 위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복을 주는 사람이고 생각하면 그냥 가만이 있어도 무의 도식해도 복을 주겠습니까? 아니면 복을 주는 사람께 기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성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저 같은면 복의 근원이신 분에게 가까이 가서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이 시키는 일은 죄를 짖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는 양심과 가슴에 가책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죄를 짖지 말아야합니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은 배를 불리기 위한 삶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와서 배를 불리기 위하여 삶을 산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을 섬김은 낮아지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고 그리고 주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것이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육체로 사는 사람 수가성 여인을 보십시오. 자신은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다섯명의 남자를 바꾸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물을 준비하기 위하여 왔다가 영적인 생수와 가슴을 체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내에 가서 예수님을 증거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목회도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배를 불리는 목회가 있습니다. 교회성장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것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훌륭한 목사님들을 비평하려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워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교회의 성장이 목적이 되어서 1000명, 10000명, 100만명을 목표를 두고 목회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을 체우는 목회를 해야합니다. 비록 시골교회에서 그리고 해외 오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는 선교사님들과 시골교회 목사님들은 비록 20명 30명이 전부이지만 자신의 배를 체우지 않고 가슴을 체우고 하나님에게 만족하며 사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뜨거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해야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가슴이 식어지고 기도의 목소리가 식어질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 구멍 뚫어진 전대와 같은 삶을 살면안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