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홍철기 목사,  설교자로 처음 설교 설교한 내용
성 경 : 빌립보서 3장 12- 14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序 論
세상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환경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운명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읍니다. 더욱이 믿는자의 입에서도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삶의 목표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권세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성도들의 악세사리이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환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유일한 것임며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귀중한 삶의 요소입니다.

저희 집은 제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포니 승용차를 사가지고 저희 아버지가 운전하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한번은 서대전 육교 위에서 멈추어 저희 어머니와 함께 밀은 적이있고, 석유가 털어저서 차를 밀고 길가에 세워놓고 휘발유를 얻은 기억도 납니다. 제 아버지에 물었지요 아버지 왜 석유를 조금 일찍 넣고 다니시지요 물어보았습니다. 다 떨어져 가는 줄은 알았지만 적어도 육교는 무사히 건너 주유소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차가 있지만 항상 연료를 가득 넣고 다녀야지 하면서 하면서 항상 연료 게시판에는 emty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기 나름대로의 인격과 교양, 수양과 신앙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 인생을 이끌고 가는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뜻밖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만 당황하여 쓰러지고 마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각자의 인격과 신앙의 상태를 재 정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재정비는 우리가 드리는 작정예배이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드릴 지역, 구역 작정예배인 것입니다.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는지 아니면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처럼 우리의 인격적인 면으로나 신앙적인 면에 성령의 휴발유가 더 필요한지 주주 점검하여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바랍직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는 막지 못하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새는 막아야 한다.” 슬쩍 우리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를 계속 맴돌며 어지럽히는 생각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도바울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도바울은 겸손히 선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12절)

사도바울의 선교 사역을 볼 때에 많은 부분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겸손하게 온전히 이루었다함이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은자입니다. 그는 고린도 후서 12장 21절에서 나도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이이며, 아브라함의 씨이며,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 한번 돌로 맞고….
(고후11: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고후11:25)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배의 지진이나 성수대교의 참사나 삼풍백화점의 참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 것은 교훈적인 요소는 기초가 약한 큰 건물일수록 쉽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았읍니다. 따라서 저에게 교훈되는 요소는 제 마음속에 크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낮추는 작업을 시작하였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크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읍니까? 예수안에서 낮추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주사 (빌 2: 6-9)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낮추고자하는자는 높여 주시고 높이고자 하는 자는 낮추심니다.
둘째로, 구약시대에서도 모세는 모든 지면에서 지극히 겸손한 자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겸손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것을 자랑한다고 그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분쟁을 막았읍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뭇 성도들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나의 복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온통 그리스도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현재의 성도에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선 줄로 생각될 때 넘어질까 조심하여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중에 가장 아름다운 루시퍼가 사탄이 되어 하늘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가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였습니다.

아담의 타락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하나님 처럼 영의 눈이 밝아지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그는 인류를 패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라고 잠언서 16장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개를 숙이십시오. 대학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2학년입니다.
1학년은 freshman신선하고, 2학년은 sophomore (어중된 지식을 휘두르는, 젠체하나 미숙한 건방진), sophos – wise, moros – stupid , 3학년은 junior, 4학년을 senior라고 합니다.
논문과 책이 나오는 것은 겸손한 사람이 나옵니다. 많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이론을 겸손하게 읽고 그리고 난 뒤에 자신의 논문을 만들고 그리고 책을 편찬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조금하였으면 그저 그것을 나타내려고 PR를 합니다, 즉 자기 도취에 빠져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많읍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크든지 작던지 모든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이는 생활을 하여야 하며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성공적인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 믿음과 순종, 절대 예배와 헌신의 삶의 자세를 확립하고 사도바울은 늘 겸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크든지 작든지 성취한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며 계속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성공적인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놀라운 축복을 해 주실주 믿습니다.

둘째로 과거를 잊고 선교했습니다.
오직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3절)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에 사도바울은 스데반의 죽임에 대하여 마땅이 여기였다고 생각했읍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석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대한 과대충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일에 선두주자였으며, 그러한 잘못된 과거를 가진 사도 바울이었다면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수 없었읍니다. 즉 다메섹에서 변화를 받은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을 하였으며, 그는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었읍니다 (딤후 4:8).

모세는 애굽사람을 쳐죽였으며 그자신의 손에 의해 이스라엘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미디안 광야에서 그대로 머물렀다면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삶을 맞추었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거를 버리고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날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읍니다. 그가 만약 애굽의 궁중생활에 만족하거나 미다안광야에서 평범한 목자가 되었다면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과거를 잊어버렸읍니다.

여러분 중에 과거의 실패한 경험있읍니까? 자녀들 문제 때문에 고심하십니까? 장막의 문제 때문에 고심하십니까? 사업의 문제 때문에 고심하십니까? 이러한 모든것은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촛점을 맞추고 과거를 잊어버렸을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읍니다. 따라서 모든 불안과 공포를 버리지 않는 자는 성공적인 삶의 자세를 살 수 없읍니다. 항상 과거의 추억을 먹고사는자는 그의 생은 가난과 어려움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과거의 실망과 가난을 우리 주님께 맞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하면 너희마음은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오늘도 주님께 모든 우리의 짐을 맞기고 새로운 출발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 원한 같은 감정을 낱낱히 다 기억하고 늘 되씹으면서 산다면 마음이 한 없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지난날의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다가 올 때마다 예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며 기도하시를 바랍니다. 기도의 줄기가 잡히지 않아도 예수의 피,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시면 예수의 피를 외치며 기도할 때 여러분에 붙어있던 원수 마귀는 다 떠나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도 과거의 문제 때문에 고심하십니까? 사도 바울처럼 과거를 잊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은 여러분의 과거를 내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고 순복음의 자녀라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잘못을 지금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금 내 놓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다. 욕심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것들, 하나님의 마음을 주의 종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을 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때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쥐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분명한 선교 목표가 있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14절)

저에게도 선교할수 있는기회가 있었습니다. 1987년도에 필리핀에 갔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하여 갔지만 그곳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하는 것 처럼 선교하게 되었습니다.
아돗트릴 (1년간) 라못에서 (1년간) 그린발리에서 (2년간) 가장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선교사분들이 돈과 물질로 선교를 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와 선교는 물질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울 (goal)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사나 죽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의 도를 전하는 일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쇠고랑을 차도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통계의 자료인 운명을 믿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있는 통계자료는 없습니다. 운명과 팔자는 우리의 악세사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계는 여러분이 개척해야 하며, 저는 저의 목회세계를 개척해며 부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사람의 목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출발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를 믿습니까? 물의면 대부분은 예수믿고 천국가려고요 하고 대답합니다. 예전에는 저의 신앙고백은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순복음의 주의 종이 된 뒤로는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여서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정년퇴직한 분들의 대다수가 일찍 죽은 것은 대개가 목표를 잊어버리고 무엇을 위하여 산다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대게는 5년도 못되어 70세에 죽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입니다.
사도바울은 과거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신 목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읍니다. 모세도 가나안의 폿대를 향하여 달려갔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폿대는 무엇입니까?

우리 처가 처음 시집왔을 때 할렐루야가 괭장히 어색했다 합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에서는 그러한 인사말이 없거든요 전화를 받을 때나 인사할 때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을 습관이 들어 어색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단지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이 어색합니다. 우리의 말이 변화되고 좀 더 예수의 언어로 사용될 때 생활부터 예수 가정 예수 천국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의 피를 강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줄기가 잡히지 않을 때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여을 때, 이상한 시험이 닥처올 때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예수의 피를 외치면 모든 일에 만사형통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하지 않으시는 가 하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습니다. 아담은 넉넉할 때 실패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신 후에 모든 시험을 이겼습니다.

세상을 보고 나를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면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실수 하여도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 까를 생각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푯대는 하늘나라이며 하늘나라가는 동안의 푯대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요 삶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시는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푯대였읍니다.

주님의 이름위해 옥에 갇히고 온갖 고생하다가 죽을 지라도 십자가의
큰 은혜 생각할 때에 아직도 내 고생 부족하도다. 우리의 힘으로는 옳게 못살고 내 신앙 가지고 순교 못하여도 성령 권능 나에게 충만하면  성경대로 살 다가 죽게 하소서.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어디에다 두고 있읍니까? 부초 처럼 매일 직장에 출근하며 세상으로 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읍니다. 우리의 목표가 가정, 직장, 자녀들이 돌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목표를 바꿀시간 입니다. 돈을 벌어도 예수를 위하여, 명예를 얻어도 예수를 위하여, 권세를 얻어도 예수님을 위하여, 선교를 하여도 예수를 위한 선교가 되야 될 줄 믿읍니다.

結論적으로,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고상할수록 삶의 의지는 강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한 삶,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이라면 마태복음에서 말했듯이 이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만날 때 항상 옆에서 도와줄 믿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각각이 만드는 작품이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이루는 것은 개개인의 행위와 노력의 결과 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바울사도와 같은 신앙의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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