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목사

히브리서 10장 19절 하나님의 시간속으로 (참고, 유튜브 성원순복음교회)

히브리서 10장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frombible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인생의 연결에 대한 비유로 시작하셨군요.

인생은 각각의 장면을 찍고 그것을 연결해 나가며 완성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현재를 아우르는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우리 인간는 하나님을 과거, 현재, 미래의 하나님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동시에 아우르며 모든 사람을 동시에 보시는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모든 사건을 관찰하시는 존재로 여기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며, 모든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시며 창조하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과 권능을 감지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우주와 우리 인간을 보호하시며 관리하시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특성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특성을 생각함으로써 인생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시간 속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오시는 시기가 가장 좋은 때가 2000년 전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간이 그 때입니다. 구원의 적기입니다. 그 구원의 역사 오늘까지 이르기 위하여 우리를 가장 좋은 때에 우리를 이 시간에 살계하셨습니니다. 좋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구약의 시간 속으로 (레위기)

여호와의 예물을 드리려면 예전에는 짐승인 소나 양을 가지고 예배당으로 가야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계시군요. 이것은 그 시대의 예배 방식 중 하나였으며, 짐승을 가져오고 예물을 드리는 과정이 어려운 일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먼 곳에서 오는 예배자들은 짐승을 온전하게 가지고 오는 것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 방식은 그 당시의 종교적 관행과 의식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하나님께 경배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배 방식은 다양화되었고, 예배를 드릴 때 사용되는 형식과 과정도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종류의 예배 방식과 형식이 존재하며, 기독교 예배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짐승을 가져오는 대신 찬양, 기도, 말씀 봉독 등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예배 방식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에게 마음을 드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장 4절에서 언급된 “안수”의 의미는 번제를 드리려는 사람이 그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예배자가 자신의 번제물을 하나님 앞에 바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써 예배자는 그 번제물을 신성하게 하나님 앞에 드리고자 하는 의지와 헌신을 나타냅니다.

이 행위는 예배자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거나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안수”의 의식은 번제의 의미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예배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이해하고 경험하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예배자 스스로가 번제물을 드림으로써 그 의미를 체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He is to lay his hand on the head of the burnt offering”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번역상의 표현 차이일 뿐, 핵심 의미는 동일합니다.

 

3. 죽이는 것입니다. 잡습니다.

성경 구절에서 설명하는 번제의 절차와 짐승을 죽이는 과정은 실제로 그 당시의 문화와 제사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죽이고 흘리는 피는 제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졌으며, 이것은 죄의 속죄나 예배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의식이었고, 사람들에게 죄와 속죄의 의미를 상기시켰습니다.

죄인 스스로가 번제물을 잡고 피를 흘리는 행위는 그 당시의 제도와 신앙 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의 예배와 제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예전의 예배 방식과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짐승을 죽이고 피를 흘리는 과정은 현대에는 전문적인 도살자들이 수행하는 일이 되었으며, 의료 및 안전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4.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리고 각을 뜨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선에 겁대기를 벗기는 것이 힘들은데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은 여러분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짐승들은 가족을 벗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각을 뜨는 것은 칼로 하지 못합니다. 도끼가 필요합니다. 뼈가 나오고 골수가 나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도저히 예배는 고사하고 징그러워서 예배를 못드리는 것입니다.

 

5.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7.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향기롭다고 하였습니다. 약간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잔인하게 드리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이 향기롭다고 하니 정말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왜 그렇까하고 곰곰히 생각하여보았습니다. 바로 동물이 죽을 때에 잔인하게 죽게 될 때에 여러분들과 저의 죄가 대신 죽기 때문입니다. 짐승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한 여러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시고 향기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죄 덩어리를 그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짐승에게 전가한 모든 죄가 죽기 때문에 하나님이 향기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3. 제사의 방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거제

레위기 1장 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제물을 가져왔으면 그것을 들어 올려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높이 처들어서 드리는 것입니다.

2. 요제

레위기 7장 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흔들어서 제사드리는 것입니다.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설이나 추석때에 제사날에 조상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 흔들어서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3) 전제

레위기 23장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포도주, 기름, 피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제사를 드릴 때에 부워서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4) 화제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 모든 제사에 사용됨

4. 제사의 완성 십자가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여러분들이 매일 레위기처럼 예배를 드린다면 몇 사람이나 제대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 종식을 위하여 십자가에 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년에 한번 있는 사순절과 부활절 예배드림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매일 짐승을 죽이고, 껍질을 벗기고, 각을 떠서 예배를 드리면 어는 교회에서 그렇게 할 교회가 있겠습니까? 저는 레위기를 장황하게 설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감사고 고마움의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함을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골로세서 3장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로마서 1장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결론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마치면서 이제 고난 주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와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 고난에 참여하여 우리의 모든 삶에서 부활의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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