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목사

로마서 1장 18절 왜 예수님을 믿는가?

로마서 1장 18절 왜 예수님을 믿는가 (시에스 루이스 순수한 기독교 참조)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1년 2월 14일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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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혹시 전도해본적 있습니까? 아니 꼭 전도가 아니라도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라고 물어보면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생각입니다. 미치광이 광신자, 참람한자, 죽어야 마땅한자, 지금 교회에 대한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여러분들과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적을 베풀고 지혜로운 말로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은 정신이 돈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교회를 미치광이 광신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깊이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나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정부에서 모이지 말라고 하면 모이지 않습니다. 정부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고 예배을 들리지 아니할 수 가 없기 때문에 모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코로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모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힌 믿음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감염을 불구하고 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음 무엇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본문 로마서의 말씀을 서로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진노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병든 사람이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기에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과 축복을 먼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와 명령에 대한 거부로 인하여 그에 대한 진노가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영원히 살수 있는데 죄의 결과로 죽음과 고통이 나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해괴망측 駭怪罔測한 이론이냐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돈을 1억원 빌려갔습니다. 그런데 값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감옥에 가야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신 그 값을 갚아주었습니다. 그러면 어려분들은 감옥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분에 감사하고 존경을 표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이라고 하는 신학적인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며 새로운 출발하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수 있습니다. 비타민을 먹어야 건강하다, 단백질을 먹어야 건강하다, 등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밥만 먹어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굳이 신학적인 이론을 따지고 않고 속죄의 이론을 따지 않고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린 자녀들이 처음 한글을 배울 때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글을 잘 쓰시는 부모님이 그 연필을 잡고 같이 그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ㄱ’기억이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하고 글을 같이 써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는 여러가지 학습하게되고 확신을 갖게 해주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더 잘 살 수 있도록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가정이듯 교회도 마찮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그런데 선과 악은 분명한데 여러 가지 분명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미국 교수님 밑에서 4년동안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문화와 완전히 다른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양심과 도덕은 같은 것입니다. 살인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 거짓말 하는 것, 간음하는 것, 음난하는 것, 그리고 부모를 거억하는 것들 이러한 것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합니다. 이것을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남은 도와주고, 자선을 베풀고, 어려운 일들을 함께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워주는 것,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러한 것에서 조금더 나가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하나님 아니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것, 마음속으로 죄를 짖는 것과 악한 생각을 하는 것까지 죄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습니다. 그럼 이것이 죄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과 선한 양심입니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고 난뒤에는 하나님께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일성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진정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은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별로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없는데 자주 회개하는 분들이 성도와 목회자들입니다. 왜 그렇게까요? 예수님과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더 바르게 살려고 하는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본문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하는 사도바울은 아시아와 유럽게 복음을 증거하는데 가장 먼저 알아야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는 단어입니다. 죄를 깊이 인식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닌데 하나님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없기 때문에 천국도 없고, 하나님이 필요없기 때문에 영생도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주소를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영리 참조)

 

●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엄마가 ‘오늘 밤부터 너희 공부방은 너희가 스스로 청소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방에 들어가보니 어머니의 뜻에 어긋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을 잘 정리하기를 바랬는데 방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방을 어지럽힐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머니 뜻과 상반되게… 군대나 회사나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는데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뜻하는 바가 아니여도 우리의 뜻과 상반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할 수 있고 옳지 않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선할 수도 있고 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에게 준 자유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고동한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나무와 물고기로, 그리고 동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피조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로우면서 기계적이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강의 지류가 그 원천의 높이 흐를 수 없듯이, 인간의 높음이 하늘보다 낮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지만 천사보다 조금 낮게 그리고 하나님과 비교 불가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줄로 잡아당겨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인간에게 옳은 쪽으로 가면 더 선해지고, 인간이 악으로 가면 더 악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분 소나 개가 악해지는 것과 인간이 악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농부로 살아가는 사람의 범죄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고등학문을 통하여 더 많은 범죄와 더 많은 아품을 주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전쟁의 도구를 만들지 못하지만 고등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핵과 더 많은 실상무기를 통하여 인간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중에 가장 지혜롭게 창조하는 사탄을 보십시오. 타락하니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까? 그 사탄의 간교함가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싶지, 더 지혜롭고 싶지’하면서 우리를 유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용차에는 휘발유, 봉고차에는 경유를 주로 넣고 달립니다. 그런데 요즘은 승용차에도 경유를 넣고 달립니다. 잘못해서 휘발유를 넣고 달리면 차가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신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집어넣어야 우리가 살수 있가 있는 것입니다. 차량 가운데 재차는 경유를 넣고 다지지만 잘못하여 악한 영으로 살아가면 가룟유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양심입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 즉 옳고 그른 것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만 음난에 대하여 나쁜 것이 아닙니다. 미국사람도 이혼하는 것에 대하여 나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만 전쟁에 대하여 나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사람도 나쁜 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럽의 독일과 일본은 다를까요? 전쟁한 것에 대하여 독일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이나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들 마음속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고 독일에 가면 아직도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가면 교회를 찾기가 힘듭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천왕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천왕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의 선조들이 전쟁 전범들이 뭍혀있는 야수그니 신사를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들의 할아버지 부모님이 한 행위에 대하여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조상에 대하여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유는 일본은 한국을 그리고 중국을 침공하여 이겼다는 것에 대하녀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사는지 모릅니다. 아시아 민족중에서 오직 일본만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특정한 민족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도 수세기 걸처셔 세상 사람들에게 심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심어주시는 것이 바로 구약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오면서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며, 내가 전부터 항상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세가 전해주는 법에 위배된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으로 생각하는데 저가 참람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자신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 예수라는 남자를 따르고 그리고 그에게 쏠리는 것을 도저히 볼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유일신 사상, 모세의 율법과 율례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인도에서 그 말을 하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범신론을 섬기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요과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얼마든지 자기가 하나님의 일부라고 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또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오직 하나님 밖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젊은 사람이 사람들을 죄를 용서하고 다니니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황당무게한 말을 하고 다니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란 해를 당한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와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발을 전철에서 밟았습니다. 그런데 죄송하다고 하면 밟힌 사람이 괜찮습니다. 하고 용서해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세보다 높다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자신보다 높다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과 조금 빗나간 주제이지만 본문의 내용이 있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죄를 살펴보겠습니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전 세계적인 동성애 흐름입니다. 오직 한국만이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에서는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가 거의 동성애를 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보수가 강력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강력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가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괭장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선진국에서 가만 둘리 없습니다. 특별히 사탄은 이렇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코로나로 전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라 타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큰 교회들은 정말 어럽습니다. 1만명 예배드리는 성전에 20명만 예배 드리라고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뉴스에 보면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주법으로 그렇게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세상사람들을 전도하지 못하게 사탄이 교회의 복음전도와 선교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을 이기기 위하여 영적으로 순수하고 충성되게 살아가야합니다.

린네에 이하여 현생인류(사람)을 종에 편입하여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르게되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mience)’의 어원은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손을 쓰는 사람의 뜻이란 의미로 호모 하빌리스라고 합니다. 손을 써서 커피를 만드는 것을 핸드드립이라고 하는데 원두커피를 가지고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것도 손을 잘 씻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배출되는 침과 같은 것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됩니다. 눈이나 입 코를 통하여 바이러스가 침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스크를 착용함으로 그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을 씻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손을 씻고 생활하면 코로나 바이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통하여 흑사병 가운데서도 생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에 살아가면서 입으로 범죄하지 않고 손을 범죄하지 않고 늘 영적인 손을 씻어 마귀에 전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3. 하나님 살아계심에 핑계대지 맙시다.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핑계는 자기 변명입니다.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옳다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창세로부터 하나님이 자연을 통하여 양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변명하고 아내 이브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핑계를 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죄인들이 하나가 같은 특징입니다.

 

요즘 수요일마다 출애굽기를 읽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데 하나님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출 3장 11절) 너와 함께 한다. 하나님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는 누가 보냈는냐하면 (3장 13절)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답변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저들이 나를 믿지 않을 덴데요. (4장 1절)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입이 둔한 사람입니다. (4장 10) 아론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핑계대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모세를 설득하고 이해시키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자연과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알수 있는데 우리는 세상의 지식으로 핑계를 대고 변명하여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어 하나님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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