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목사

역대상 29장 13절 세왕의 이야기, 다윗의 감사

역대상 29장 13절 세왕의 이야기, 다윗의 감사 성원순복음교회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from bible

● 서론 박지선 자살

몇 칠전에 게그맨 박지선양이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딸만 혼자 보낼수 없어서 어머니도 함께 자살하였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박피를 7번했다고 합니다. 조명과 태양의 빛으로 인하여 얼굴이 가렵고 살지 못할 만큼이나 힘들은 삶을 살다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모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모님이 아무리 어려워도 성경에서는 피투성이라도 살으라는 말씀을 하였다고 말씀함으로 주변의 선생님들이 성경에 그러한 말씀도 있냐고 하면서 함께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마치 아침에 일어나게 하는 알람시계와 같이 우리의 감사의식을 깨우는 주일인 것입니다. 일년에 한번도 감사함이 없다면 정말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일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함께 준비한 과일을 먹으며 함께 감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왜 우리가 감사하면서 살아가야합니까? 다윗의 감사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과 감사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만물이 주의 것이고 모든 것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우연히 집에 있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이름은 세 왕의 이야기입니다.

세왕은 누구입니까? 사울과 그리고 다윗과 압살롬입니다. 진 에드워드라는 분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는 집이나 막내 아들에게는 두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철이 없으며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대개 막내에게는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집의 어느 아이보다도 지도자의 자질을 갖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집안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막내 아들 다윗에게는 두가지 물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둘팔매이고 하나는 기타와 같은 악기 하프입니다. 비옥한 산등성의 한족한 들판에서 양을 며칠씩 풀을 뜯기 때문에 양치기에는 얼든지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는 이 외로운 시간에 종종 울기도 하고 오랫동안 하프를 타기도하고 좋은 목청으로 자주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찬양의 시간이 끝나면 그는 돌팔매꾼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잘하는 것은 여러분과 저처럼 하나님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모든 양들이 잠들면 밤 하늘을 보면서 하프를 타고, 자신의 독주회를 하는것입니다. 선조들의 믿음을 찬송하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도하고 자신의 미래를 담아 하나님을 마음것 찬양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의 본업인 양을 한 마리 한 마리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어느날 심장이 터지도록 하나님과 천사들과 지나가는 구름에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에 큰 곰이 나타나면 작은 돌맹을 가지고 곰을 향하여 맹렬히 달려고 곰의 머리를 명중시켰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요, 자신의 산성이요, 자신의 방패하고 믿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에는 보이는 것만 믿고 산다면 바보입니다. 세상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공기, 바람, 산소등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전화를 모든 사람들이 오늘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없으면 전화를 할수 없습니다. 태양으로부터 타뜻한 햇빛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햇빛이 없으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을 살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보입니까?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감사하는 것을 우숩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천국을 믿는 성도들도 천국이 없는 것 같이 산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오감으로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분명 천국과 지옥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여 감남나무의 소출이 없어도, 외양간의 소가 없어도 나느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가운데 문둥병을 고쳐주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10명중에 오직 한 사람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문둥병이 치료받았지만 예수님께 감사가 없는 사람들이 9명이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9명이 아니라 한명 사마리아인의 감사가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물질이 전부인 것처럼 오직 땅만 파는 돼지처럼 살지 않고 영원한 것이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누리는 것은 다 주께로 부터 왔습니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1)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도 우리가 감염되지 않게 지켜주시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2) 올 여름은 유난히도 긴 장마였습니다. 무려 5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습니다. 비가 교회의 외벽을 타고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평안히 살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3) 우리 교회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지동현권사님이 소천하셔서 올해는 추수감사절을 우리와 함께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 다시 세왕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정당한 방법으로 왕위에 오를지 아니면 비열한 방법으로 왕위에 오를지 선택해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께로부터 모든 것이 온다고 알기 때문에 비열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다윗은 비열한 방법

주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작은 학교입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입학합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졸업합니다. 그 학교는 깨어짐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왜 그렇게 학생들이 적을까요? 그것은 이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많은 고통 때문입니다.

 

● 누가 여러분에게 창을 던진다면 어려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창을 집어 곧장 되돌려 던지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창을 만들어 던지지않았습니다. 재빨리 몸을 피하여 피신한 것입니다.

 

– 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인기 있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창던지기 기술을 습득하지 않습니다.

2) 창던지는 사람과 함께 있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3) 입을 꼭 다물고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내 능력의 범위 안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미래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나를 좋은 것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에 창을 던지않고 비방해도 원수 갚지 않습니다.

 

 

3. 우리는 다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이였습니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저는 이건희 회장의 죽음을 보고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건강을 유의하여 살아도 우리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가 살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이방인과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천국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살게 허락하시기 전에 그들은 이방인이였습니다. 거류민이였습니다. 베드윈이였습니다. 아브라함에 의하여 정착하였지만 그들은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모세에 의하여 출애굽하여 여호수아에 의하여 이스라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에는 왕이 없으므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다가 하나님께 사울이라는 왕을 허락하시고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여 세움을 후회하시고 다윗을 세워 온 이스라엘을 통일하게 하셨습니다. 정말로 큰 나라로 축복하셨는데, 다윗은 그만 죄를 짖게 됩니다. 밧세바의 간음과 우리야를 죽임과 다윗의 인구조사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으로 그에게 연단의 손길 죄악을 깨달음을 주시기 위하여 압살롬이라는 자식을 통하여 다윗을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나 혼자 살기도 급급했는데 이제는 자식에 대한 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다윗과 압살롬처럼 말입니다.

 

압살롬은 언젠가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 늘 자신있게 살았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했습니다. 다윗보다 더 잘 생겼습니다. 키가 크고 지혜도 특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 것을 보고 교만해지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곧 왕이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세왕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다윗의 나이입니다.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고하였을 때에 나이와 압살롬이 자신을 대적할 때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쫒겨다니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몹시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상당히 참을성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을 때에 자신의 정적을 죽이려고 노력하였지만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에 모든 정적을 용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왕이 되었을 때에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법죄하게 됩니다.

 

특별히 사무엘하 15장 1절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6.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 압살롬 아들과 다윗 아버지의 마음

압살롬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지난 주 월요일날 우리 아들이 시간이 없다고 하여 송도까지 음식과 옷을 가지고 간 기억이 있습니다. 가방에는 음식을 그리고 한박스되는 옷으로 그리고 외투 2벌을 입고 제 외투에다 2벌의 평강이 외투를 입고 전철을 탔습니다. 얼마나 더워야지 외투 세벌을 입은 이상한 아저씨가 있네 하는 눈으로 보는듯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습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일의 신학자입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연구한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자체도 부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바’(Abba)로 부릅니다. (Neutestamentliche Theologie, 3판, 67-73쪽).

구약은 심판의 하나님이지만 신약에서는 탕자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돈을 다 써버렸어도 다시 돌아온 아들을 안장주고 사랑해주는 따뜻한 아버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은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두 세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한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물질에 있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정성스럽게 한해를 보내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수색에서 길을 잃고 해메고 있을 때에 경찰관을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될 때에 그 감격은 이루 해아 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말성만 부려도 함께 있는 자체가 즐거운 것입니다. 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The family is the family. 인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모든 식구도 내년 추수감사절에도 함께하는 영적인 추수 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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