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아랫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있고 그리고 백성들이 예수님을 신뢰가 있음을 알고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신뢰가 0%입니다. 바리세인의 아랫사람들은 50%입니다. 반면 니고데모는 90%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조금씩 예수님의 신뢰하는 빈도가 높지만 다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성전으로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입니다. 성경 신명기 22장 22절에는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오직 여자만 잡아 가지고 예수님앞에 왔습니다. 왜냐하면 6절에보면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엇인가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더니 바리새인들에게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땅바닥에 뭔가 쓰셨습니다. 그러자 어른에서부터 젊은이까지 한 사람씩 다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예수님은 감람산과 성전으로 가시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하겠습니다.
집에 대하여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괄호안에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이라고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석을 달았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없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성경에는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평안을 주는 장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마치고 다 집에 돌아옵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자신의 집입니다.
집은 우리에게 부요를 상징하고 사회구성원의 빈부를 구분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나혼자 산다의 김광규가 서대문구의 모래내시장 근처에 재개발하면서 아파트를 살까 말까하다가 6억주고 강남에 전세를 얻고 육중환은 그곳에 집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4-5년 사이에 지금 13억-14억정도 한다고 하는 말을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집은 제산이고 집은 자신의 분깃과 같은 것이라고 꼭 자신의 제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주민등본을 가지고 오라면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친구 조은행의 집은 60년동안 그 집인데 우리집은 이사한 곳이 약 두장도 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어머니의 소원이 집을 장만하는 것인데 아직도 집이 없습니다. 우리 동생들은 다 2체 이상 가지고 있는데 어머님에게 집을 사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사 사면 소천하시고 난뒤에 양도세를 내기 때문에 동생들이 집을 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 중에 최고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기생충라는 영화입니다. 칸에서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한국영화로서 최고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제가 무엇입니까? 집입니다.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우층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갈등입니다. 어떻게하면 그 집을 차지할까하는 생각입니다. 저희집도 세를 살 때에 가정예배를 마치고 나면 늘 하는 주제가 우리가 성장하여 이 선화동의 월세집을 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우리집에 대심방오셔서 설교하시는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 집 형편도 모르고 건축헌금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학개서 1장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자기집를 짓기 위하여 빨랐음으로 하나님이 수입이 적게하시고 배부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교회의 커튼을 하신 것을 보면 우리 형제들이 그래도 이만큼 살수 있었던 것이 순종하는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모든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시게 되었고 그리고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오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집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
그리고 아침에 새벽기도회하려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히브리서 3장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는 김성수장로님 설계하여 익투스 건설이 집을 지었습니다. 모든 집은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교회는 누가 지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예수님이 지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에 종으로서 신실하게 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성을 다하였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교회를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라고 말씀하였고 그리고 끝까지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충성하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구출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온백성들을 위하여 충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온인류의 죄에서입니다. 구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서 온 교회를 사셨습니다.
베데스다라를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서로 들어가기 위하여 경쟁하는 곳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38년동안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인데 한번쯤은 양보해야하는데 양보가 없고 은혜가 없습니다. 자비의 집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베데스다는 오직 1등만 기억되는 곳입니다. 치료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 양보고 없고 누구라도 짓밟고 가는 곳입니다. 마치 응급실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 저곳에서 아픔으로 소리를 지르고 의사의 멱살을 잡고 실갱이하는 곳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평균수명에 볼 때에 평생을 누워서 지낸사람입니다. 극도의 패배감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집에서 나온 사람과 성전에서 나온 예수님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집에서 나온 사람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여인을 죽이기 위하여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나온 예수님은 여인을 살리기 위하여 나온 신 것입니다. 집에서 나온 사람과 하나님의 집에서 나온 사람이 이렇게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모두 죽이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든지 살리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우리 죄인들을 다 살리려고 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여인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돌을 맞는 것이 분명한데 얼마나 이여인이 살려달라고 하였을까요? 얼마나 눈물로 호소하였을까요? 그러나 오직 예수님을 고소하고 죽이려고 이여인의 머리체를 잡고 끌고 예수님이 있는 성전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1) 십계명을 쓰셨든지 2) 그들의 죄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말씀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그들의 죄를 쓰시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제가 성산동 이곳 3고 커피집 앞에서 한 여인이 도둑질이나, 간음하다가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 중에 죄 있는 사람들이 돌로 치라고 하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제말을 들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어린 자녀들이 공원에서 담배를 피고 있습니다. 예전 저 어렸을 때에는 어른들이 종종 훈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훈계하면 큰일납니다. 첫째로 어린 녀석들이 훈계하는 저를 돌로칠것입니다. 둘째로 부모들이 왜 남의 아들 훈계하느냐고 무엇이라고 할 것입니다. 남의 자녀에게 전도도 못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어는 목사님에게 들은 설교 예화입니다.
초창기 대한민국의 교회에서는 상당히 주일 성수와 결혼제도에 대하여 엄격하였습니다. 장로가 되기 위하여서는 결코 이혼해서는 안되는 그러한 교회 내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석 장로님의 아들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제직회와 당회가 소집되게 되었고 이를 결정하는 과정속에서 목사님이 이렇게 처신하였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육신의 아버지는 현재 수석장로님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아버지는 바로 이 목사입니다. 그런데 영적이 아버지가 바르게 훈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사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목사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목사님의 판결에 대하여 제고할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그리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알아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기로 가결하였다고합니다. 그렇게 얻은 새 며느리는 교회 성도가 되고, 집사가되고, 그리고 현재 권사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 아름답게 미화된 것들
‘아프리카의 성자’ 라고 존경받는 슈바이쳐 박사도 원주민과 끊임없이 불화와 갈등을 겪었으며, 자기가 치료하는 환자들을 매우 냉정하게 대하며 아프리카 흑인들을 무시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을 준 사람으로 유명한 월트디즈니가 사실은 FBI 비밀 요원이었으며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반유대주의 운동을 벌였으며, 철저한 알콜 중독자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돌을 맞을만한 죄가 다 있습니다. 마귀는 그것을 들추어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06년 3월 출간된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십일조>·이채윤, 미래사)는 지금까지 8만 부 넘게 팔렸다.”록펠러는 지금의 가치로 환산할 경우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보다 무려 세 배가 넘는 돈(약 172조 원)을 벌었다.…그는 40명이나 되는 직원을 두면서까지 정직하게 계산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남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뒤로 오히려 재산이 점점 불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225~261쪽).”
그런데 다른 책에서는 록펠러가 저지른 석유사업 불법독과점, 노동착취, 사업스파이 행위, 정치인의 로비를 저지른 사람이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하여 만든 재단과 복지재단 학교가 많이있다고 책은 서술하고 있습니다. “록펠러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을 생각하면 그의 자선 사업은 한낱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https://50sam.tistory.com/33 [은하계에서 나대보기]
● 육적인 집에서 나와 영적인 집으로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둘째로는 야곱과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집을 떠나 라반 외삼촌의 집에서 많은 부를 얻어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요셉도 자신의 집을 떠나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모세와 다니엘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부귀와 영화를 떠나 고난의 출애굽을 시작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국무총리를 다른 세 왕이 바뀌면서 계속적으로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들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바쁘게 돌아갑니까? 세상이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한가지 기도 제목밖에 없습니다. 정년을 3년 반 남았는데 점점 몸이 피곤합니다. 그리고 학교는 멀리 인천에 있고 새벽기도회는 하고 싶은 몸은 일어나지 않고 점점 힘들어집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새벽기도하면 잘 안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그때마다 힘을 주시고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선생님들이 휴직을 하고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근무하고 있는 사모를 볼때에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이 성령의 힘으로 도와주셔서 잘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4층에서 살지 않고 2층에서 살고있습니다. 정년퇴직하면 4층으로 모든 짐을 옴기려고 합니다.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다르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간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르게 살도록 교화하는 장소입니다. 웃시아 시대의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
우리 대한민국과 온 세계의 사람들은 오직 두 개의 영안에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이려고 하는 마귀의 영이고, 하나는 살리려고 하는 예수님의 영입니다. 교회에 들고 나는 사람들에게 살리는 영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웃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 여인은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흘렸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게 결심해도 안되고 그렇게 노력해도 변하지 않던 것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사랑을 받을 때만 옵니다. 영국에 스로스츠라는 사람이 교도소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복역하다가 풀려났습니다. 그가 출옥하던 날 모두는 그가 곧 다시 들어올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도무지 다스려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출옥하던 날, 구세군 숙박소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날 밤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후 구세군 출옥자 보호소에서 18년을 봉사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가죽 채찍으로 400대나 매를 심하게 맞고 40년 동안이나 교도소에서 생활했어도 변화되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렇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목사님 설교 참조)
사람은 매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