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16절 베드로의 고백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0년 4월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의 공생에 마지막 부분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3년 6개월을 총정리하면서 수련회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세상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내가 복되도다 이를 알게 한 것은 혈육으로 알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하셨다고 하시면서 그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그 교회를 음부의 권세 사탄이 이기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00년지난 지금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하여 다시 한번 묻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아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나를 알고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쇼펜아워는 자신을 알기 위하여 공원에 있다가 공원 관리인에게 당신는 누구인데 이곳에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라고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에 하나님이 그 고백을 듣고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어려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벧전2장 8절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다르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계시는가요?
여러분들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도 뉴스에서 들었듯이 이만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만희는 신천지교회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교회는 교회인데 예수님의 고백속에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름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다 그러합니다. 문선명의 이름위에 안산홍의 이름위에 그리고 장길자의 이름위에 수많은 이단교주의 이름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당하고 고통가운데 살아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무척이나 안타갑고 마음 아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를 통하여 이만희의 정체가 들어나고 그리고 CBS, 기독교단체인 한기총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전국민이 이만희 신천지교회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 것을 여실히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코로나로인하여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오존층이 청소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움직일 수없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밖에 없습니다. 잠시 지구를 3달동안 쉬게하니 세상이 깨끗하여지고 동물과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는냐의 질문속에 세상사람들은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 그리고 선지자중의 하나님입니다. 1/4만 맞은 것입니다. 선지자이면서, 왕, 예언자, 그리고 주 등 모든 것이 다 합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2. 반석위에 세운 내 교회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야곱은 삶의 고백일 이렇게 하였습니다. 내 나그네 시절에 험악한 시절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 에서를 만날 때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심히 두렵고 답답한 현실 가운데 있습니까? 야곱은 그때에 얍복강에서 주님과 씨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나 우리의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지독하게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지독한 역사속에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갈망함이 진해집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태백산맥이나 남부군과 같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전라도 지역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다 백련산으로 순창군 화문산으로 지리산으로 모여서 남부군을 조직하고 국군과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해방된 후에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고통과 슬품이 우리 주변에 우리 삶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전라도에 있는 사람들이 정권 제창출을 갈망하는지 모릅니다.
화가나 그리고 소설가의 모습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은 고생한 흔적이 그 작품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결혼하여 행복할 것 같은 데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4명입니다. 어려분 한명의 아내도 힘들은데 4명의 아내와 함께 살면서입니다. 힘들었습니다. 결혼하면 힘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모가 가끔 보는 부부세계라는 드라마를 볼수 있습니다. 그 아픔의 흔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은 돈을 열심히 벌려는 일밖에 없는데 자식과 남편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파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천국 열쇠를 잘 사용할 줄 아는 교회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천국열쇠는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고 하였습니다.
열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문을 잠그고 문을 열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도둑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로 우리를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과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신천지의 악한 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쇗때)
신천지의 사람들이 교회를 밭으로 생각합니다. 신천지 추수꾼들이 교회들어와서 성도들을 30만명이나 빼갔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여 절대 부끄럽게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리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교회마다 선천지 들어오지 말라고 현수막을 건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키의 역할이 창세기 에덴동산에서는 가죽옷이고, 노아시대에서는 방주이고, 모세시대에서는 어린양이고,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심판의 주로 오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키의 역할은 바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와 예수님의 권세가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예수님의 권세가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에 이러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잠언 29장에 성질 급한 사람과 미련한 사람과 새기 빼앗기 곰이 있습니다. 제일 안좋은 상태는 1) 성질급하여 일을 그릇치는 사람입니다. 2) 미련한 사람입니다. 3) 곰을 만난 사람입니다.
4. 반석인가 걸림돌인가?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한국교회가 욕을 얻어먹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최대한 노력하였습니다. 주일 성수를 위하여 먼길 걸어가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려고 새벽기도를 하고 그리고 수요예배 철야예배를 늘 가까이하고 세계에 유례없는 헌금을 한 우리 민족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이 다른 것은 바로 헌금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아깝지 않는 성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드리는 것을 철저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에 엉청나게 말을 잘하고 기도도 그럴싸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가식적으로 신앙생활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처럼 행동합니다. 다른 보는 앞에서 금식한다고합니다. 나는 사십일 금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소리로 그렇게 산다고 자랑하지는 못지만 정말 정직하게 살려고 순수하게 살려고 바르게 살려고 매일 조금씩 새벽기도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고백하였지만 세절도 못되어서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자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부인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저주하는 베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닭이 울게 되고 통곡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신앙생활하면서 크게 장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앞에서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살기위하여 노력하고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눈물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일들을 바로 걸림돌입니다. 가정에서도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베드로처럼 부족하게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시 주님이 찾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실 때에 예 주님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드는 주님입니다. 주님이 없다면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성원교회를 주시고 그리고 목사님과 성도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드로의 이중성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죄짖고 그리고 다시 회개하고 다시 나오는 성도들의 모습속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면서 성원순복음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은 베드로에게 그리고 교황에게 그 키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뜻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조금씩 사랑이 식어져 뜨거움이 없지만 서로 예수님의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예수님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예수님의 바다 한가운데서 오라고 할 때에 제자들은 배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베드로만이 주님 하면서 물결 위로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 부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 잡에 일으키시면서 배로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요? 아마 베드로는 주님의 손을 꽉잡았을 것입니다. 너무 꽉 잡아서 예수님의 손이 아빴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꽉 잡는 길이 자신 살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물에 빠지 않도록 주님을 꽉 의지하면서 배안으로 들어갔을 것을 베드로 그 후로 주님을 생각할 때에 확실히 붙잡아겠다고 생각하며 큰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성원순복음교회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위에 성도들이 모인 에클레시아가 되어서 성원순복음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로 베드로처럼 사탄의 짖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도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다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고 다시 사명을 주시는 곳이 바로 성원순복음교회입니다. 여러분 찬송가 가사처럼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찬송가 208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