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2월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는 요즘 원균과 이순신 장군의 비교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느냐와 마지막에 어떻게 죽는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역사에 평가가 달라집니다. 1592년 임진왜란 두달전에 원균(52세) 경상우수사로 발령을 받게 되고 3,4척을 가지고 왜적과 싸움하여 전과를 올림, 20일 뒤에 이순신도 함류하여 왜군 26척을 격파합니다. 원균은 선조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계를 올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장의 머리도 없는데 다음에 하자하고 한산대첩의 승리후에 승전 장계를 혼자 올리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원균과 이순신은 갈등하게 되고 조정에서는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임시킵니다.
왜구는 2년뒤 부산 앞바다에 왜구가 출몰했다고 거짓정보를 흘려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출전하라고 하였지만 이 명령을 거절합니다. 원균이 수군은 명령에 복종해야한다고 하면서 조정에다가 상계를 올립니다. 선조가 이를 기뻐하여 이순신은 옥에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게 됩니다. 왜군의 제 침공으로 원균과 수군은 출전하지만 전장에서 패전하고 원균은 전사하게 됩니다. 옥에서 풀려난 이순신은 12척으로 명량해전에서 133척을 무찌르고, 노량해전에서 450척을 무찌르고 자신도 최후를 맞게 됩니다.
선조는 이렇게 그들을 평가했습니다. 원균과 이순신은 협력자이면, 책임은 원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잘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나라의 일등공신은 원균, 권율, 그리고 이순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정실록에 원균은 패장이요, 겁쟁이로 기록되었습니다. 두분다 모두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데 역사가는 한 사람은 영웅을 한 사람은 패배자로 만들었습니다. (박남일의 역사블러그)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생명책에 우리의 삶이 이렇게 기록되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삶을 공평하게 평가하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면 하나님에게 칭찬받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성경에서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가장 와 닫는 본문이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의 말씀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원도 응답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면 하나님의 심오한 것도 알수 있도록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적인 말씀이고 12장 -16장까니는 실천부분입니다. 본문 12장부터는 성도들 자신(2절까지), 성도가 다니는 교회생활(8), 그리고 사회생활(21절까지), 그리고 국가에 대하여 (13:14까지), 그리고 성도와 성도사이의 권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12장 1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이렇게 살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부드럽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이 기뻐히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산제사, 즉 영적예배입니다. 영적인예배 즉 성령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요소가 있다면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고, 그리고 말씀이 있고 헌물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중에서 기도와 헌물과 변화된 생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찬양이 중요합니다.
예배전에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예배 중간에 찬양을 드립니다. 찬양하다라는 것은 칭찬하다. 찬미하다 존경하다 믿는다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이유를 우리의 찬양을 받기 위함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에 악귀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찬양할 때)
찬양을 부를 때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찬양할 때)
찬양을 부를 때에 문제의 옥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찬양할 때)
우리는 오페라 가수처럼 찬양을 정확하게 불러야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고 성품을 다하여 찬양을 으리는 것입니다. 찬양을 받아주시는 분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회자나 성도님들은 찬양을 조금 곡조가 맞지 않아도 열심히 힘있게 찬양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등부도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에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2)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무디 목사님은 기도를 영적인 최고의 무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행기가 스텔스기라고 합니다. 스텔스기만 레이더에 안 잡힌다고 합니다. 비행물체가 떳을 때에 레이더를 쏘면 그 위치를 알려주는데 스텔스기는 레이더를 되례 흡수해버립니다. 반사시키지 않기 때문이지요. 쏘기를 아무리 쏘아도 아멘하고 받아버리고는 안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텔스기 세계 최고의 무기이고 이보다 더 비싼 무기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찮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마귀가 그 사람의 정체를 알수 없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향하여 어려가지 공격을 합니다. 자녀 직장 그리고 건강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게 공격하더라도 기도로서 아멘 아멘하면 아무리 쏘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마귀가 별이별 계획을 세워 봐야 기도의 스텔스로 물리칠 수있는 것입니다.
어는 집사님의 간증 편지를 읽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는 참 으로 버릇없고 철 없는 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죄악 중에 이러게 사는데도 기도로 요청만하면 어떤 어려운 부탁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한 큰 계획이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나에 대한 하나님의 큰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께 질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저에 대한 주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한두달쯤 지난 어느 새벽에 하나님께 똑같은 질문을 하는데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는 네가 싫다. 늘 죄에 빠져 있고 맘에 드는 것도 없고 너를 돕는 것이 실지만 네 아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너를 늘 지켜 주고 도와주는 것뿐이다.” 하는 음성이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한자 한자 새겨지듯 전달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 너무 부끄럽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한한 마음과 함께 너무 초라하다는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전쟁 중에 부모님을 일으셨다는 것과 교회 새벽 종소리에 맞춰 늘 새벽기도회에 나가시던 모습입니다. 한 벌 뿐인 마늘색 한복은 교회에 갈때만 입는 옷으로 늘 단정하게 다림질 되어 벽에 결려있었고, 어려운 살림중에도 성경책 속에는 항상 헌금할 지폐가 들어 있었으며 큰 형이 훔쳐가도 아무 말씀없이 다시 또 지폐를 넣어 두곤하였습니다. 낮에 일하실때는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와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하면 늘 찬송을 부르시면서 밝은 표정으로 일하셨습니다. 저는 찬송하시는 어머니의 주위를 맴돌곤했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어머니처럼 기도하지 못하는 저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처럼 훌륭한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야할 나의 기도인 것 같습니다.
보스톤에 있는 어느 신학교 교수님의 글이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격이셨는데 예수님의 모든 생애가 기도의 생애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기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 즉 십자가 위에 계셨던 시간이 전부 기도의 시간이였습니다. 가상칠언이라 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단지 일곱마디의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상칠언이라고고 하는 그것이 단순한 소리지름이 아니라 전부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달려계셨던 6시간이 모두 기도의 시간이였습니다. 권위있는 많은 성경학자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입을 모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쳤습니다. 마지막 기도 엘리 엘리라고 외치신 그 모든 것이 기도입니다. 마지막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기도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는 출발부터 마지막으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치를 때까지 그 생애가 기도였습니다.
3) 예배에는 예물이 있어야합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가 바로 예물을 드림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시간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바로 이러한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물을 드리는데 잘 드려야한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을 드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통독을 하다가 놀라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면 첫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러 이곳에 왔습니다. 예배를 드리면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께 열랍되기를 원하시오. 이렇게 아까운 시간에 눈을 감고 졸음을 청하기 위하여 오신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무서워서 그리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세상 사람들의 안목을 생각하여 오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 받기 위하여 성경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인지, 하나님이 복주시는 비결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볼수 있습니다.
창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의 제물은 첫소산이 아닙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1) 피의 제사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2) 믿음으로 들렸다고 생각합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첫 새끼를 좋아하시고 그 예배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브라함도 첫 번째 아들을 드렸습니다. 하나님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주셨습니다. 처음 시작을 드린 것입니다.
출 12: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출 12: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아들도 첫 아들 곡식도 처음곡식, 절기도 첫달인 유월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새해 첫달 첫 시간 다른 더 좋은 시간들이 있습니다. 24시간중에 새벽 첫시간 즉 새벽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세계에 수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는 나라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후진국이며 그리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구제하고 원조를 베푸는 나라로 변화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새벽기도회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무엇을 하든 처음 하는 것에 많은 정성과 시간과 가진 모든 것을 아낌 없이 투자합니다. 그래서 첫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처음 교구를 발령받았을 때에 만수 5교구입니다. 지금 있지 않고 그분들에게 연락이 가끔옵니다. 다음 주 토요일이면 제가 주례를 섭니다. 지금도 우리 사모는 김예순 집사님에게 가서 머리를 깍고있습니다. 왜요 처음 사랑입니다.
잠 5: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잠 5:17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잠 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 5: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처음 젊은 시절에 아내와 만나서 결혼한 그분을 가장 귀한 것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벽기도는 하루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당신의 첫 시간 하루의 시작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앞에서 기도하며 무릎을 꿇어 앉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마음을 기뻐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예배후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는 좁은 의미의 예배가 있고 넓은 의미의 예배가 있습니다. 좁은의미의 예배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예배순서입니다. 또한 가정에 드리는 가정예배, 구역예배 그리고 수요일날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서의 예배가 있는 우리의 삶속에서 삶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예배당에서 예배도 드리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밖에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한 예화를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모로카이 섬에 유배된 나병환자들의 참상을 보고 크게 마음이 움직여 자원하여 그 곳에 들어가 나병환자들과 일생을 함께한 위대한 선교사다. 처음에는 온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데도 나병환자들이 도무지 받아 주지를 않았다. “당신은 감정이 사치스러운 사람이오.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당신 같은 정상인으로서는 오히려 향락이 아니겠소?” 하며 그의 진실된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이에 다미안 신부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하나님, 차라리 제게 문둥병을 주십시오.” 마침내 그 역시 문둥병 환자가 되었다. 그런 다음에야 문둥병 환자들이 그를 친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다미안 신부는 신자들에게 강론을 할 때 “나의 형제 여러분….”이라는 말로서 강론을 시작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그는 그날 느린, 그러나 의미심장한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우리 문둥병자들은……”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 말은 다미안 신부 또한 나병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다미안 신부는 진심을 다해 나병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 또한 나병환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미안 신부가 평소에 늘 바라고 있던 일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나병 환자들의 친구가 되려면 자신 또한 나병환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나이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1889년 4월 15일에 운명할 때까지 몰로카이에 계속하여 생활하며 나환자들을 돕는데 생명을 다 바친 것이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종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다미안 신부에 대한 기사가 전세계로 타전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온 세계 사람들이 다미안 신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를 대표하는 인물에 선정되었다.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복되었다. 그분을 복자(福者: 예비성자)품에 추존하였고, 신부의 고국인 벨기에는 그분의 유해를 자기 나라로 옮겼다. 다미안 신부의 유해가 벨기에의 엔트워프 항구에 도착하자 검은 예복 차림의 벨기에 국왕이 그를 정중하게 맞았다.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의 죽음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나병을 연구하기 위한 ‘다미안 연구소’가 세워졌다. 하와이의 칼라우파파 선착장에는 다미안 신부의 거룩한 삶을 추모하는 십자가가 세워졌다. 몇년후 몰로카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Damien 신부 시신의 일부를 벨기에 정부에 요청했고, 그의 오른팔을 받게 되었는데 그 오른팔은 그들이 다미안 신부를 배척할 때 그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며 안아 주었던 바로 그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