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31절, 솔개의 선택,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주일설교 솔개의 선택
마 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 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날 텔레비전 방송에서 사극은 변함없는 시청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짭짤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저는 보지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해를 품은 달과 대조정 그리고 광개토태왕이 그것입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시대를 통하여 진부한 사랑에 대해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꽤 쏠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런데 사극에는 허구도 등장합니다. 바로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진짜 역사인가 하는 생각이 시청자들에게 전달 될수 있습니다. 역사로서의 사실과 예술작품의 허구가 결합하면 만들어진 작품을 팩션 (Faction)이라고 합니다. 팩션 소설의 원조가 바로 삼국지입니다.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세웁니다. 건국후 200년이 지나면서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고 서기 25년에는 후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그러나 서기 105년에 코흘리개 황제들이 등극하면서 외척의 세력들이 50년동안 노골적으로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리고 수를 해아리기 어려운 봉기가 전국 각지에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봉기군의 수가 100만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부터 선비족 흉노족의 침입으로 후한의 왕조는 바람앞에 등불입니다. 소용돌이 치는 반란의 가운데서 봉기군을 짓밟아 버린 쪽은 후한의 왕조의 정예군이 아니 원소와 조조, 동탁같은 지방 군벌들입니다. 그리고 208년에 유비와 장비, 관우 등이 나타나 위 촉 오 3국이 형성됩니다. 이 때 소설을 쓴 사람이 나관중이라는 사람인데 역사적인 사실 (Fact)와 그리고 흥미와 재미를 첨부한 픽션 (fiction)입니다. 정말로 너그러운 장군 관우일까? 인격적으로 훌륭한 황제가 유비일까? 유가 격퇴한 전투도 소설속에서 제갈량의 업적으로 둔갑되고 패한 전투에 대한 제갈량의 책임은 소설속에서 슬며시 제거됐었습니다. 정말로 삼국을 통일한 조조의 후손들이 그렇게 교활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조가 살아난다면 나관중이 어떻게 될까요? 이러한 것들이 다 역사와 재미가 만들어낸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끄럽고 챙피한 부분들까지도 모든 부분들이 다 사실적으로 기술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생명이 있고 성경은 하나님의 숨소리요 진리이기 때문에 꾸미거나 픽션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하려고합니다. 겨자씨와 누룩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겨자씨와 누룩은 미약합니다. 초라합니다. 그러나 성장하고 난뒤에는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양의 빵이 됩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와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이와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겨자씨에 대하여
마 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어떤 씨입니까? 톡쏘는 맛이 있어서 양념 향료로 사용합니다. 잎은 쌈을 싸 먹기도합니다. 겨자씨는 씨중에서 제일 작은 씨입니다. 우리나라에게 작은 씨를 깨알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깨알보다 더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자라나서 나물보다 더 크고 그리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데서 출발합니다. 우리 주님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처음부터 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작은 부분에서 출발합니다. 아담의 출발이 그러하듯이 예수님의 출발도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12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작은데서 출발하여 전세계의 1/3이상이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 예수님을 믿게 하지 그랬어요.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인간을 기계인간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작고 부족한 것부터 출발합니다.
작은 겨자씨도 소홀히 하면 아무런 능력도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 작은 씨앗이 심기여지고 그리고 자라나게 될 때에 그것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맞겨주시는 겨자씨 성원순복음교회에는 작고 하찮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소홀하게 보지 않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고 태산도 티끌부터 모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태평양의 물도 한방의 물방울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분이 시작하여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고 그리고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안디옥으로 그리고 소아시아로, 로마로 그리고 유럽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대한민국까지 이르렀습니다. 작은 나라에 무슨 선한 것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들입니다. 38도선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B6%81%EC%9C%84_38%EB%8F%84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4/Earthmap1000x500compac.jpg
전세계를 지배했던 나라이고 현제 지배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에 좌측으로 중국입니다. 현제 세계 2대 강대국입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이란 이라크입니다. 이란은 페르시야 제국(메데와 파사)으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였습니다. 이라크는 성경에 자주 등장한 나라입니다. 바로 바벨론이라는 나라입니다. 지구의 종말이 바로 바벨론의 멸망입니다. 그리고 터키라는 나라입니다. 오스만터키제국입니다. 그리스입니다. 세계의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헬라문화의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로마민족입니다. 전 세계의 길이 바로 로마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적의 함대입니다. 스페인입니다. 스페인 남미지역의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여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일본을 쓰십니까? 한국을 쓰십니까?
겨자씨와 같은 마더 테레사가 즐겼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I am nothing)입니다. 인도의 빈민촌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더 테레사는 인도정부도 부자 기업도 못하는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죽어서 무덤까지 만들어주는 역사를 그녀가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은 무한하시고 극대적인 것입니다.
● 여러분 이 나무들이 자라서 누가 해택을 봅니까?
인간들이 그들의 해택을 보고 성경에서는 새들이 와서 깆들은 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120년전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병원과 학교와 예배당을 세우셨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그리고 예배당을 통하여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인권들이 살아나고 나라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헤세의 작품중에서 어거스터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였습니다.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의 사랑도 받고,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만 받고 베풀지 못하니까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거스터스는 노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그런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또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어거스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2. 누룩이 있습니다.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여러분 예수님의 누룩의 비유를 두 종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룩은 좋은 종류의 누룩을 의미하고있습니다. 빵에 누룩을 넣으면 부드럽고 그리고 양도 많아집니다.
둘째 누룩은 잘못된 누룩, 썩은 누룩입니다. 잘못된 누룩을 넣으면 빵과 음식이 썩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잘못된 누룩은 바리세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세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우리 몸속에 잘못된 누룩이 들어오면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다쳐서 죽는 것이 아니라 병원균으로 죽는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찮가지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영적으로 병원균인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를 죽이고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교만하게 만들고 바리새인처럼 썩은 누룩으로 살게 만든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는 척, 자신의 기도를 나타내려고 하는 척 그리고 자신의 헌금을 자랑하는 척 자신의 금식을 자랑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아무도 없는데 성전에 들어가서 혼자 열심히 기도한적이 있습니다. 누구 보라고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에는 참으로 하나님이 제 기도를 잘들어주셨습니다. 없는 형편에 공부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요즘은 제가 바리새인된 기분입니다. 남이 있을때에는 큰 소리로 기도하고 남이 없을 때엔 아무 생각없이 기도도 안하고 있고 잡념만 가득한 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제게 못된 누룩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룩을 넣지 않는 방은 유대인들이 유월절날 먹는 무교병과 같은 딱딱한 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누룩을 넣으면 많은 양이 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가룩 서말 속에 갖다가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누룩 서말은 괭장히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창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우리나라의 표현으로 말하면 한다라로 바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많은 양의 가루속에 들어가 가루를 부풀게 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60년전에 필라텔피아의 존이라는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비만오면 길이 질턱이고 그리고 성전으로 들어가는데 다 신발과 성전이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벽돌 한자씩 매일 사가지고 성전입구에 깔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누룩과 같은 행동입니다. 조의 모습을 교회의 어른들이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무디어졌던 어른들의 마음이 움직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깨끗하게 포장되었고 그리고 교회 내부까지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존 와나메이커 나중에 백화점왕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YMCA 빌딩을 지어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오 나사로를 읽다가 스스로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부자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지옥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처럼 잘먹고 잘 살다가 가는 것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정리하고 밀림속으로 들어가 여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술과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흑인 여인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박사님은 박사학위가 3개이면 모든 것을 소유하신분이 왜 이곳에 오셔서 고생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슈바이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예 제게는 말로서 남을 감동시킬수 있는 재주가 없고 글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예수님처럼 몸으로서 실천하였기에 저도 그렇게 하려고 왔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슈바이처의 작은 누룩이 온 아프리카에 복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3. 우리교회의 겨자씨와 누룩의 희망을 가지며….
http://www.youtube.com/watch?v=meBQBVBDLvs
저는 지난 주일날 빛나와자매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빛나와 자매님의 다른 자매님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 2002년입니다. 그때에 19살인듯 싶습니다. 고3입니다. 엄마 정서남 권사님이 열심히 자동차를 태우고 학교고 그리고 교회에 같이 오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우리 범섭이 선생님이 제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대학생이고 그리고 직장을 잡으려고 하는 빛나와자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서남 권사님이 결혼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결혼해야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빛나와 자매님이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었듯이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와 홍철기목사도 그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겠지 변화없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하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저 그런 솔개처럼 죽어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변화하는 곳에 하나님이 늘 간섭하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색에서 120만원 월세와 그리고 집세 때문에 남의 터전에 무임승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나 기도하시는 분들이 홍목사님 절대로 남의 터에다 집을 세우지 마십시오.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언제나 서쪽으로 복음을 증거하여 안디옥으로 빌립보로 그리고 고린도로 마침내 로마까지 복음을 증거하여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 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성원순복음교회가 2012년은 변화의 성원교회가 되시를 바랍니다.
성원순복음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매일 희망있고 그리고 소망있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어디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이고 좋으신 하나님이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 계시니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내일이 불안하더라도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봉고차)
결론입니다.
마 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교회에 소망을 주셨고 그리고 우리주님이 우리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하려고 할 때에 변화할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말들어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도는 마음의 자세는 바꿀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출처] 마태복음 13장 31절, 솔개의 선택, 홍철기목사|작성자 h1004c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