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31절, 살아계신 하나님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6월 15일

마태복음 22장

  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뒤집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은 끝임없이 자신의 몸을 뒤집고 일어서려는 행동과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임 뿐만 아니라 소리 냄새까지 의미하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움직임(動)입니다. 생명체는 아주 작은 송살이라도 한강에서 불강천을 따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움직임에는 소리(聲)가 있습니다. 작은 파리도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 움직입니다. 또한 냄새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냄세로 알아내서 개들은 그 냄새를 찾아 발견합니다.

 

그러나 살아있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그곳에서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고, 냄세도 없습니다. 물론 썩은 냄세가 있겠지만, 그러나 오래되면 냄세까지도 동화되어 냄세자체가 없습니다. 요즘 한국에 많은 농촌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없이 점점 공동묘지 되어간다고합니다. 이제라도 살아있는 도시에서 살아있는 농촌으로 바뀌어야합니다. 이 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한국교회가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살아나야합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가 살아나야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에 집중하게 될 때에 우리의 신앙생활도 살고 우리의 교회도 살고, 우리의 삶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1.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판단하고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책 속에 있습니다. 성경책이 살아납니까? 영화처럼 책이 살아서 움직입니까?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성경책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책은 무생물입니다. 성경책을 만들어 팔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성경책은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호텔에 들어가기도하고 성경책은 사람 사는 가정집에 들어가 그곳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살아움직여 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성경책은 살아있기 보다는 죽어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 우리의 전부를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았다기 보다는 죽었지만 성경을 여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날 수 있는 힘이 있고 하나님의 향기와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살아난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은 어거스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원하지 않는 명령만 따릅니다. 어거스틴은 습관의 무게에 늘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지 않고 마음과 영혼의 병만 키우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곳으로 용기를 내어 고개를 돌렸을 때에 순결한 절제의 영이 함께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회록 12장에 어거스틴은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로 도모하지 말라” (롬13:13~14)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이상 읽지 않아도 이 성경구절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모둔 어둠의 그림자를 몰아내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사람 조지물러입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서 10세가 되기전에 부모님의 돈을 상습적으로 훔치는 탕자였습니다. 19세에는 거짓말과 술을통하여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고,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고, 두차례 무서운 질병을 앓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편 68편 5절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93세까지 3백만명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영국의 블리스톨에 있는 애슐리에 고아원을 세워 2000명이 넘는 고아를 기도로 양육했습니다. 66년동안 고아를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는데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생애동안 5만번 이상 기도의 응답을 받았고, 15만명의 고아들에게 아버지라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고아원을 운영할 때에 사람들에게 한번도 손을 빌리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말씀에 대한 확신과 기도에 대한 애착심으로 매순간 순간이 기적의 삶이였습니다.

 

“한 시간 기도 후에 네 시간 일하는 것이 기도 없이 다섯 시간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고아원을 새로 건축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한지 400일이 지났다, 그 분께서는 나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고 계셨다.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분이 정하신 시간에 도와주실 것을 반드시 믿는다.” “나는 오늘 400명의 새 고아들을 수용할 새 고아원을 개원하였다. 이것은 내게 굉장히 귀중한 일이다! 왜냐하면 매일 7년 동안 기도를 드린 후에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복은 결코 우연하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온 결과이다!”

 

  1.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증거 예수님의 부활사건

베드로전서 1장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물론 죽어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지만 다시 죽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확고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 니고데모, 로마 군병들의 처헝, 그리고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11 사도에 보이시고 500여 문도에게 보이셨다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삭되지 않은 사도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부활의 주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확신과 살아계신 확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자 밥이 되면서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간 모든 나라에게서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 인구가 1%도 안되지만 1% 안되는 사람들 속에서 산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죽어가면서 순교하는 모습을 침묵이라는 글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역사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교회를 세운 나기창목사님이 어디 계실까?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입니다. 비엔나순복음교회에 목회하고 계시는데 너무 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순복음선교대회에는 순복음 유럽·아프리카·아시아 3개 총회가 참여하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측 이영훈 총회장이 강사로 참석한다.오스트리아 비엔나 순복음교회(담임 나기창 목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제 2대 목사님은 여러분들이 더 소식을 잘알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의 부흥은 저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겠다는 생각이였습니다. 양에게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해충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름을 머리에 바릅니다. 양은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눈 앞에 뭔가 움직이면 그것만 보고 따라갑니다. 잘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다리가 약해 빠르지도 못하고 주심을 잘 잡지 못해 넘어집니다. 양은 무척이나 이기적이여서 서로 치고 받고합니다. 목자가 없으면 도저히 살수 없는 동물입니다. 약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물중에 하나로 기록되고있습니다.

 

목동출신인 필립컬러는 양들을 공격하는 가장 큰 적은 파리 떼라고합니다. 쇠파리, 말파리, 뒤꿈치파리, 코파리, 사슴파리입니다. 그중에 코파리는 양의 코에 덮인 촉촉하고 끈끈한 점막에 알을 낳으려고 윙윙거리며 기회를 노린다고합니다. 만일 코파리가 그 곳에 알을 낳아 며칠 내로 부화가 되면 그 유충들은 양의 콧구멍을 통하여 머리속까지 파고들어 각종 질병을 유발합니다. 그러면 양은 고통스러워하며 양의 머리를 나무나 바위나 바위에 부딛치며 데굴데굴 구른다고합니다. 이때 팔레스타인의 목자들은 여러가지 향료를 섞은 올리브 기름을 양의 코나 귀나 목이나 머리 주변에 발라줍니다. 고통이 심한 양들은 아에 기름통에다 양의 머리를 잠기게합니다. 그때에 상용하는 올리브 기름이 양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준다고합니다. 더 이상 파리 떼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합니다.

 

둘째로는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 양끼리 싸움이 없어집니다. 양은 머리로 서로 받는 습관이 있어서 서로 싸울 때에 머리를 들이대고 밀어내치면서 받으면서 싸웁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두면, 밀치면 미끄러져버려서 싸울 재미가 없어짐으로 싸우지 않게 됩니다. 양들끼리 분쟁을 막기 위하여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릅니다. 양이 배부르게 풀을 먹으면서 살이 찌고 있을 때에, 먼데서 이리나 다른 양을 해치는 짐승들이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양을 잡아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목자가 잠도 안자고 밤낮으로 지키고 있으니 원수가 양을 해치지 못하게 됩니다.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름같이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이 부워저야합니다. 그래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이 우리 머리위에 흐르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원순복음교회를 세우는 일에 마치 예수님을 신랑으로 우리를 신부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신혼일 때에 남녀가 꽁깍지가 쓰워져서 그냥 보기만 하여도 좋지만, 남녀가 살다보면 단점과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보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해야합니다. 설거지, 빨리, 밥도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래야 오래갈 수 없습니다. 교회 신앙생활도 목사 혼자 하기 보다는 서로 힘을 합하여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예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해야합니다.

 

저도들에게 옳은 말을 하면 그것이 싫어서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간섭하는 것이 싫어도 멀리 멀리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장모님이 치매로 인하여 아무리 이야기를 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집으로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성령의 기름을 우리의 머리에 발러야합니다.

 

 

  1. 살아있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살리십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20:2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실 때 상황 가운데 아브라함은 죽고, 이삭도 죽고, 야곱도 죽었습니다. 모세의 당시에는 모세는 살았고, 지금 신약 시대에는 내가 살고 있고, 너희들 시대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도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살아계시는 예수님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순과 같이서 살아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올무에 넣으려고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선민이라도 할지라도 죽은 뒤에 부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듯이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냥꾼이 하루는 독수리 한마리를 발견하고 활을 겨누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독수리는 제가 금방 화살에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이 그 독수리의 앞을 보니 뱀이 한마리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뱀을 잡기 위해 쏘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은 독수리의 발톱은 생각도 못하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뱀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는 잡아먹을 무당벌레를 내려다 보느라 바로 곁에 닥친 뱀의 혓 바닥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무당벌레는 천천히 기어가는 진딧물을 노려보느라 개구리의 위험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모두들 이러고 있는게 기가 막히다고 생각하다, 혹시 날 노리고 있는 놈은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섬뜩했습니다.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거기엔, 보통땐 생각도 해보지 못한 놈이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죽음’이 사냥꾼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놀이터에서 해가지도록 놀았는데 요즘은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참 각박한 세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평강이가 핸드폰 유심칩을 잃어버려서 그것을 한국에서 하려고하는데 안되는 것입니다. KT에 갔더니 재외공관에 가서 인감증명서를 해서 그 서류를 보내서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서를 띠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냐고 했더니 농촌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을 도용하여 핸드폰을 사용하고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조용기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오느 여집사님이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으로 교회에 찾아나와 열심히 기도후에 조용기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아서 다음 주에 정말 은혜로운 말씀을 해주시겠지 하고 조용기목사님을 기대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 아는 아담 이야기,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안되었습니다. 몇주간을 그렇게 보내다가 조용기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왜 처음 조용기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는데 왜 다음주에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조용기목사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고합니다. 처음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와서 찬양하고 말씀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인간 조용기목사를 바라보 왔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면 찬송 가운데, 예배 가운데 기도 가운데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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