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장 25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7년 1월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성경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표현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에 하나님은 네가 선곳에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전쟁에서 패한 뒤에 맨발로 예루살렘을 내려갔습니다.
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없이 굴욕으로 내려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맨발로 갈보리로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심으로 맨발로 걸어가심으로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으로 오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들로부터 권리를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고, 여우도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도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돈 예화를 들을 때에는 누군가에게서 동전 한 닢을 빌려서 예화를 들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생아라는 사실 때문에 동네에서 멸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 때문에 모욕과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죽고 난뒤에 남겨놓으신 유산이 없기에 남의 무덤을 빌리려서 장사지내게 되었고 마지막 까지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깊은 권세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주님은 이러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우리에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8: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힌두교에서는 모든 물질 세계는 악하다고 하고,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돌아서는 길만이 도를 깨닫게 되어 산속으로 들어가 도를 딱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보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상을 보기 좋게 만들어야합니다. 내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모세처럼 맨발로 주님의 세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십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신발이 아니라 발바닥입니다. 맨발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표시입니다. 나의 모든 권리를 의미하고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한국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면 어련히 신발을 벗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남아나, 유럽사람들, 미국사람들은 신발을 늘 신고 들어가서 저는 늘 Take a shoses. 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시의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노예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살면서 늘 신발을 신고 살았고 노예들은 신발을 벗고 다녔기 때문에 노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늘 다니는 광야의 호렙산에서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것은 내 권리를 포기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2.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은혜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자수성가의 복입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복은 노력의 복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하여 욕심을 내고, 욕심이 잉태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탈이 없지만, 사람이 욕심을 내어 얻는 복은 늘 그 뒤에 저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비가 적당히 내리면 그것이 축복이지만 그 비가 하염없이 쏫아지면 그것은 홍수가 되고 재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해가 적당히 비치면 모든 식물이 잘랍니다. 그런데 그 식물이 잘자라는 해가 구름없이 비 없이 햇빛만 비치기만 하면 사막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그것이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위장을 버려가면서 먹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고 그리고 나중에 먹겠다고 쌓아둔 음식은 아무리 냉동고라도 곰팡이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그 하루의 만나의 양이 내것이고 쌓아두면 곰팡이난 만나인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가난할 때에는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여 물건을 아끼고 사랑하여 작은 정성스러운 물건을 서로 사서 먹고 행복하게 돈을 아끼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너무 사업이 잘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젊은 여자와 놀아나는 것입니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돈이 없어 행복하고 사랑하였지만 돈이 있으므로 더 편하게 행복해야하는데 더 갈등하고 싸우는 가정을 종종 복게 됩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정말 칼들고 싸웠셨지만 이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살면서도 이혼을 많이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구별의 은혜
바로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애굽에 큰 흉년을 잘 이겨나갈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모르는 새로운 왕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애굽 백성들에게는 바로에게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노예요 노동력으로만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노동력을 빼앗기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바로의 노동력이 처음부터 바로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어려워서 도와준 사람들인데 어느날 갑자기 노동력이 출애굽한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노예로 묵어둘려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려고하는 것입니다.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들을 구별하시고, 이스라엘 가축과 애굽 백성의 가축과 구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 구별하심은 구속하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목상으로는 아직 노예의 신분이지만 이미 그 제앙을 통하여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됩니다.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생축은 생축대로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구별의 최종 하이라이트는 바로 10번째 재양입니다. 어린양의 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구별하여 모든 저주가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즉 지금의 보혈의 사건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피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서 구별된 자 즉 구원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합니다.
죄와 구별되어야합니다. 죄와 구별되지 않고 죄에 석여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인지 죄가 아니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적인 모든 문제와 구별해야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동생애가 죄인지 죄가 아니지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거룩하고 성결되게 거룩하게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5장에 죄와 구별된 자가 한사람도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총은 골고루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양을 비칠 때에 남한만 비치고 북한은 비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든지 영접하지 않는디 골고루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국이 나빠서 중국만 대기오염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도 그 나쁜 공기가 공평하게 퍼저갑니다.
그런데 공평의 은혜도 있지만 특별한 은혜입니다. 선택의 은혜도 있습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5. 바로의 타협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게 제사를 드리라고. 제사는 드리데 이 땅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예수님은 믿되 세상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데 편하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굳이 예수님을 믿으면 수요예배, 금요철야, 새벽기도회, 성경공부, 굳이 열심히 예배 드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돈도 벌어야하고 생활도 해야하는데, 그리고 성경을 읽어 그러나 그렇게 많이 읽지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더라도 술도 먹고, 놀음도 하고 오락도 하고 영화와 그리고 텔레비전도 보고 그렇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는 여러 가지 재양을 당하니 놓아줘야하겠고, 그리고 평생 노예로 대리고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기는 싫고, 마치 우리의 마음과 같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여 예배는 드리되 세상에 있어라고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다하라는 것입니다. 거짓말도 하고 살고, 첩도 대리고 살고, 그리고 놀음도 하고 하는 방식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에게 처음 예수님을 믿게한 선교사님들은 단호하였습니다. 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도박을 끝으라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온전히 하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십일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상숭배, 미풍양속의 명목으로 드리는 조상숭배에 대하여 철저하게 배격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타협하면 계속적으로 또다른 타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으로 물리쳐야합니다.
6. 모세의 단호함 (그리함이 부당하니이다.)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그리함이 부당하니이다. 왜 부당하다고 하였습니까? 바로가 지금까지 행동을 보면 부당한 것입니다. 몇 번이나 그 요구상을 들어줄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4번의 제양을 받고도 거짓말과 거짓말로 번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번에 제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의 모습과 같습니다.
7. 바로의 답변입니다.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너무 멀리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너무 멀리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저분하게 살면 우리의 신앙도 지저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유리창이 깨지면 우리의 모습속에서도 그 깨진 유리창으로 더러운 먼지가 들어오고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금방 집이 페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속에서도 조금마한 죄가 들어와 그것을 방치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마귀가 그속에 소굴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얼른 치워야합니다. 그래야 마귀를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짖지 않고 살아갈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손과 발을 씻듯이 우리의 죄를 아침과 저녁에 깨끗하게 씻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HCyOJyHIw
8. 그러나 모세는 단호합니다.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세상에는 한가지 손으로 두 떡을 먹지 못하고 두 마리의 또끼를 다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가지를 선택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를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요한일서 1장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저는 공황장애를 당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너무 세상의 염려와 제리로 인하여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지나친 욕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몸이 병들고 우리의 몸 마음이 병들구나하는 생각입니다.
순우리말에 ‘끄트머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끄트머리’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첫째, ‘끝이 되는 부분’이고, 둘째, ‘일의 실마리’라는 뜻입니다.참 신기하게도 끝과 시작이 함께 공존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옛 우리 선조들은 끝을 끝으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시작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