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6년 7월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저는 저희 부모님의 세대와 우리 자녀들의 세대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고난과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찬란한 발전과 부흥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의 세대에는 보호와 안전이라는 명목아래 어머니들이 모든 것을 해주는 사랑의 세대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늘 어머니의 그늘아래서 살고 있는 자녀들을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든 과정속에서 그리고 면접시험까지 그리고 결혼해서까지 그 부모님의 그늘아래서 살고 있었습니다.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서울시로 들어와 모든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던 단단이는 첫방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만 두루미 단단이는 한반도를 거처 시베리야까지 이동하는 철새로서 2004년 1월 경로 이동 중 동료 무리에게 이탈하여 대만까지 날아가 방황하던 중 9월 16일 신주공군비행장에 날아들어 비행기 안전을 고려해 산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타이페이 시립동물원 야생동물구조센터로 긴급후송되어 6개 실탕를 제거하고 응급조치후에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1934년 이후 두루미의 발견이 끊긴 대만에서는 70년만에 경사로 두루미 재활에 정성을 기울여 지난 3월 서울시에 단단이를 우리나라의 철새도래지에 방사요청을 하게 됨으로 서울시에 서울대공원으로 옴겨 큰물새장 번식장에 특별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이러한 말씀하였습니다.
주의 종이나 주의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그 결말이 좋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조용기목사님이 무혐의로 풀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풀려나게 된 동기가 그렇게 많이 횡령했는데 횡령금액만큼 하나님의 성전에 100억을 드렸다고하였습니다. 돈에 욕심이 탐이 나면 그것을 자기의 집에 가지고 있으면 되지 왜 하나님께 드리겠느냐가 판사의 판단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형사들도 그 사실을 안다고하였습니다. 형사들도 목사님에 대하여 구속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어느 형사가 목회자를 고소하여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을 잘쓰는 형사였는데 무실코 아이가 실수로 못을 찔렀습니다. 그 후로 파상풍에 걸려서 그 발을 잘라내야 하면서 자신의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치고 잘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1) 아버지가 부자이면 됩니다. 아버지가 이건희 회장님이면 내가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부자일 확률은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것입니다. 100% 불가능한 일입니다.
2) 둘째로 결혼하여 배우자가 부자이면 내가 부자가 될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50% 확률입니다. 잘 만날 수 있고 잘못 만날 수 있습니다.
3) 내가 부자가 되어야합니다.
내가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100%입니다. 내가 부자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내가 부자가 되는 길은 바로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종교를 비교해 보십시오. 미신 귀신의 문화가 가장 못삽니다. 둘째로 불교가 못삽니다. 섯째로 천주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가장 잘사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므슬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사람들은 전쟁 귀신이 붙었는지 계속 자살 폭탄 테러만 자인합니다.
1. 예수님을 만나기전의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7장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유대인의 처형방법은 먼저 죄인을 3.5m 정도 사형집행장소에서 어래로 떨어뜨린 후에 돌로친다. 죽지 않을 경우 더 큰고 무거운 돌들을 죄인에게 던져 죽게합니다. 그리고 죄인에게 돌을 던질 때에 증인들이 먼저 던진 후 주변에 있는 사람이 돌로 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군중들이 제판도 없이 돌발적인 감정으로 스데반을 죽인 것입니다.
사울 앞에 두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주도적인 동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22장 20절에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데반을 처형하는 장면만 관망하고 그 발앞에 두었다고 하였지만 이번에 더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잔멸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스니다. 엘퓌마이네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욕을 주다. 더럽히다. 파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80편 13절에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발아 황폐화시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절에 보면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도바울이 주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마음 상태가 독기로 충만하여 진멸하려고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지금의 IS집단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리야의 수도 다마스커스, 다메섹이라는 지역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을 왜 사용하실 까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예수님은 사도 바울을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특별히 예수님이 직접 가르쳤던 제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사도 바울을 쓰는 것입니까?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사도바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보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도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자신을 부인하고 있을 때에 그를 찾아가 3번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포기하고 있을 때에 80세에 찾아가서 사명을 주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직분에는 은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과 주님의 일을 하는데는 정년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주님을 섬기는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절도를 하다가 발간이 되어서 교도소에서 들어가 형기를 치루고 있는데 교도소 선교하는 분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만기가 되어 출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목사님이 기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을 듣고 금요철야에 간증을 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금요철야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어는 권사님이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졸게 되었습니다. 가방이 바닦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권사님이 헌금시간이 되어서 감방을 옆자리에서 찾는데 가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방을 도둑맞았다고 소리를 지르니까? 누가 무엇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 청년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는 것입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처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상한 분빛으로 인하여 그 청년든 다시는 그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의심하고 한번 신뢰하면 그사람을 실뢰하거나 의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여전히 제자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라는 사역자가 사도 바울을 다소에 가서 그를 찾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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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인도를 침공하면서 태국의 정굴에 기차를 놓는 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전쟁포도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전쟁포로들에게 작은 음식으로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거짓말를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잡업도구인 삽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은 모든 전쟁포로들을 집합해놓고 모두 죽이겠다고합니다. 그때에 제가 그렇게 했다고 한 병사가 나와서 십자가를 집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죽게 되었지만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밤 전수조사를 해보았지만 삽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뒤로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를 위하여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의 사도 바울의 생활입니다.
1) 늘 겸손한 신앙생활
① 만삭되지 못하고 난 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고전15:8).
②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습니다(고전15:9).
③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 하였습니다.
④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일을 많이 하였지만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하였습니다.
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하였습니다.
⑥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엡3:8)”
사도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조상들의 엄격한 교훈을 받고 살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있었습니다. 힐렐학파는 비교적 자유로운 학품인 반면에 샴마이파는 보수적인 학파입니다.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로서 힐렐파를 이끄는 석학입니다. 그중에서 자신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고하였습니다. (행 5:34).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히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행 26:5).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비슷한 나이 또래)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고”(갈 1:14),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사도바울의 지파는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씨중에 이삭과 야곱의 12지파만이 이스라엘의 지파입니다. 그 지파중에 베냐민지파와 유다지파만이 이스라일민족이라고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신유의 능력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9장12절에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나았고 악귀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쫓으려다 오히려 악귀들린 사람이 그 들에게 뛰어올라 “예수도 내가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께 너무 가고 하지 않게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가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안질 두통, 안질, 간질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주신 이유가 바로 자신이 겸손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가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여러분 좋은 자동차는 빨리 달리는 자동차가 아닙니다. 얼마나 빨리 제동장치를 사용하는 냐입니다. 좋은 차는 100km, 150km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잘 스톱하느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잘 나가느냐가 아니라 우리 죄앞에서 얼마나 빨리 절제하느냐인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커피숍에서 자신를 자랑하는지 참으로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자랑할만 합니다. 그러나 겸손도 함께 해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다 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 하나님의 원하는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면 정욕으로 쓸려고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좋을 짖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응답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교회에 대한 헌신입니다.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니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 장갑을 끼우면 뜨거운 것을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일을 할 때에 다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갑을 낄 때에 주의 점이 있스니다. 내 손이 그 장갑손안에 들어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손을 비워야 들어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들어가기 위하여 내가 비워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장갑에 내가 손을 집어넣어야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도바울은 매 성경에 자신은 부족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는 오직 교회를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교회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