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13절 사랑이 이깁니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11월 1일

고린도전서 13장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인간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타인을 이기려 하는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깊이 자리 잡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은 학업과 지식(공부), 경제적 부(물질), 그리고 사회적 평판(인기)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으로 이길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므로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35, 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 예수님은 세상을 어떻게 이기셨는가?
요한복음 13장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겨 가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참으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우직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 많은 실수도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충성스럽게 살려고 노력하는 제자입니다. 이러한 제자를 주님께서 사랑하시므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 목사가 언급한 ‘지성소(The Holy of Holies)’는 성경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 혹은 17장까지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복음)보다 늦게 기록되었으며, 공관복음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더 깊은 영적·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를 학술적으로는 ‘요한복음의 공관복음 보완설(Supplementary Theory)’ 또는 ‘영적 복음서(Spiritual Gospel)’ 관점이라고 합니다.

공관복음에 없는 예수님의 세족식입니다. 오직 요한복음 13장에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흙에 먼지가 많기 때문에 외출하면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접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제가 발을 씻겨 드려야 하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제 발을 씻겨 주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하시고 그를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는 선한 종이 되라고 낮아짐의 영성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전통인 유월절(passover)에 12제자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였습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공관복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는 의미로 식사를 하셨습니다.

비록 자신을 팔려는 제자가 있는 줄 알고도, 그리고 수제자인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도 사랑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을 팔려는 유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기회 주심)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여러분, 어느 공동체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저는 김혜자 집사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김혜자 집사님이 가룟 유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빠르게 계산하고 정직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신뢰합니다.

29절에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명절에 쓸 물건을 사러 가라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유다를 의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주여, 내니이까? (Is it I, Lord?)” 제자들이 스스로 두려움과 연약함으로 자신이 실수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제자들 모르게 은 30냥을 대제사장에게 넘겨줄 것을 은밀히 계약하였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정식 만찬을 할 때 의자에 앉지 않고, 낮은 상 주위에 왼쪽 팔꿈치로 몸을 고여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식사를 했습니다.

아주 가까이 밀착되어 귓속말을 하기가 매우 쉬운 반면,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반대편이나 옆옆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듣기 어려웠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사도 요한)’는 예수님의 바로 옆 자리에 누워 있었기에 베드로의 눈짓을 받고 예수님께 나지막이 “주여, 누구니이까” 하고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주시며 대답하셨을 때도, 이 은밀한 대화와 행위는 예수님과 요한, 그리고 유다 세 사람 사이에서만 인지되었을 뿐 상이 꽤 컸던 만찬 테이블 전체의 제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만찬 직전까지도 “우리 중 누가 더 높으냐”라며 서열 다툼을 벌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요한의 나이는 약 18세에서 20세가량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 60년 후에 요한복음을 쓸 때에는 그의 나이가 약 80세 정도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다 쓰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이 작성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요한이 본 것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눈짓으로 요한에게 “그가 누구인지 여쭤 보라”고 했고, 예수님의 품에 의지해 누워 있던 요한이 속삭이듯 주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유다에게 떡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질문을 던진 요한(그리고 아마도 가까이 있던 베드로 정도) 사이에서 매우 조용하고 은밀하게 오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떡을 적셔 유다에게 주는 행동의 ‘영적 암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대 식사 문화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친히 음식을 집어 주는 것은 ‘특별한 사랑과 친밀함의 표시’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시선에는 예수님이 배신자를 지목하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유다에게 친근한 사랑을 베푸시는 모습으로만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유다를 동료로서 깊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은밀하게 지시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배신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명절 준비를 위한 공식적인 재정 업무(물품 구입이나 구제 활동)를 지시하시는 것으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유다가 배신자일 것이라는 의심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III.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이유
예수님이 죽게 된 이유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참람함입니다), 성전을 모독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죄목으로는 예수님을 죽일 수 없습니다. 오직 로마인들의 법 중 국가 반역죄로 고소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왕이라고 하면서 로마에 저항하려고 한다고 고소를 합니다.

여러분, 쿠데타를 하거나 내란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우두머리는 사형에 해당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에 해당됩니다. 참여한 사람들은 최소 5년 이상 징역에 처합니다. 단순 가담을 했어도 5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반역죄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칼이나 활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말씀으로만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8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8장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이 처음으로 군인들에게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게 되었고 또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에 나사렛 예수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단번에 알아차린 베드로는 칼을 가지고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면서 순순히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 앞에서 신문을 받을 때에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요한복음 18:22). 산헤드린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론지은 후에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마태복음 26:67, 마가복음 14:65). 침을 뱉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주먹으로 예수님을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마태복음 26:67).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라며 능욕하고 조롱했습니다 (마가복음 14:65, 누가복음 22:64).

빌라도는 민란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마태복음 27:26). 로마의 채찍질에 뼛조각이나 납덩어리가 달려 있는 채찍으로 때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이라는 관정 안으로 끌고 가 군대를 모으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비웃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들을 했습니다. 홍포(자색 옷)를 입힘, 가시관을 씌우셨고, (마태복음 27:29). 왕이 쥐는 지휘봉(홀) 대신에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27:29). 무릎을 꿇고 희롱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마태복음 27:29).

예수님은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향하여 분노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사랑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눅 22:61~62)

부활 후 베드로를 가장 먼저 찾아와 치유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시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구워 친히 따뜻한 아침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장소도 ‘숯불(요 18:18)’ 앞이었는데, 예수님은 동일한 숯불 앞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하며 제자들의 리더로서의 권위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요 21:15~17).

일제 강점기 시절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교단이 고신입니다.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일제의 강요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했을 때, 끝까지 이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던 순교자들과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감옥에서 살아 돌아온 출옥 성도들(주남선, 한상동 목사 등)은 신사참배를 했던 기존 장로회 총회의 철저한 회개와 인적 청산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1952년 진주 성남교회에서 노회를 구성하며 분립해 나온 교단이 바로 고신입니다. 지금도 고신 교단은 프라이드가 엄청납니다. 우리 교단만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고 자랑합니다.

당시에 베드로는 배교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역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독일 후기 고딕 양식의 거장 슈테판 로흐너(Stefan Lochner)가 1435년경에 그린 <사도들의 순교(The Martyrdom of the Apostles)>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본래 ‘최후의 심판’ 제단화의 양쪽 날개(외벽 패널) 부분이었으며, 접고 펼칠 수 있는 병풍 형태로 제작되어 각 사도(제자)들이 어떻게 순교했는지를 잔혹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평온하게 묘사한 명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제자들 또한 주님을 위하여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모님 사랑, 저도 장모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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