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7장 16절 다윗과의 언약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0월

 

 

개역개정 사무엘하 7장

  1.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2.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처음 신학교 들어갔을 때에 교수님이 Davidic kingship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무슨의미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 왕권(Davidic Kingship)

하나님이 다윗에 대한 왕위 보존에 대한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왕정체제와 신구약을 통하여 메시야적인 약속의 의미로 살펴보아야합니다.

다윗은 기원전 1010년경에 사울 왕조에 이어 이스라엘 왕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패하시고 다윗을 세워주심으로 다윗의 세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이후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안치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중심부로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나, 북왕국이 잦은 역성혁명을 겪은 것과 달리 남왕국 유다는 바빌론 유배(BC 587년) 전까지 아달랴의 찬탈기를 제외하고는 다윗 왕조의 단일 혈통을 유지했습니다.

 

사무엘하 7장)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리라”, 조건적 성격 (시편 132편) ──> “네 자손이 내 언약을 지킬진대…”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1장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 “다윗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소유가 바뀜
  • 사무엘하 7: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 역대상 17:14″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무엘하에서는 주체가 다윗이 중심이 된 ‘네(다윗의) 집과 네 나라’이지만, 역대상에서는 ‘내(하나님의) 집과 내 나라’로 소유격이 바뀝니다.

 

개역개정 역대상 17장

  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울지라
  2. 네 생명의 연한이 차서 네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3.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5.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 다윗의 10동안의 삶

17살 때에 골리앗을 죽이고 그 뒤부터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서 광야로 도방다니게 되었습니다.

 

1단계: 국내 및 초기 도피기 (사울의 본격적인 추적)

  • 기브아 (Gibeah): 사울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최초로 도망친 출발지입니다.
  • 라마 나욧 (Ramah in Naioth): 영적 스승인 사무엘 선지자가 있던 곳으로, 사울이 쫓아왔으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다윗을 잡지 못했습니다.
  • 놉 (Nob): 아히멜렉 제사장에게서 떡(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얻은 곳입니다.
  • 가드 (Gath): 블레셋의 도시로 처음 망명을 시도했으나, 신분이 탄로 나자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체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 아둘람 굴 (Cave of Adullam): 유대 광야의 동굴로, 이곳에서 다윗의 가족들과 환난 당하고 빚진 자 등 400여 명의 추종자가 모여 공동체를 이룹니다.
  • 모압 미스베 (Mizpah of Moab):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모압 왕에게 부모를 의탁했던 곳입니다.
  • 헤렛 수풀 (Hereth Forest): 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유다 땅으로 돌아와 숨어 지낸 숲입니다.

 

📍 2단계: 광야 및 유랑기 (극한의 고난과 시험)

  • 그일라 (Keilah): 블레셋의 공격을 받던 이스라엘 성읍 그일라를 다윗이 구원해 주었으나, 성읍 사람들이 사울에게 자신을 넘겨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도망칩니다.
  • 십 황무지 (Wilderness of Ziph):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제보하여 포위될 뻔한 위기를 겪은 광야입니다.
  • 마온 황무지 (Wilderness of Maon): 사울의 군대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붙잡힐 위기에 처했으나, 급박하게 블레셋이 침공해 오는 바람에 사울이 철수하여 극적으로 살아남은 곳(셀라하마느곳)입니다.
  • 엔게디 황무지 (Wilderness of En Gedi): 들염소 바위와 동굴이 많은 곳입니다. 동굴에 용변을 보러 들어온 사울왕을 죽일 수 있었으나, 옷자락만 베고 살려주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습니다.
  • 바란 광야 (Wilderness of Paran): 사무엘 선지자가 죽은 후 더 깊은 남쪽 광야로 내려가 머문 곳입니다.
  • 갈멜 (Carmel): 부유한 자 나발에게 모욕을 당했으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 피를 흘리지 않았고, 나발이 죽은 후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곳입니다.
  • 하길라 산 (십 황무지 재진입): 십 사람들의 두 번째 밀고로 사울이 다시 추격해 왔을 때, 밤중에 사울의 진영에 몰래 들어가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며 두 번째로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곳입니다.

 

📍 3단계: 블레셋 망명기 (마지막 도피)

이스라엘 땅에서는 더 이상 사울을 피할 곳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예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한 시기입니다.

  • 가드 (Gath): 과거와 달리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망명하자 블레셋의 아기스 왕이 다윗을 영접하고 받아들였습니다.
  • 시글락 (Ziklag): 아기스 왕에게 영토로 하사받아 약 1년 4개월 동안 안전하게 체류하며 힘을 기른 성읍입니다. 이곳에 머물던 중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10년의 도피 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헤브론)로 돌아가 왕이 됩니다.

 

 

III. 다윗의 눈물

사무엘상 30장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1.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은 3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회개의 눈물 (밧세바 사건 이후): 침상이 뜰 정도로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자신의 죄를 철저히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시편 6:6, 시편 51편).
  • 비통과 아픔의 눈물 (아들 압살롬의 죽음): 자신을 반역하고 죽이려 했던 아들이었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자 성문 위층으로 올라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라며 대성통곡했습니다 (사무엘하 18:33).
  • 시글락의 눈물

 

바울의 눈물

  • 목회의 눈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며 영혼들을 돌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0:31).

 

예수님의 3번 눈물

  • 동정과 긍휼의 눈물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마리아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인간의 죽음과 고통을 깊이 공감하시는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11:35).

 

  • 안타까움과 심판의 눈물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다가올 멸망을 깨닫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그들의 영적 무지와 완악함을 안타까워하며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41).

 

  • 순종과 중보의 눈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는 십자가의 고뇌 속에서 드린 눈물입니다 (히브리어 5:7)

 

 

1) 다윗이 가드왕 아기스를 만남

사무엘상 21장 10-13절”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2) 블레셋 가드 및 시글락 (2차 도망: 마지막 망명지)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합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600명의 군사와 그 가족들을 거느린 거대한 세력이었기에, 아기스 왕은 다윗을 사울에 대항할 좋은 용병으로 여겨 환대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사는 도성에서 떨어져 살 수 있도록 ‘시글락’이라는 성읍을 하사받아 그곳에서 1년 4개월 동안 사울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체류했습니다.

 

사무엘상 27장 1-3절, 6절”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3) 왜 하나님은 시글락으로 가기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훈련시켰나.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유대 땅에서 도망다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권투 선수는 아니지만 박종팔 권투선수와 링위에서 싸우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두둘겨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광야에 싸우면 도망 다니면서 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링위에서 하나님이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왜 이스라엘 내에 주민들과의 접촉입니다.

 

여러분 조선 이성개가 초대 이씨 조선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고려 시대의 충신들과 백성들이 고려를 사모하여 이성개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유권자들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유권사들이 아직도 부산이나 대구에서 전두환대통령을 훌륭한 대통령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81학번인데 전두환 물러가라고 대모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번 보수면 보수의 측면을 잘 바뀌지 않습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사울 가문의 친족인 시므이가 나타나 다윗을 저주하고 돌을 던진 사건은 성경(사무엘하 16장)에 기록된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시므이는 이전 왕이었던 사울을 깊이 사모하고 충성했던 인물이었기에, 사울 가문이 몰락하고 다윗이 왕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깊은 원망과 분노를 품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가장 비참하게 맨발로 울며 감람산을 넘을 때, 시므이는 다윗의 약점을 노려 나타났습니다. 다윗을 향해 “피를 흘린 자여 비류한 자(불량배, 쓸모없는 자)여 가거라 가거라” 하며 저주를 퍼붓고 돌과 먼지를 날렸습니다. 다윗의 장군 아비새는 당장 건너가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라며 아비새를 말렸습니다.

 

전세가 역전되어 다윗이 다시 왕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자, 시므이는 자신이 저주했던 과거의 죄 때문에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환심을 사고 베냐민 지파의 세력을 과시하여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무려 1,000명의 동족을 이끌고 요단강 나루터로 마중을 나와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III. 네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사무엘하 7장

  1.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2.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역대상 17장

  1.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2.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목회자나 성도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네 나라로 생각하였습니다. 육신의 나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에 내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때 사람들은 추접하게 죽는 것은 것은 어차피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놓고 가기 때문에 욕심과 애착을 버려야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지면 목회도 무너지고 삶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도 나의 교회라고 생각하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나도 잘되고 교회도 잘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메시아적 왕조)이 될 인물임을 영적으로 선포하고 그 언약을 예표한 사건

 

  • 갈멜 (Carmel): 부유한 자 나발에게 모욕을 당했으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 피를 흘리지 않았고, 나발이 죽은 후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곳입니다.

 

아비가일은 낙심하고 분노한 다윗을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며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 사무엘상 25:28″…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다윗은 나발의 모욕에 분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피의 보복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권면을 듣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 사무엘상 25:31″…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릴 것도 없으시리니…”

 

대권을 잡을 때에 왕이 될 때에 청문회를 할 때, 장관과 국무총리가 될 때에 지난 날의 과거가 다 들어나는 것입니다. 왜 무고한 피를 흘립니까? 주님게서 보복할 것인데 왜 스스로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하고 간청합니다.

 

 

  • 다윗의 홍길동 같은 생활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한 다윗은 약 1년 4개월(성경 기준) 동안 남방의 성읍 시글락(Ziklag)을 기지로 삼아 일종의 무법자 같은 생활을 보냈습니다. (사무엘상 27장)

 

이스라엘지방을 처들간 것이 아니라 그술 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 등 주변 부족들을 습격했습니다.

 

다윗은 공격할 때에 남녀 노소 불문하고 한명도 살려두지 않고 모두 죽였습니다. 무자비하게 학살한 이유는 자신이 아기스 왕을 속이고 다른 부족을 쳤다는 사실이 블레셋에 밀고되는 것을 막기 위한 증거 인멸이었습니다. 또한 양, 소, 나귀, 낙타, 의복 등의 전리품을 철저히 빼앗아 챙겼습니다.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바치며 철저하게 거짓 보고를 올렸습니다.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아기스 왕은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 영원히 내 부하가 되겠구나”라며 다윗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7장~30장에 등장하는 다윗과 아기스 왕(블레셋 가드 왕)의 이야기 중에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섭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속적으로 블레셋왕을 속일 수 없고 이스라엘 전면전에 길보아 전투를 치르기 위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을 때에 다윗을 아기스왕은 신뢰하는데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을 보고 우리는 저 자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우리를 배신하고 사울과 화합할지 모른다”라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참전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아기스는 방백들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윗을 다시 후방에 있는 시글락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과 군대들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비어있던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노하여 불태우고, 여인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가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상 30장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 그리고 부인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기 전에는 목동이 였습니다. 목동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사실 자신의 것도 아니였습니다. 아버지의 일이였고 형님들의 제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두번의 어려움을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맞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홍대에서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눈으로 똑똑이 보았습니다. 앞차가 잘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앞차 강패처럼 보이고 문신이 있는 사람들이 나오더니 위협하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운전 똑바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의롭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경찰이 오면 말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칼을 들고 당신 배 쑤시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양을 지킬 때 사자와 곰이 나타나 새끼를 움키면 쫓아가서 그것을 치고 입에서 건져내었으며, 해하고자 하면 수염을 잡고 쳐죽였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사자와 곰도 쳤던 것처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블레셋 사람도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여호와께서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듯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담임목사로 우리 성도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족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식구 600명 4명씩 포함하면 2400명의 큰 교회 목사님이 다윗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했으니 통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간증 외할머니의 말씀)

 

아내분의 종양 수술이 무려 7시간 동안 이어졌다는 말씀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술실 밖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무능한 남편”이라며 자책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전해집니다. 감당하기 힘든 떨림과 두려움 속에서도, 절박하게 하나님을 붙들며 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맡겨드리고자 애쓰시는 성도님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눈물을 닦아주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돕는 배필이자 하나님의 귀한 딸을 지금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손길, 곧 수술실 가운데에 맡겨드리신 고백은 결코 무능한 남편의 체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 다윗이 왕으로서 가졌던 믿음의 태도와 깊이 닮아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 나라를 자신의 사유물(개인의 소유)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백성들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순간마다, 다윗은 그 나라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온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께 주권을 이양하는 것이 바로 다윗이 보여준 충성스러움이었습니다.

 

 

다윗은 크게 3번의 눈물이 있습니다.

 

  1. 첫째 눈물은 자신이 잘못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임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시글락 블레셋 땅으로 가서 아기스왕에게 거짓말하고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나는 도중에 방백들 말로 그는 시글락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녀들과 아내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 밧세바 아내를 통하여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자신의 간음과 죄악으로 인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침상을 눈물을 띠울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장법이긴하지만 그만큼 많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3~4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의 《고백록》(Confessions)에 등장하는 유명한 ‘배나무 서리 사건’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죄인인가?”, 왜 죄 자체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배나무 사건: ‘죄 자체’를 사랑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소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웃집 배나무에서 배를 훔쳤습니다. 배가 고파서도 아니었고, 그 배가 맛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훔친 배들은 대부분 돼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충격적인 인간의 본성을 깨닫습니다. 맛있는 배(피조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행위 자체’, 즉 금지된 선을 넘는 짜릿함과 죄 자체를 사랑하고 향유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했습니다. 본래 인간의 사랑(Amor)은 궁극적인 선이신 하나님을 향해야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 사랑의 방향이 세상으로 향한다.”

 

선해야 할 ‘사랑’은 고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리어 ‘죄’를 사랑하고 그것을 즐기는(향유하는) 모순에 빠진 상태가 바로 인간의 깊은 죄성입니다.

 

“오오, 나의 주님, 제 영혼의 사랑이시여… 저는 그저 죄를 사랑했을 뿐입니다. 악 그 자체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었습니다.”《고백록》 제2권 중에서

 

하나님이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이러한 고백이 있습니다. 죄중에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여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시편 51편 10~12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죄가 폭로되었을 때, 다윗은 자신의 처절한 죄인 됨을 깨닫고 통곡합니다. 그 통곡의 고백이 바로 시편 32편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시편 32:3-4)

 

죄를 사랑했던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구하며 눈물로 침상을 적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바로 이 다윗의 통곡과 고백(시편 32:1-2)을 그대로 인용하며,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설명합니다.

 

로마서 4장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성령님은 다윗의 통곡을 들으시고, 그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으시며, 죄를 향유하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으로 돌이키십니다. 그래서 다윗의 통곡은 결국 다음과 같은 복된 찬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2:1) 그러므로 가장 큰 행복은 죄의 회개입니다. 가장 큰 축복음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1. 다윗의 3번재 눈물

(사무엘하 18장 33절)”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압살롬은 비록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반역자였지만, 다윗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내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기 전에 군대를 모아 놓고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신신당부했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자기 아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겠습니까?

 

‘임오화변(壬午禍變)’, 즉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자식을 죽이겠는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부자(父子) 관계의 사건입니다. 1762년, 영조 38년, 영조가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으나 세자가 따르지 않자, 쌀을 담는 나무 궤에 가두어 8일 만에 굶어 죽게 한 사건입니다.

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출신 콤플렉스가 있던 영조는 어렵게 얻은 아들(사도세자)을 완벽한 왕으로 키우려 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쉴 틈 없이 엄하게 몰아붙이고 비난했습니다.

 

스트레스와 화를 주체하지 못해 궁녀, 내시, 의관 등 주변 사람들을 수십 명씩 살해하고 그 목을 들고 다니는 등 궁궐 내를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죽였습니다.

 

 

  1. 칼의 저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사무엘하 12:9-10, 개역개정)

 

 

죄의 방식 그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동태복수형(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심판을 뜻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전쟁터라는 합법적인 공간에서 ‘암몬 자손의 칼’을 빌려 충신 우리아를 은밀하게 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행을 그대로 갚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징벌: 다윗이 ‘칼’로 우리아의 집안을 파괴했으므로, 그의 집안 역시 피비린내 나는 ‘칼’의 재앙을 겪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왕권과 가정의 평화 상실: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윗의 남은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자녀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과 반역이 끊이지 않을 것을 예언합니다.

 

 

  1.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된 저주 (사무엘하 이후의 역사)

이 예언은 다윗의 가정 내에서 끔찍한 비극으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암논의 다말 성폭행 및 살해 사건: 다윗의 장자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하자, 이에 분노한 친오빠 압살롬이 형제인 암논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 했고, 결국 요압 장군의 칼과 창에 맞아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도니야의 숙청: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아도니야 역시 다윗 사후에 솔로몬의 왕권을 위협하다가 결국 칼에 맞아 숙청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은밀하게 쓴 칼 때문에, 평생 자식들이 서로를 칼로 죽이고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고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얼마나 많은 칼이 있습니까? 최소한 10개는 넘을 것입니다. 찌는 역할을 합니다. 남편을 자녀를 찌는 역할을 합니다. 자는 역할을 합니다. 고기를 자르고 체소를 자는 역할을 합니다.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거리(King David Street)’와 ‘아브라함 링컨 거리(Abraham Lincoln Street)’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노예 해방보다 분열을 막는 것이 우선”이었던 링컨입니다.

흔히 대중은 링컨을 ‘노예 해방가’로만 기억하지만, 정작 링컨 본인의 마음속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는 ‘연방의 보존(미국의 하나됨)’이었습니다. 실제로 링컨이 1862년 뉴욕 트리뷴지의 편집장 호레이스 그리일리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그의 본심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나의 최고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 제도를 보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식(1861년 3월 4일)에서 남부 주들을 향해 피를 흘리지 않고 공존하기 위한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미 남부에 존재하는 노예제도는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노예제도를 헌법으로 영구히 보장해 주겠다는 카드(코윈 수정헌법안)까지 만지작거리며 남부를 달랬습니다.

 

링컨이 원했던 최소한의 선은 ‘노예제의 새로운 영토 확장 금지’였을 뿐, 남부의 기존 체제는 완전히 인정해 주며 어떻게든 연방 탈퇴(분열)만은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1. “전쟁을 해서라도 나라가 쪼개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남부 주들은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해 연방을 탈퇴하고 ‘남부연합’을 결성한 뒤 선제 공격(섬터 요새 포격)을 감행했습니다. 여기서 링컨의 위대한 결단이 나옵니다. 만약 링컨이 평화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어 분열을 묵인했다면, 미국은 오늘날처럼 거대한 강대국이 되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쪼개져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는 분단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링컨은 “나라가 두 조각이 나는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수십만 명이 죽는 참혹한 내전(남북전쟁)이라도 감수하겠다.

 

 

  • 칼의 예언에 대한 다윗의 행동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사무엘하 12:9-10, 개역개정)

 

1) 저주가 임한 이후 다윗의 행보에서 ‘칼(폭력과 보복)’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왕의 권력과 칼로 그 저주를 막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칼을 철저히 거두었습니다.

 

  •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은 맞서 싸울 군대가 있었음에도 예루살렘 성을 비우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아들과 피 흘려 싸우는 칼의 대결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시므이의 저주 때: 피난길에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하자, 곁에 있던 장군 아비새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라며 칼을 빼려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라며 장군의 칼을 막아섰습니다

 

2) 예수님도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대제사장들과 군인들이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성경 역사에 남을 명언을 하십니다.”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52)

 

 

3) 전쟁대신에 융화정책

다윗이 일부 다처제를 택한 이유?

자녀는 농경사회는 일손이고, 왕궁에서는 군사력이고 왕권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왕자들은 장성하여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친인척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일부다처제를 통하여 주변에 있는 호족들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미갈, 사울왕의 딸입니다. 다윗의 첫번째 아내입니다.

둘째는 아히노암입니다. 압살롬에 의하여 살해되었습니다.

셋째는 아비가일입니다. 길르압은 요절한듯 합니다.

셋째는 마아가입니다. 압살롬을 낳았고 다말을 낳았습니다.

‘마아가’는 이스라엘 북쪽의 강력한 이방 왕국인 그술 왕 탈매의 딸이었습니다(사무엘하 3:3). 북방 전선을 안정시키고 군사적 지지를 얻기 위해 그술 왕국과 정략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넷째는 학깃입니다. 아도니야인데 왕위를 탐내다가 죽었습니다.

 

아비달: 스바디야, 에글라: 이드레암

예루살렘으로 천도한 후 더 많은 처첩을 두었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밧세바입니다. 밧세바 (엘리암의 딸, 우리아의 아내였음): 첫째 아들 (죄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 이름 없음), 시무아 (샤무아), 소밥.

 

  • 나단 (신약성경 누가복음의 예수님 족보로 이어짐) 솔로몬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됨,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로 이어짐)

 

누가복음 3장 31절 (개역개정)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마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 마태복음(솔로몬 계열): 다윗 ➡솔로몬 ➡️ 왕들의 계보 ➡️ 요셉 (예수의 법적 아버지)
  • 누가복음(나단 계열): 다윗 ➡나단 ➡️ 평민들의 계보 ➡️ 마리아 (예수의 친어머니)

 

밧세바가 낳은 자녀들

1) 시므아 (또는 삼무아) 2) 소밥 3) 나단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선조) 4) 솔로몬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 됨)

 

다윗의 아내 중에서 가장 강력한 아내는 마아가입니다. 압살롬을 낳았습니다.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였는데 다윗은 대노하지 않습니다. 암논을 때리거나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참고 있던 압살롬이 마침내 공계적으로 처형합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왕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둘째로는 공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복수를 갑은 것입니다. 2년동안 철저하게 준비하여 양털깍는 날 암논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도망갑니다.

 

아버지 다윗은 세자에 대한 테러로 생각하여 처형하거나 법정에 세워야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살인을 하였으면 이에 대한 상응한 결과가 있어야하는데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사무엘하 14장의 드고아의 사건을 통하여 다윗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함을 알고 왕의 제판에까지 드고아의 사건을 올립니다.

 

사무엘하 14장 5~7절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 왕 앞에 엎드려 자신이 과부라며 거짓으로 꾸며낸 비극을 고백합니다. “내게 두 아들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쳐죽인지라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을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제를 쳐죽인 자를 내어놓으라 우리가 그의 형제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나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사무엘하 14:8, 11)

 

13절 “어찌하여 왕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같은 도모를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같이 되심은 쫓아낸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쫓겨난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왕은 요? 요압장군들 통하여 압살롬을 대리고 오라고 합니다.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사무엘하 14:24)

 

이 냉전 상태는 무려 2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사무엘하 14장).

 

28절: “압살롬이 이틀 해를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왕의 공의(公義)와 국법의 유지 • 압살롬은 형제(암논)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살인범입니다. 아무리 아들이라 하더라도 왕이 율법을 무시하고 대낮에 웃으며 맞이한다면, 국가의 법질서와 왕의 권위가 무너집니다. • 특히 암논을 지지하던 왕실 원로들과 다른 지파(지방 세력)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정치적 타협안으로 ‘귀국은 허락하되, 사면은 하지 않는다’는 가택 연금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 압살롬은 4년동안 치밀하게 백성들의 마음을 훔칩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과 화해한 후, 본격적으로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4년 동안 치밀하게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 외모와 권세 과시: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50명을 조반에 세워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영어로 압살롬
  • 재판을 통한 민심 유혹: 성문 길 곁에 서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백성들을 가로챘습니다. “왕은 네 말을 들을 사람을 세우지 않으셨다”며 다윗의 통치 체제를 비판하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면 정의를 베풀겠다고 입을 맞추며 백성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성경은 이를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훔치니라”(사무엘하 15:6)고 기록합니다.

 

헤브론에서의 쿠데타 발발

거사 준비가 끝나자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서원을 갚겠다는 핑계를 대고 유다 지파의 중심지이자 다윗이 처음 왕위에 올랐던 정통성 있는 도시, 헤브론으로 향했습니다.

 

  • 전국적인 동조 세력 규합: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정탐을 보내 “나팔 소리를 듣거든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 정치적 거물 포섭: 특히 다윗의 핵심 모사(책사)였던 지략가 아히도벨까지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하면서, 쿠데타 세력은 순식간에 거대해졌고 압살롬을 따르는 백성은 날로 늘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라는 전령의 보고가 신속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기습하여 도성을 칼날로 치고 백성들을 학살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다윗은 왕궁을 지킬 후궁 10명만 남겨둔 채, 그의 신하들과 그레렛·블렛 사람, 그리고 가드에서 온 가드 사람 600명을 거느리고 다급하게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감람산 길로 울며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 반란이 진압되고 다윗이 이겼을 때, 그는 자신의 권력이나 군사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 편인가”가 아닌 “우리가 하나님 편인가”: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이 우리 북군 편에 서 계시는가”를 묻는 신하들에게 “내가 유려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링컨 하나님의 편)

 

  • 다윗의 태도: 다윗 역시 왕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구했습니다. 반란 초기 예루살렘을 떠날 때 법궤를 메고 따라오려는 제사장들에게 “법궤를 다시 도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보게 하시리라”며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왕위를 맡겼던 신앙적 자질이 승리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1. 시므이의 처형 요구 거부와 사울 세력 포용 (오늘이 왕이 되는 날이다)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복귀할 때, 과거 자신을 저주했던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1,000명과 함께 나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 아비새의 처형 주장: 다윗의 장수인 아비새는 분노하며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하였으니 마땅히 목을 베어야(죽여야) 합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 다윗의 포용과 칼을 거둠: 하지만 다윗은 아비새를 향해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라며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라며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1. 칼을 휘두르지 않은 이유와 통합의 자질

정치적 승리나 대통령 등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 때, 반대파의 목을 베고 칼을 휘두르는 것은 당장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국가를 완전히 쪼개놓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재명정권)

 

  • 지파의 이탈 방지: 만약 다윗이 승리감에 도취해 사울 왕가의 핵심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를 처형했다면, 베냐민 지파와 북방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서(떨어져 나가서) 나라는 다시 극심한 내전에 빠졌을 것입니다.

 

  • 지도자의 기본 자질: 다윗은 자신이 겪은 수모(시므이의 저주 당시 “하나님이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 하신 것”이라며 감내함)를 품어내고,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음으로써 사울 왕가의 남은 세력까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왕이자 지도자가 가져야 할 통합의 자질이었습니다.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온 후, 자신을 끝까지 도왔던 노인 바르실래에게 베푼 보상이나, 요압 장군을 견제하기 위해 반란군 총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군지휘관으로 등용한 파격적인 인사.

 

  • 반란 수괴에 대한 파격적 처벌(사면): 비록 요압 장군이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사살했지만, 다윗 왕은 압살롬 군대의 총사령관(반란 수괴)이었던 아마사를 처벌하거나 군인 교도소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요압을 대신할 유다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사면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 단순 부역자들의 안심과 귀환: 지도자가 승리한 후 반란 수괴급 인물까지 전면적으로 용서하고 품어주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압살롬을 따랐던 이스라엘의 단순 부역자들은 보복 처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며,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다시 다윗 왕의 온전한 시민(백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계엄에 참여한 군인들)

 

 

다윗의 메시야 시편 시편 22편이나 110편의 구절별 다윗의 메시아 시편(Messianic Psalms)은 구약성경 시편 중 장차 오실 메시아(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고난, 통치, 그리고 영광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편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왕을 넘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선지자로서 [11], 자신보다 약 1,000년 뒤에 올 영원한 왕 메시아

 

다윗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선한일었다./ 이 때 다윗의 시편을 노래했다입니다. 사무엘 루더포드는 그의 저서와 편지(Rutherford’s Letters)에서 성도들이 고난을 받거나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 “다윗의 대적들이 다윗을 괴롭혔으나 다윗은 늘 시편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다윗 왕이 왕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한 모범을 보였듯, 성도들 역시 어떤 상황에서든 시편을 부르며 찬송해야 한다는 청교도적 예배 사상을 담

 

결론

고린도전서 7장 29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준 이 말씀의 핵심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니,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겨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있어도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인간관계나 물질이 삶의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