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소서 4장 4절 주일
성원순복음교히
홍철기목사
2015년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신앙생활에는 원리와 원칙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여러 가지 가치관들과 유혹이 다가올때에 그 원칙이 분명히 서 있는 사람들은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칙과 원리가 불분명한 사람은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포춘지에서 실패한 사람 2500명을 조사하니 자신에게 원칙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결정하는 순간 원칙이 있습니다. 역사도 이러한 명분과 실리의 문제가 발생할때에 분명한 명분 즉 원칙과 원리가 있는 사람들이 종국은 성공합니다.
그예로 다니엘의 예를 들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분명한 원칙 원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정하고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왕이 주는 호의와 사랑을 거절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분명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은면 분명히 건강해지고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위배됨으로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높혀주셨습니다.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건강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얼굴빛이 빛났습니다. 셋째로 지혜와 총명이 다른 박사들보다 더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현대인들에게 신앙생활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을 중심으로 함께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1. 첫째 원리 주안에서 항상 기쁘하라는 것입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 H.I. 길모어(1836~1920) G.D. 무어(19C)가 작곡한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1.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2.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 길모어는 16세의 소년으로 선원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펜실베니아에 닿았을 때에 거친 선원생활이 힘이 들어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페인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북전쟁으로 포로가 되어 온갖 고초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전쟁후에 그는 치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개업하였습니다. 뉴저지 주의 웨노아로 이하여 교회를 세우고 주일학교 반사를 하고 성가대 지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시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지만 주예수의 구원 때문에 기뻐한다는 찬송입니다.
어디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 약 160번 나오는데 바울서신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내가 어디있는가? 나의 주소가 어디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주소가 예수님 안인가? 예수님 밖인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단어로 인하여 사람들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쉬바이처 박사는 예수님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찬송가 64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1.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 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우리 평강이와 우리 사모의 대화내용을 보면 참으로 제미있습니다. 기를 쓰고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공부 때문에 엄마와 갈등이 많았는데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부가 기쁜 것입니다. 엄마 나 빠뻐 카톡 그만해 나 이것 오늘 꼭해야되 많은 아이들이 카큐로스 II 낙제했어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평강이 이곳에서 그렇게 있으면서 설거지 10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접시를 딱고 그리고 써빙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학교안에 있고 그곳이 기쁜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일 안에 있으면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 내 교회라고 생각합니까?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기쁨니까? 정말 여러분들의 교회입니다. 여러분 헌금하기 부담스럽습니까? 기쁨니까? 기쁘면 여러분들의 교회고 우리의 교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주소가 다라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다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이 어려움을 만나도 즐겁게 살수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불행까지도 즐거운 일로 바뀌게 되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4. Rejoice in the Lord always. I will say it again: Rejoice!
리조이스입니다. 다시 리조이스입니다. 그것도 항상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Always는 100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모든 상황가운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상황은 바로 감옥입니다. 그럼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주님이 나에게 천국시민권을 주시고 행복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할아버지에 언처서 살았을 때에 고모가 있습니다. 그 분은 가시처럼 말랐습니다. 무엇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고모가 이화여고를 다닐 때에 편식장이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뒤에 자신의 서방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는데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르는지 오히려 지금은 모든 음식을 먹습니다. 장소가 바뀌고 신분이 바뀌니 모든 것이 바뀌는 것입니다.
종국적으로 기뻐게 살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내가 예수님안에 있을 때에 진정한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가 구원함을 받았다. 그 기쁨의 감격이 있으니 기쁘지 않습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가니 기쁜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의 두 번째 원리 관용입니다.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인천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으로 인하여 대책 마련을 위하여 어린이집에 폐쇄회로 설치를 의무화하였습니다. 어떤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들을 어린이집에 배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CCTV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서로에게 부담도 덜어 주게 된다는 제안입니다. 특별히 할머니들을 오전 오후로 한번씩 어린이집에 출근하게 하셔서 감시라기보다는 참관형태로 하여 할머니의 사랑으로 돌봐주자는 의견입니다. 특별히 나이드신 분들에게 고용창출 효과도 있고 주장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일들을 통하여 가슴이 아픈 이유는 선생님들이 문제면 모든 선생들이 잘못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어린이집의 보육교사가 문제면 모든 보육교사가 문제인 것처럼 매도합니다. 목사님들이 문제이면 모든 목사님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어린 집에서 섬기는 대부분의 보육 교사분들은 말없이 정말 어린이들을 사랑하여 직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씩 자제를 하면서 열심히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원장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계속해왔던 것처럼 따뜻한 눈길과 관용하는 마음으로 성원이 있어야합니다.
어느 여종업이 기분 나쁜 일이 있는지 손님들을 접대하는 것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는 신사분이 카페테리야(식당)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토스토를 시켰습니다. 여종업은 퉁명스럽게 그 주문을 받고 커피를 배달하면서 그만 손님의 옷에다가 몇 방울의 커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없이 내프킨으로 그 옷을 닥고 가벼렸습니다. 신사는 화를 낼까? 관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 5불의 팁을 놓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여종업이 그 것을 보고 자신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팁을 사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사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시 놓고 가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여종업은 그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 말씀하여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탁자에 앉게 되었고 그리고 그 여종업은 자신의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생님 제 남편과 오늘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아파하는 아들을 보고 직장에 나왔더니 사장님께서 오늘까지만 일을 하고 내일부터는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그렇때에 어떻게 해야합니까? 한마디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그 신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고 영접기도를 시켜주었습니다. 그 신사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복음까지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참으로 옹졸하고 좁은 인간임을 통감합니다. 여러분들은 원만하고 너그럽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정에서 교회에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아니면 조그만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고 하나님께 반항하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별일도 아니데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 마음에 쓴 뿌리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이제는 관용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관용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스 적당한 온화함 너그러움 절제 인내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를 관용하는 마음으로 들으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4장에서 사도 바울이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 증거하는 복음에 대하여 당신을 괴롭게 아니하려고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세가 되면 관용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왜 관용해야합니까? 주님께서 가까우시니까입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님은 구름만 이상하게 떠도 주님이 오실 것같은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예전에 부흥강사 목사님들은 종말에 대하여 많이 설교하셨습니다. 요즘은 종말에 대하여 설교를 잘 안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단들이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단들은 기독교에 중요한 것들은 다 가지고 갔습니다. 구원파, 14만 4천, 영생교.
주께서 가까우시니까?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내가 죽어가고 있고 죽으니까?입니다. 즉 더 쉽게 말하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관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내가 바보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미약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생각하면 이러합니다. 내가 한번 화를 내고 모든 것이 풀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종국은 자신에게 손해인 것입니다. 한번 참고 관용하는 것은 내게 큰 유익이요 내가 오래 오래 사는 길입니다. (지동현권사님)
관용은 동양적인 사고의 부드러움과 잘 받아들이고 착함만을 의미하고 있지않습니다. 서양에서의 관용은 특별히 헬레니즘의 관용은 훌륭한 인격에 기초한 합리성입니다. 특별히 성경에서의 관용은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하나님의 인격성까지 근거한 합리성입니다.
3. 신앙생활의 3번째 원리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승리하는 자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염려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기도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우리 교회성전 문에 들어서면 이렇게 쓰여졌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이 유명한 구절 속에 나타나는 비슷한 단어가 있습니다. 기도와 간구입니다. 이구절속에 다니엘의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다니엘은 정적들이 함정을 파고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을 끊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평소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정적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지만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의 상황 가운데 기도는 할 수 있는데 감사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면 감사의 조건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프로슈케 그리고 데어시스 (th’/ proseuch’/ kai; th’/ dehvsei meta;) 입니다. 프로슈케이는 기도이고 데어시스는 간구입니다. 이 차이를 설명해드리도록하겠습니다.
다니엘의 경우 하나님께 매일 하루에 서번씩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적들이 자신을 죽이려고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간구(데에시스)는 신약에서 총 17회 나오는데 쉽게 번역하면 이루워주옵소서입니다.
딤전5: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다음은 기도입니다. 영어로 Prayer 헬라어로 프로슈케입니다. 우리가 겟세마네 기도회, 예배시간의 기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늘 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바로 기도입니다. 신약성경에 총 37회 나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 둘을 구별하여 썼습니까? 간구는 ‘뭘 해 주세요’라고, 기도는 대화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 임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제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간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환경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과 교제가 되면 이때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어떤 현상들이 다가옵니까?
1)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 (살롬)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바로 기도의 응답이 오기도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변에 많은 어려움이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마음과 평안을 주심으로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 해결이 빨리 되면 좋지만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입니다. 물론 세상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다니엘이 죽음직전에도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주시기 때문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둘째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마음과 생각에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개척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옴기면 옴겨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곳에 짖게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몇칠전에 국방대학교를 가보았습니다. LH 공사는 자폭하라 7년동안 고생시켰다. 발전도 안되고 그대로 땅을 묵혀두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곳에 건물을 짖는 것과 그곳으로 가는 것 어느 것이 잘 된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에 이곳에 짖기로 환경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이곳에 짖게 되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는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김정일 김정은은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중국도 안되와주고 그리고 러시야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고 미국과 붙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부시는 전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아라크를 침공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과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와 간구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간증 빌리그램 아들)
성도님들이 왜 금식기도하십니까? 사람이 먹는 만큼 힘을 씁니다.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내 힘을 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해주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힘을 빼고 주님의 임재 앞에 들어가 주님에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결론입니다.
신앙생활의 3가지 원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주안에서 기뻐하겠다는 삶을 살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늘 관용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를 바랍니다. 셋째로 여러분들은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로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