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말씀 주안에 서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건이 노예 해방을 위하여 남북전쟁중에 남군에게 밀려 패전 위기를 느낄 때의 일입니다. 링컨의 한 참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편에든 함께 하실 수 있지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 가하는 것입니다. ”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영국의 메트로폴리탄교회에 성도가 약 4,366명이였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습니다. 스펄전 목사는“주님을 향하여 가슴이 뜨거운 사람 12명만 있다면 이 런던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지근한 4,366명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라’는 저서에서 그는“회색지대에서 어슬렁거리는 자여! 지금 즉시 그 위험한 자리를 떠나 하나님 편에 서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회색지대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편인지 아니면 사탄 편입니다. 내가 어는 편에 설 것은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회색지대는 누가 만들었습니가? 마귀요? 사탄요? 형식적인 성도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그리고 세상도 왔다갔다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만들은 것입니다.
A. W. 토저는 그의 저서‘하나님 편인가, 세상 편인가’에서“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겠는가? 아니면 세상이 주는 개평을 얻어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편에 서지도 않고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마치 감나무 밑에 홍시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정결하게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처음부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떠나고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잡동산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설교 시간에 어는 목사님이 이러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가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함을 받고 난뒤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면 구약의 율법이 우리의 눈을 열어줍니다. 율법은 나의 죄를 발견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발견하게 합니다. 율법의 말씀을 우리의 영혼육에 놓고 묵상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나의 영혼이 잘되게하고 범사가 잘되게하고 강건하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장성한 분량 신의 성품에 도달하게 하는 힘이 자꾸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귀를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을 모세에게 이끌려 살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실패하였습니다. 이세상은 광야와 같은 삶입니다. 내가 누구앞에서 누구에 이끌려 살 것은 여러분들이 결정하셔야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속에 있는 병은 알지 못합니다. 제가 가끔 위가 좋지 않아서 위내시경을 합니다. 그때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2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진을 받을 때까지는 무슨 병이 생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 한마디 위가 깨끗하고 헬리코팍터 균도 없는데요. 하면 그렇게 아프던 위도 그방 낳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찮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싸인을 주십니다. 아프게 하시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물질의 문제가 생기고 자녀들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말겠지하면서 검진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수가 없어서 그러지 다시 좋아지겠지하고 감각이 무뎌지고 영적으로 하나님앞에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더 여러움을 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이시간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고 주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주안에서 서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본문은 ‘그러므로’로부터 시작합니다. 3장에 있는 내용의 결론입니다. 내가 예수님에게 잡혀있고, 그리고 지난 날의 과거를 이제 잊고 앞에 있는 푯대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진정한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의 삶이 아니고 우상과 같은 배를 위하여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선다”는 말은 군사용어요 전쟁용어입니다. 군대에서 어텐션 하면 차렸하고 서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는 우리의 싸움의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영과 혼에 대한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전쟁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전쟁영화를 보면 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가 있습니다. 낮에는 우리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중공군이 점령하는 전투입니다. 그곳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죽기를 결심하고 그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욥기서의 말씀처럼 말이 전쟁에 나갈 때에 장수의 말를 거역하지 않고 적군 앞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앞으로 달려가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모든 전쟁 전장에서 이겼습니다. 이제 이긴전투를 국지전을 통하여 우리가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긴 전투에서 진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아간의 죄 때문에 지는 전투입니다. 사울의 왕이 전투에서 졌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가 좋은 것을 얻기 위한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싸움에 이기게 하시는 주안에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주안에 부활이 있고,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치료가 있고, 만복이 예수님에게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정말로 사랑의 담긴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책망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마치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들을 권면할 때와 같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 아합과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을 때에 누가 진정한 신인지 누구인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겨루자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 주안에서 혼자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야합니다.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사랑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기쁨이고 면류관으로 표현한 것을보면 성도를 무척이나 사랑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사도 바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모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처를 사랑하여 제가 결혼 전에 광주를 매주일 그것도 주일 오후예배 후에 영등포에서 열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갑니다. 밤세도록 그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만나게 되고 그리고 사모는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고 그리고 퇴근하고 잠깐 만나고 저는 저녁에 또 서울로 인천으로 오게 됩니다. 지금 그렇게 하려면 못할 것입니다. 그때는 사모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체력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두 번째 정의는 기쁨입니다.
여러분 생각만 해도 애인을 만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기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성도들을 만나는데 얼마나 기쁨이까? 사도바울과 성도들의 관계는 애인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보면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우리 지동현권사님을 한 주에 한번씩 만나는데 지난 주간에는 2번 만났습니다. 머리 파마를 하는데 교회앞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장원 여주인을 만나는데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이 매일 겟세마네하기 위하여 성전에 모이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사랑의 세 번째 정의는 면류관입니다.
지난 새벽기도회 시간에 시편 8편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축복하시는냐?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씨우셨다고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2장 6절이하에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관을 쓰고 난 뒤에 우리에게 존귀와 영화의 관을 씨워주셨다고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왜 주안에서 서라고 권면합니까? 분쟁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싸우고 분쟁하면 술로 풀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천국 갈 때까지 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통하여 말씀이 들어오고 은혜가 되어 서로 풀어내야합니다. 오늘 빌립보교회를 대표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하였습니다.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 분 안에 서야합니다.
3.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도하여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자주장사 루디아에 의하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행16장 13절이하)
유오디아 ‘순조로운 여행’이라는 뜻를 가졌습니다. 순두게는 ‘행복한 기회’라는 뜻를 가진 여성입니다.
이분들이 누구인가? 학자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1) 유오디아는 빌립보의 간수장이 유오디아의 남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2) 튀빙겐 학파에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두 명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는 유대인 기독교인을 상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3) 가장 신빙성 있는 근거는 사도행전 16장의 루디아와 그녀와 함께한 성도라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에 현저한 역할을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할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들 두 여인은 빌립보 교회의 가장 활동적인 일꾼들에 속하는 중요한 인물들이었던 것 같으며, 아마도 여집사들이었을 것이다. 이들 싸웠던 것입니다.
우리 지방회 조정희 목사님이 보내오시는 글입니다.
라면과 참기름이 싸웠습니다. 얼마후 라면과 참기름이 경찰서에 모두 함께 잡혀갔습니다. 왜 잡혔을까요? 참기름이 고소해서, 이윽고 참기름도 끌려갔습니다. 왜 끌려갔을까요? 라면이 다 불어서, 구경하던 김밥도 잡혀갔습니다. 왜요? 말려들어서. 소식을 들은 아이스크림이 경찰서로 면회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왜 차가와서 이 소식을 들은 스프가 졸도했습니다. 국물이 쫄아서, 덩달아 달걀도 잡혀갔습니다. 후라이쳐서, 재수없게 꽈배기도 걸려들었습니다. 왜요 일이 꼬여서. 이무상관도 없는 식초도 일을 다 망쳐버렸습니다. 왜요 초쳐서,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소금 때문이랍니다. 왜요 처음부터 소금이 다 짠거랍니다. 결국 고구마가 해결했습니다. 구워 삶아서
왜 이 예화를 들었습니까? 졸지 말라고, 특별히 순두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순두부 생각이 나서 그러합니다.
유부초밥과 순두부가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두 분은 교회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여러분 초신자들이 교회에서 싸웁니까? 안싸웁니다. 왜 잘 나오지 않으니까? 싸우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싸웁니까? 봉사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이렇게 봉사하는데 왜 봉사하지 않습니까? 왜 헌신하지 않습니까? 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병폐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의 분열을 시키는 악한 영들의 싸움입니다.
왜 교회에서 싸울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랑, 즉 교만 때문입니다. 성도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면 별것 아닙니다. 봉사의 문제 그러한 것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싸웁니다. 무엇 때문에 물질의 문제 때문에 자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건축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더라고요. 새벽기도회하는 사람 때문에 교회가 서가고 봉사하는 사람(성가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무너진다고 하였습니다.
3. 멍에를 같이 매라고하였습니다.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나와 멍에를 같이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1) 바울의 아내, 2) 유오디아나 순두게의 남편, 3) 에바브로디도 4) 디모데 실라, 누가, 등 많은 사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교회전체를 보았다는 학설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두 마리의 소가 통상 멍에를 메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겨리라고하는데 이때에 사도바울과 그리고 성도들이 같이 멍에를 매고 함께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분쟁의 요소를 보면 교회 개척할 때에는 목사님이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소천하면 장로님의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을 좌지 우지 합니다. 그래서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같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도 함께 2015년도를 일으키기 위하여 겟세마네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혼자만 하지 않고 같이 하기를 원합니다. 이 교회는 제교회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주의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가 성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작은 시간을 드리는데 내 물질이 아깝고 시간이 아까워서 나오지 못하면 교회를 세울만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겟세마네 기도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모여질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 분 한분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때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한주간에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때에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들이 와서 함께 기도할 때 많은 은혜가 있었고 당진에서 온 게스트 하우스 친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금요철야시에는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제 몇칠 남지 않는 겟세마네기도회를 통하여 우리 주님의 앞에서 바로 서있는 시간이 되어 2015년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