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9장
빌립보서 2장 19절 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2월 28일 주일설교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세상에는 힘이 3종류가 있습니다. 권력, 금력, 학력입니다. 이러한 힘은 세상에 살동안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특징은 다 시한부적이라는 것입니다. 권불 10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력은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력은 자신의 대에서만 사용합니다. 혈기 왕성하고 힘이있는 천하장사 여포도 강호동도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영원한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바로 시험대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힘, 그것은 믿음의 힘이고 신앙의 힘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이 신앙의 힘을 극대화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우리의 힘을 3종류로 구분하기도합니다. 미신적인 인간, 과학적인 인간, 신앙적인 인간입니다.
미신적인 인간은 인간이 믿을 수 없는 미신을 믿는 저급하고 유치한 인간입니다. 복권과 요행을 믿고, 귀신과 점치는 사람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데 귀신에 속사이는 이단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인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측량하고 계산할 수 있는 것만 믿는 사람입니다. 지식과 기술중심이고 과학적인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제일로 생각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갖기를 원합니다. 학교에서 배우거나 자신이 경험한 지식과 기술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인간의 생각 인간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자연과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 신앙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까지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인정하고 이성 미치지 못하는 초월적인 세계를 믿고 하나님를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정오 목사(동숭교회)참조)
사도 바울의 특징은 전반부는 교리를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1장까지는 기독교의 핵심을 로마서 12장 16장까지는 교리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빌립보서도 마찮가지입니다. 빌립보서 1장부터 2장 18절까지는 교리를 말씀하고 있고, 19절부터는 삶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본문 마지막까지 사도 바울의 주제는 주안에서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직 주님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본문 설명
본문의 설명을 조금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빌립보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어려움을 알고 자신들의 교회에서 헌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대표이며 담임목사님이시 에바브로 디도를 로마감옥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에바브로 디도가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풍토병입니다. 마치 선교사가 해외 나가서 사역을 하다보면 풍도병에 걸려 거의 죽음의 사경까지 헤메게 됩니다. 이때에 어느 선교사님은 순교하기도 하고 어느 선교사님은 본국에 들어와 치료도 하기도합니다. 우리나라에 파송된 미국선교사님들이 많이 이렇게 죽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위하여 에바브로디도가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병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디도가 그렇게 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위하여 헌금가지고 와서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 주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그를 책망하거나 나무랄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단지 에바브로디도를 위하여 기도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중보기도인지 하나님의 역사로 에바브로디도가 깨끗이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낳은 에바브로디도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 돌려보내면서 빌립보교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에바브로 디도를 존귀히 여기라”(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 왜 존귀히 여겨야합니까? 그 이유를 말씀 중심으로 증거하겠습니다.
2. 주의 종 사도 바울도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이렇게 추천하였습니다. (recomadation) 여러분 주의 종으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미국에서 대학교를 가거나 회사를 취직하려면 레코멘데이션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 사람의 됨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조금 고처야할 것이 있다면 진학을 위하여 모든 것을 좋게 평가만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위조까지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사람들은 몰인정하게 추천을 쓰거나 정직하게 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사람을 추천하여 놓고 그 사람이 합당하지 않으면 추천한 사람들이 얼마나 엉망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에게 어떤한 평가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지동현권사님 참으로 무엇인가 하나라도 주의 종을 위하여 가저오시는 권사님입니다. 예전에 계션던 목사님이 지동현권사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같은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까마귀 권사님입니다.
원복래안수집사님입니다. 우리 교회에 정말 기둥과 같은 집사님입니다. 어려운 모든 문제 힘이 드는 모든 문제를 남자 집사님 혼자서 목사와 함께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게 나의 형제라고 하였고 나의 군사라고 하였고 너희의 사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의 쓸 것을 돕는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인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개역개정]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3. 왜 존귀함을 받아야합니까?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사도 바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을 돕다가 병들었고 도움이 되지못하고 페를 끼치고 왔기 때문입니다. 교회처럼 말이 많은 곳이 없습니다. 술을 먹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오직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문제의 말이 뻐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법정에 목회자들과 성도들간의 지루한 법정 전쟁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지 말고 존귀함을 받아야할 목회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옥바라지를 하려고 왔는데 질병으로 고생하고 이제 치료를 받고 25절에 말씀처럼 나와 함게 있는 것이 좋으나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1) 함께 (더불어) 일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라고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입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2) 끝까지 충성: 사도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아 끝까지 자신을 감옥에서 돕는 사람으로 충성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사도바울을 쓸 것을 체웠습니다.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자라고 하였습니다.(25절) 섬김의 봉사자였습니다. 자신이 주도하며 자기 마음대로 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1300km까지 달려가서 사도 바울을 도왔습니다. 헌신한 사람입니다.
한 교회가 탄생하고 유지하고 성장해 가는데는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즉 난 뒤에 썩은 부분에서 열심히 동화작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리가 평온하게 떠 있는 것 같지만 발밑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4) 긍휼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죽게 되었다면 얼른 자신의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와 병을 치료하받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가 아프면 얼른 본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그곳에서 믿음으로 사역하다가 죽는 선교사도 보았습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긍휼이 많아서 사도 바울을 계속적으로 자신이 아프면서도 그를 도왔던 것입니다.
4. 왜 존귀함을 받아야합니까? 바울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였습니다.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여러분 한 인물에 대하여 2가지 평가가 내일 수있습니다. 예로서 요즘에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그 분이 나라의 건국을 하고 그리고 6.25 동난을 잘 극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불명예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도합니다. 하늘나라에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평가을 받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마지막 심판날에 좋은 평가 착하고 충성된 평가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자기를 위하여 목숨까지 돌보지 않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0여년 전에 원복래 안수집사님과 함께 김연순 선교사 곽충규안수집사님의 집에 구역예배를 드리러 가게 되었습니다. 전에 계신 목사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속에 존경의 뜻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에 정년퇴직을 하면서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이 나를 그렇게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 보지 않는다면 참으로 비참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운전하면서 신월동에 가면서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는 물질에 대하여 깨끗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적인 문제에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되어주시고, 늘 겸손하고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주의 종이 되었으면합니다. 지금도 참으로 힘든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은 일입니다. (자식과 아내에게 인정받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200여 가지의 해택을 누리면서 살아간다고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성도들을 섬기는데 큰 교회목사님은 대통령 부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너무 고생합니다. 성도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일을 다해야합니다. 청소해야합니다. 그리고 운전해야합니다. 그리고 어느 때는 식사준비까지 해야합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여러운 목사님은 교회의 일도하면서 부업까지 하는 모습을 종종보게됩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이런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잘 죽으려고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종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는 자입니다. 그 메시야로부터 베드로에게 그리고 각 시대마다 목사님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주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도록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목사님들에게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치리할 수 있도록 명하셨습니다. 즉 목사는 ‘성경말씀’을 바르게 풀어서 전달하며 성도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지도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볼류오’ 인데 ‘위험을 무릅쓰다’라는 뜻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도우려다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도왔습니다. 바울이 옥중에서도 기뻐하는 이유는 함께 목숨을 거는 자들이 주위에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파라볼류오는 도박판에서 한꺼번에 모든 판돈을 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교회와 담임목사님에게 충성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번 해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2015년도에는 정말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한번 살아보자고 결심하는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드라마에서 또는 영화에서 도박영화를 보면 모든 돈을 다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한번에 승부를 내는 것입니다.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뜻하시는 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고 알았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어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고 그분을 모시는 일에 올인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일에 올인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백보좌 심판하실 때에 올인하시는 성도들에 좋은 것을 주시지만 여러분 백보좌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것에 올인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어떻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요즘 빈둥지 증우군이라는 것이 있다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증상을 격으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한 증상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러한 증상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년퇴직을 하면 한국사람들은 여행을 다니고 자신의 퇴직금과 연금으로 놀기 위하여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봉사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산다고합니다. 예전까지는 자식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도 한번 확근하게 믿어야지 믿는둥 마는 둥하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에바브로 디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의 평가는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를 존귀히 여기라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목회자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좋은 레코멘데이션), 25절에 함께하고 끝까지 충성하고 죽기까지 사도바울을 위하여 충성한 자입니다. 그래서 존경하라고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주의 종으로부터 인정받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