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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소서 1장 19절 (기대와 소망)

2014-10-28 09:52:14


빌립보서 1장 20절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0월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사도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서 개인적으로, 사업으로 그리고 관광으로 가는 길이 아니였습니다. 이탈리야의 심장부 로마로 복음을 들고가 그곳에서 복음의 꽃을 피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5장 22절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사도 바울의 기대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로마로 가는 것이 기대와 소망이라고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로마로 그리고 관광지로 놀러가는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증거를 위하여 로마로 가는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성경의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1. 기대하고 소망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합니다.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예수님에게 12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대와 소망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한자리를 얻기 위한 세상의 출세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출세를 위하여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동안 예수님에게 설교도 듣고 기도하는 모습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는 순간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고 한 제자는 예수님을 팔고 한 제자는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곳에 모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하니 그들의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목표가 달라지고 성공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삶이 인생의 종국적인 성공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다른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의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받는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다른 교단에서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중생으로 보고 그리고 성령님이 내제 내주하는 것으로만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성령님을 오늘 이시간에 체험해야하는 것입니다.

체험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어야지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극상품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누구 증인입니까? 내 증인입니다. my witness입니다. 세상의 증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 성령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증인은 직접적인 증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보았어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어 그런일이 일어났어 하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가 아니라 “그렇게 받드시 됩니다.” 직접체험하고 증인으로 삶을 사는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간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간접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다람쥐가 다람쥐 체박귀 돌듯이 매일 형식적인 무미건조한 신앙생활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임하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제가 기도할 때에는 늘 성도님의 머리위에 손을 얻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갈 때에 인사하지 않고 우리는 도중에 인사하고 그리고 손을 얻고 우리 성도들을 일일이 성령충만을 위하여 안수합니다.

예배를 들리러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님을 만나러오는 것입니다. 예배는 성령님이 베푸신 잔치이고 기쁨인 것입니다.

영산교회 강영선 목사님이 이러한 간증하였습니다. 어느 자매님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늘 평생 목회에 좌우명으로 생각하면 살아간다고 합니다. “옛날에 받은 은혜를 긇어처먹지고 말고 오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하였습니다.”

육적인 설교는 율법적인 설교이고, 혼적인 설교는 교훈적인 설교이고, 영적인 설교 성령의 설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게 만들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현장에 잇는 설교입니다. (처음 개척할 때에 기도한 내용: 나는 하나님앞에서 설교한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설교하라는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너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성도들이 주변의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제하는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2.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사람이 언제 부끄러워합니까? 몇가지만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첫째로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 합니다. 죄를 짖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개역개정] 창세기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같이 있습니다. 8절에 보니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지라도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경찰서에 잘못해서 잡혀간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숨고 몰래 지하 주차장으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경쟁에서 지면 숨게 됩니다.

여러분 운동에서 이긴 선수들은 자신의 얼굴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운동경기에 진 선수들은 숨고 언제 귀국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운동경기에 이긴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하고 환영식을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북한에서 아시안 게임에 참석하고 일등한 선수들 북한 여자축구선수들은 평양시내를 돌면서 축하를 받은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 부끄러워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그리고 자신의 일처리를 다하여 열심히 공부할 때에 떳떳하니 선생님께 손을 들고 발표하고 좋은 성적을 얻으면 떳떳하게 자랑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을 당하지 못했을 때에 부끄러워하고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성도들도 자신의 일들을 다하게 될 때에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목사님께 자랑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개역개정] 이사야 49: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대 원형 경기장에 집어 넣어 놓고 아주 처절한 싸움을 시키곤합니다. 그래서 죽거나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철철 흘리는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쾌감을 느끼며 낄낄 거리고 웃는 장면들을 우리가 영화에게 보게 됩니다.

아주 잔혹한 격투기 경기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권투경기와 비슷한 경기가 있습니다. 권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드를 올리는 것입니다. 겨드랑이를 붙이고 얼굴을 보호해야 합니다. 얼굴을 잘못 맞으면 정신을 잃을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드를 올려서 얼굴과 턱을 보호하도록 합니다. 1회전, 2회전을 지나 계속될수록 선수들은 점점 지치게 됩니다. 그러면 가드가 자기도 모르게 내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속에서든지 선수들은 이 가드를 내려오지 않도록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도 경기를 오래하게 되면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면 얼굴부위가 노출되고 상대방에게 가격 당하기가 쉽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칭피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믿음의 방패를 들어올린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그러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에 믿음의 방패를 들어올리는 성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방패를 듣 손이 내려가면 적에게 노출되게 되고 화살이나 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방패를 듣 손이 내려가게 되는 것 즉 믿음의 손이 내려가게 되면 낙심하게 되고 수치를 당하게 되고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을 들고 다니시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도 바울의 상황을 보십시오,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부끄럽게나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진보가 되고 나의 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구원은 3가지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구원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즉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내가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완전한 구원이라고 합니다.

셋째로 내가 오늘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문제 해결되고 어떤 상황 가운데 건짐을 받았을 때에 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즉 어떤 어려운 상태에서 건짐을 받는 상태를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내 믿음대로 될 찌어다라고하였습니다.

3. 기대와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살든지 죽듯지 그리스도가 존귀해 될 때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내가 원하는 것, 즉 기대와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그에 해당되는 댓가를 지불해야합니다. 내가 반에서 1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학과 시간에 잠을 자면 1등을 할수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담대해야합니다. 믿음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나가게 될 때 그것이 기적으로 축복으로 바퀴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여왕이 괴한에게 저격을 받을 뻔하였습니다. 행정부에서 여왕님 저희들이 경호원을 더 늘리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여왕은 반대를 하였습니다. 여왕쯤 되었으면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지 무엇이 두렵다고 그렇게 생활합니까? 모든 우리 가족들은 나라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먼저 나가서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많은 영국 국민들이 여왕을 더욱 존경하고 여왕의 권위를 인정하였다고하였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실패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감옥에도 그것이 축복의 장소가 되고 복음의 진보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하면서 더 형통해졌습니다. 감옥에서 더 불행졌습니까? 안닙니다. 더 축복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여러분의 생각을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야합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우리나라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뛰어났던 사람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를 뽑을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그가 모르는 것이 두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지식이 몇 명인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가진 돈이 얼마나 되는지 였다고 합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쯤 내가 20년만 더 살수 있으면 내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고했습니다. 20년을 더 살수 만 있다면 자기는 인생 맨 밑바닥에서 출발해도 좋겠다고 했습니다.

황무지 같은 현실속에서 맨땅에 조선소를 세우고 자동차공장을 세우며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냈습니다. 참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역시 같은 일을 반복할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다른 인생을 찾아볼 마음이 없습니다.

물론 그는 열심히 살았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말년을 보면 쓸쓸합니다. 말년에 매일 아침 일찍 자시의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입니다. 모여서 같이 식사하고 그가 출근할 때 안녕히 다녀오시라고 도열하여 인사를 하였다고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문안 인사를 드렸을까요? 그가 세상 떠날 날이 멀지 않았는데 열심히 눈도장 찍어야 되는 겁니다. 잘만 보이면 회사가 하나씩 뚝뚝 떨어집니다. 그는 거의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정주영 회장이 죽은 후 왕자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자식들끼리 돈가지고 싸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성취를 위해 애썼고 돈의 위력을 계속 누리려던 사람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물질을 쌓다가 자신의 인생 모두를 보낸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사가 죽음과 생명의 사이에 끼었다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개인적으로 당장 죽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죽는 것보다도 더 원하는 것은 내가 복음을 증거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I want 죽어서 천국가는 것입니다. I need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삶의 목표요 방향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진정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돈을 위하여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건강을 위하여 진정한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모인 성도들은 여러분의 기대와 소망이 성령의 충만이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죄를 짖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고 그리고 언제나 사나 죽으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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