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4월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요한복음 19장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2 주간 동안 온 국민이 아파하고 울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수색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구명 조끼를 끈으로 묶은 남녀 학생 시신이 발견됐다. “고인에 대한 예의를 표한 후 남학생을 밀어 올리려는데 구명조끼 아랫쪽 끈에 뭔가가 연결돼 있어 끈을 당기니 여학생의 주검이 딸려왔다”고 전했다.”연결된 끈을 풀고 남학생을 밀어 올리려는데 시신이 물에 떠오리지 않았다” 잠수부는 후배 잠수부와 다시 물속에 들어가 두사람의 시신을 함께 수습했다.
“구명조끼 끈, 마지막에 끈묶는 심정 어땠을까?” 그 고통과 두려움을 함께 하기 위하여 두 고등학생은 구명조끼 끈을 서로 의지하면 운명을 다하였습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사연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2종류의 신앙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파의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성도의 삶입니다. 물론 구원파의 선장과 선원들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은 타의적으로 수동적으로 신앙생활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정말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저승 사자처럼 수백명의 사람들을 죽음의 스올로 밀어 넣고 어른 자신들은 탈출한 모습입니다.
떳떳하고 당돌한 죽음을 택한 한 소년이 있습니다. 안산 명성교회 사찰집사님의 딸 온유양입니다. 온유가 갑판에 나왔다가 다시 배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온유가 사고직후 갑판에 있어다면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저나오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고 구명조키도 입지 않고 다시 선실로 내려갔습니다.
온유는 아버지 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교회 사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재주가 많아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중학교 때에는 새벽기도회 반주도 하였다고 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지난해 12월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오후 7∼11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온유는 음악심리상담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다고합니다. 2학년때에는 반장을 맡았고 지난해 1학년 학년 대표가 되어 2학년 대표 선거를 준비했는데 친구가 출마하는 바람에 양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안산 명성교회 김홍선 담임목사도 평소 신도들에게 “온유와 얘기하면 대학교수랑 얘기하는 느낌”이라며 “참 어른스러워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 20일 열린 명성교회 부활절 예배는 눈물바다였다. 주보의 십일조 헌금자 명단에 온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편의점 알바로 번 돈을 쪼개 수학여행 떠나기 전 헌금한 사실이 이날 주보에 실린 것이다. 온유의 시신은 22일 발인 후 단원고와 교회를 거쳐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됐다. 명성교회는 실종자와 희생자를 위해 매일 저녁 8시 기도회를 열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은 나의 돈 버는 곳으로 생각하고 이웃은 내 주머니를 체워주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원들이 만든 회사는 맘몬주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이단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직업윤리도 없고 예수님의 제자도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 세월호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행동을 하였을 까요?
저는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의 향기로 살아갈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더 당돌하게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분과 함께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당돌한 아리마데 요셉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유대인의 하루는 일몰 때부터 다음 일몰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시간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입니다. 이제 세 시간 정도만 지나면 안식일 되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빨리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내리려면 총독 빌라도의 허락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제자들 다 도망갔습니다. 오직 힘없는 여인들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아리메데 요셉은 부자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도 유대인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자신이 쌓았던 부와 영애 정치적인 덕망들이 한순간에 다 잃어버릴 수 가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과 서기관과 제사장 때문에 그를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마데 요셉은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당돌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당돌히라는 말과 비슷한 단어가 있습니다. 담대하게 분명하게 용감하게라는 단어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빌라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어떠한 역경이 다가오는지 상관없이 희생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생각으로 그는 빌라도에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리마데 요셉은 당돌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성경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부자나 지위가 있는 분들은 늘 자신을 보호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http://oreuda.tistory.com/3717
1232년 몽고군이 침략해오자 최씨 무신정권은 도읍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힙니다. 이후 몽고군의 말발굽 아래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주요 문화재가 소실 되고 민초들은 학살되거나 노예로 끌려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신하게 됩니다. 임금이 도망간 사실을 안 백성들은 분노하여 궁궐과 관청에 불을 지릅니다.
1950년 6.25 발발 3일 뒤 이승만 정권은 국군이 북한군을 격퇴중이라는 거싯 선전방송을 내보내며 자신들은 대전으로 도주합니다. 이때 북한 군의 남하를 우려한 정부는 한강 철교를 폭파하여 피난민 800여명이 사망하고 남아 있던 시민들은 북한 군의 치하에 놓이게 됩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자 월남 주재 한국 대사는 본국에 교민들이 모두 무사귀환했다고 거짓보고를 한 뒤 몰래 가족들과 함께 군함을 타고 철수합니다. 남아있던 교민들은 모두 북베트남에 억류되어 포로가 됩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 삼풍백화점의 붕괴 진행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이준 (삼풍그룹 회장) 이한상 부자는 붕괴 한 시간전에 건물을 빠져 나오면서 아무런 대피방송을 하지 않고 나옵니다. 한 시간 뒤 상품백화점 붕괴, 1500명이 넘은 사람들이 붕괴 사고를 당하고 502명이 사망하였습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나자 기관사 최모씨는 마스콘 키를 뽑아들고 혼자 대피하게 되며 이로 인하여 전동차 문이 잠겼고 대피하지 못한 승객 192명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승객 477명을 태운 세월호 침몰 선장과 승무원들은 “ 객실이 더 안전하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말고 자리 지켜라” 방송 안내 뒤에 가장 먼저 구조된 선장과 승무원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 부활할 것을 그리고 이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세주로 오심을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러한 믿음의 확신이 들었을 때에 확신이 생겼을 때에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상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사상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어린 시절 농촌에서 그리고 어려운 공장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저 혼자 생각에 빨리 이 어른들의 시대가 가고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바르게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적이 있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 특별히 남자 어르신들은 왜 그렇게 자녀들을 때리고 그리고 자신의 부인을 때리고 무식하게 행동하면서 세상에서는 비굴하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시체를 달라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의 추종자요 예수님의 제자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계집 아이에게 예수님을 저주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떴덨하게 자신을 들어내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숨기고 있다가 그렇게 떳떳하게 나타낸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성경의 다음 구절을 주목하면 좋습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확신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메시야 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죽음 뒤에도 확신한 천국이 있다면 무엇이 두렵습니까? 마치 이와같은 것입니다. 월드컵이 다가옵니다. 6월이 되면 월드컵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2002년때에 월드컵 4강의 사건을 기억하고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탈리에게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정환의 골을 통하여 4강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장면을 보면 마음을 초초하게 보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불라질 월드컵의 축구를 보면 마음 조리고 볼것입니다. 마찮가지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아직 모르기 때문에 확신없이 살아갑니다. 비굴하게 살아갑니다. 현제의 것만 보기 때문에 현제의 물질에만 매달리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의 성령을 받지 않았을 때에 부활의 확신이 없을 때에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다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왜 요. 그들의 마음속에는 부활과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순교할 수 있습니까? 바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일어나면 당당하고 당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다른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언의 책임감 신앙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무언이 아니 익명으로 자신을 나타나게 될 때에 그 부분에 확실히 들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5-16)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한 천국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감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3절에서 아리마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으로 이끌어가시는 구세주 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면서 기쁘게 자기 무덤을 내놓고, 자기 명예를 내놓고, 자기 권력을 내놓고, 자기의 부를 내놓은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머뭇거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순간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사건도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을 종합해보면 이러합니다.
4월 16일 진도 교통관제센타에 접수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VTS) “선장이 상황을 판단해 승객을 탈출시키라”
제주 VTS의 교신내용입니다. “지금 침몰중이냐” “ 그렇다. 빨리 구조부탁드립니다.” 둘라에이스와 드레곤에이스가 인근의 다른 선박에 구조 협조 부탁했다.
9시 17분쯤 진도VTS가 배 상태에 대해 묻자 세월호는
“지금 50도 이상 왼쪽으로 기울어져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선원들에게는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입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하라. 라이프링(구명대)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빨리” 세월호는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중국 선박 잉샹호 등이 인근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이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려라”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기만 했다.
“경비정 10분 이내에, 헬기는 1분 후 도착한다”고 알렸다. 이에 세월호는 “승객이 너무 많아 헬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결국 선장 이준석(69)씨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을 때 구조가 이뤄질지를 우려만 하다 오히려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인생의 삶속에서 가장 큰 적은 바로 내일로 미루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36-39절을 보면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뒤로 물러가’라는 말은 신앙생활의 퇴보를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의 지체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말설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일 성수, 오후예배의 망설임, 봉사, 기도, 십일조 등등
침륜에 빠진다는 것은 물에 빠진다는 뜻을 가지고있습니다. 즉 망설이다가 세월호의 많은 학생과 승객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장의 말설임으로 죽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도 바로 이와같습니다. 내가 한 번 믿기로 했으면 확실하게 믿고 뒤로 물러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원의 확신으로 당돌히 빌라도에 들어가 예수님의 신체를 장사한 사람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이 마귀가 주는 문제 앞에서 뒤로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당돌히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