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요한복음 9장 1절 실로암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frombible

수요일날 제가 이빨을 해야하기 때문에 닉과 함께 인천 연안부두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전철안에서 몇가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닉이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이 그리니지 천문대로부터 시작하여 해가 뜨는데 영국을 지나면 미국에서 해가 뜨고, 그리고 호주에서 해가 뜨고 그리고 홍콩, 말레지아, 인도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든 나라들이 식민지의 나라기 때문에 동일하게 영어를 사용하고 영국에는 항상 해가 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하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공부하였는데 지금은 그러한 모습들이 없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성의 눈을 뜨고 영적인 눈에 감아있다고 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있다고 없다고 하는 것만 말합니다.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 성령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물도 마찮가지입니다. 개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세상입니다. 청각과 후각만 발달되었습니다. 개의 시각에서는 흰색, 검은색, 회색 세가지 박에 보지 못합니다.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의 투우경기를 할 때에 붉은 색은 물론 검은색 조차 구별하지 못합니다. 단지 투우사의 움직이는 깃발만 보고 달려들 뿐이니다.

곤충의 눈에는 홑눈 수천개가 모여 겹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온통 세상은 모자이크 세상으로 되어있습니다. 나비와 꿀벌은 꽃을 볼 때에 같은 색으로 보지 않고 꿀이 있는 중앙으로 갈수록 더욱 진하게 보는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1만 7천가지의 혼합된 색을 구분할 정도로 놀라운 눈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작은 물체라든지 너무 멀리있는 물체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눈의 한계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연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전에 같이 있었던 이정철 목사님은 사모님이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잘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아무것이 집어넣었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정철 목사님은 그래서 조금이라도 눈이 보이지만 오늘 본문으니 완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늘 구걸을 하고 있던 소경이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맹인을 보고 이 맹인이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신입니까? 그 부모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쁜 일입니까? 눈먼것도 좋지 않은데 눈 먼 것이 자신의 죄나 부모님의 죄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마음이 속상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더 말씀하십니다. 때가 낮이기 때문에 우리가 낮의 일을 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빛의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의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침으로 이겨 발라주신 진흙을 실로암에가게 됩니다.

1. 고통 가운데 있을 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치료가 임합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여러분들이 어떠한 질병에 걸렸던지 여러분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지 여러분들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문제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에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를 지으므로 우리에게 저주가 다가오는 것을 분명합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우리에게 3중 저주가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1) 환경의 저주 (가시덤불과 엉겅퀴 2) 질병의 저주 (흙으로 돌아가리라), 3) 환경의 저주 (땀을 흘려야)

창세기 3장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욥기서 제7장

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을 통하여 부모를 원망하고 조상을 불평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마치 욥의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욥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사도 바울에게도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3번 간구하였고 주님께서 내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말씀하시면서 치료하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육신의 가시로 인하여 복음을 증거를 멈추지 않았고 끝가지 그 길을 간 모습을 보게됩니다.

우리의 모든 성도들은 육신의 가시가 있습니다. 이영순집사님, 김옥자집사님, 허정호집사님, 종과 우리 사모, 정서남권사님 …. 이것이 부모님이 나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바꿔서 생각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저희들의 영적 육적인 눈을 열어주시옵서서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료하여주셨습니다. 그 치료받은 소경을 데리고 바리세인에게 갔습니다. 소경이 치료받은 날은 안식일이였고 바리세인들이 소경이 치료받은 날이 안식일이므로 율법을 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소경이 치료받고 자신이 치료해준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리세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바리세인들이 그를 출교시키면서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거부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경은 눈을 뜨는 축복과 영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발람과 발락의 눈

민수기 22장 보면 발람이 발락을 요청을 받아 모압 귀족들을 따라서 발락에게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모압 족속에게 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을 통하여 발람이 땄던 나귀를 칼을 들고 담벼락에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이 탔던 나귀는 주님의 사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피하여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나귀를 채찍질합니다. 이러한 일을 세 차례나 반복되자 나귀의 입을 사자가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람역시 눈을 열어 발람의 눈을 밝히 보여줍니다.

예전에 김연순 선교사님의 시아버지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고 대소변을 아무렇게나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딸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저를 천국에서 모른다고 하면 어떠한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부지행동)

2) 엘리사가 눈을 열어주심 (도담성)

[개역개정]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 때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담성을 밤중에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엘리사를 수종드는 종자가 일어나 나가보니 아람의 말과 병거가 성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엘리사에 고하되 “아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오리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사가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왕하6:16).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본 사환은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를 보았습니다. 영의 눈으로 본 엘리사는 도단성을 둘러싼 천군 천사를 보았습니다.

요즘에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볼 때나 믿음 생활할 때에 세상의 현상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의 눈을 강조합니다. 이상하게 세상은 믿음의 눈이 큰 나라와 민족과 개인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과학과 문화와 예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의 믿음의 세계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열려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

누가복음 24장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신약에서 그러한 현상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현상만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향으로 그리고 자신의 직업을 찾아서 떠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 이유를 가리워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현상에 가리워졌고, 죽음에 가리워졌고, 실망에 가리워졌고, 소망없음에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는 설마 자신의 길속에 삶속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시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와 함께 하였고 같이 식사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셨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다시 사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최근 인기가 최고인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이라는 동영상을 보셨습니까? 약 1억명 이상이 보았다고 하였스니다. 시편 119편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이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이 동영상 인기 못지 않습니다. <강남 스타일>의 인기가 일시적이라면 하나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3. 진흙을 이겨 실로암으로 가게 하심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은 참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셨던 것입니다. 침과 진흙은 치료에 방해요소입니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절대 하지 말아야합니다. 의사가 보면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저는 아프게 되었을 때에 의사로부터 권면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절대로 위장병에는 금식을 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나 금식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괜찮습니다.

실로암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성지 순례를 하였을 때에 실로암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실로암은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았을 때에 물이 없어서 고생하게 될 때에 물을 성내로 들어오게 하는 길과 연못입니다.

역대하 32장 30절에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의 침략에 대비하여 성에 물을 대기 위하여 공사를 시작합니다. 약 2천 5백명의 사람들이 암반 터널 공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기혼샘과 실로암 양쪽에서 서로 파들어가는 공식의 공사를 해서 533m 터널을 뚫는 엄청난 공사를 해 냈습니다. 그런데도 약 15cm의 오차가 없이 공사를 하였습니다. 이 공사는 양쪽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간 지점의 약 1.2 m를 남겨놓고 양쪽이 만났다고 기록되었습니다. 1880년 발견된 비문은 여섯줄로 모두 2백자 글짜중에서 177자만 보존 되었스니다. “3규빗쯤 남았을 때 반대편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터널이 뚤렸을 때 동료를 얼싸 안고 도끼를 서로 부디쳤다. 물은 샘으로부터 1200규빛을 흘러나왔다.” 이 기록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었습니다. 히스기야 터널에는 차가운 샘물이 흐르고 고기도 살고 있습니다.

본문의 나타나는 소경은 진흙을 붙이고 실로암 못으로 가는 동안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불쾌한 느낌이나 감정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앃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