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3장 9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월 마지막주일 예배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저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매일 한 장이나 조금씩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과 비슷한 부분이 바로 역대하 1장의 내용입니다.
역대하 1장의 내용에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왕위를 이어받어 부귀와 영화가 가득한 왕이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갈때에 인생의 종류를 크게 나누면 정말 어려운데 나중에는 창대한 사람이 있고,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부유하게 살다가 잘못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기도 하였지만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을 따라서 하나님을 잘 섬기었습니다. 역대하 1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창대케 되었다고 말씀하였고, 솔로몬은 모든 천부장, 백부장 모든 방백들을 대리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하였다고 말씀하였고 그리고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황희 정승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황희 정승은 나중에는 훌륭한 정승이 되었지만 젊었을 때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제멋대로 행동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했다가 후회를 한 적도 많았다. 황희가 벼슬아치들의 미움을 받아 잠시 쉴 때 일이다. 황희는 이 기회에 전국 유람이나 하여 견문을 넓히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남쪽 어느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때는 마침 모내기 시기라 들판에는 사람들이 많이 흩어져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황희는 땀을 식히려고 나무 그늘에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맞은 편 논에서 늙은 농부 한 사람이 누렁소 한 마리와 검정 소 한 마리를 부려 논을 갈고 있었다. 황희는 한참 구경하다 그 농부가 가까이 오자 물었다. “누렁 소와 검정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늙은 농부는 일손을 놓고 일부러 황희가 있는 그늘까지 올라오더니 황희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렁 소가 더 잘 하오.” 황희는 농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만 일을 가지고 일부러 논 밖으로 나오시오. 또 귓속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 늙은 농부는 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두 마리가 다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하는 쪽의 소는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잖소?” 황희는 농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황희는 농부에게 큰절을 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이 후 황희는 죽을 때까지 남의 단점이라고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 날 까지 훌륭한 정승으로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 남종과 여종과 아내의 말이 옳소이다)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 간구한 내용이 있습니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주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요 이것은 삶의 성공적인 삶의 요소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과 아야기해 본적이 있습니까? 저는 참 말을 잘못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좀 잘하게 해주요. 제 동생 보라매 동생처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나는 말을 못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하였을 때에 그에게 모세의 형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징기스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모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때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금요 새벽기도회를 끝나고 배점이권사님이라는 분하고 신앙상담을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남편과 함께 새벽기도회를 나오는데 남편이 자꾸 이번 설에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하였습니다. 큰 아들과 큰 아들 며느리는 불교를 숭상하는 가정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밥을 사주면서 제사를 지내자고 하기 때문에 밥도 먹으로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의 답을 스스도 찾아서 저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단지 들어주었습니다. 왜 저에게 상담하시냐고 했던니 목사님에게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시원하고 목사님에게 말씀드리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듣는 마음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가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상담가가 되어야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듣는 마음은 어떻게 생길까요?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예배를 통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라는 예배를 통하여 듣는 마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듣는 것은 무엇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듣는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에서 선생님의 말을 잘들어도 지혜를 얻는데 공부를 잘하여 제가 가장 늦게 공부의 원리를 떠득하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때의 성적이 올 A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교수님의 말을 한자도 빼놓지 않고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왜웠더니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시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교수님의 생각과 말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성적을 얻는 길이 말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수요예배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철야예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일예배 주일 오후예배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로마서 10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요한계시록 1장 3절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다른 것을 들으면 생명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바로 성령님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에 시험과 역격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런데 성도들은 이렇게 말씀을 가려서 듣습니다. 자신에 좋은 것을 듣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기독교를 저급의 종교로 무당과 점쟁이의 미신으로 타락하게 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쓴나물을 먹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성장하기 위하여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모가 미역국을 참으로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들었는지 미역국에 피를 맑게 하고 요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역국을 목요일날 끓어여서 먹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나 감사하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 가정은 먹는 음식이 쓴 것만 먹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몸에 좋다고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너무 복 복하거나, 너무 단 것을 먹으면 비만과 당료와 고혈압에 결려 몸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위하여 쓴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당시의 솔로몬의 상황을 보십시오. 자신은 나이가 정말 어렸습니다. 나이 14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는 10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으로 그가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좋은 말들을 들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2. 백성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듣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합니다. 지도자가 되면 언제나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마음속에서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다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재판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번도 재판을 받았거나 재판 자리에 참석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재판하것을 영화로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을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진실이 무엇이 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재판에서 무전 유죄 유전 무죄로 판단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욕심이 들어가 물질이 들어가면 제판을 바르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김성애 권사님이 재판을 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물질이 들어갔다고 권사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조병춘안수집사님)
주의 종도 성도들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찰스 M. 쉘돈 목사님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불후의 명작을 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150여 년 동안 미국에서만 3천 만 부 이상이 보급되었고, 전 세계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 「IN HIS STEPS ;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What would Jesus do?)라는 책입니다. 목사님은 실제 성도의 삶과 관련이 없던 설교를 하던 제일 장로교회 목사 핸리 맥스월은 이 노숙자가 죽으면서 던졌던 예언자와 같은 말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집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후 현관에 벨이 울려서 나갔더니 삼십대 후반의 허름한 실업자가 찾아왔습니다. 나는 인쇄공인데 실직하고 수개월 지났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직장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아내는 병들고 딸은 친척집에 있다고하였습니다. 목사님에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겠으니 일자리를 좀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그를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그 노숙자가 성도들 앞에서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수개월동안 일감을 구하다가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아내는 병들어 죽고 어린 딸을 친척집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절망적입니다. 일감을 찾고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박절하게 대하였습니다. 그 노숙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그걸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헨리 멕스웰목사님이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며칠 동안 잘 치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분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람의 장례식을 마치고 멕스웰목사님에게 마지막 남긴 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그 말이 그 마음에 남아서 자기 속에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설교하면서 그 말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주에 우리 교회와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그 말을 하고 쓰러진 분을 이번 주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나는 일년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그 질문을 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일년동안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질문을 하고 거기에 나오는 대답을 가지고 손해를 보던지 이익을 보던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지 못 받던지 관계없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그 판단대로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광고시간에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교육관에 모여서 상의를 합시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목사님과 뜻을 같이 하는 성도가 한 50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야 이거 교우들이 내 말에 이렇게 따라주었구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50명의 교인들과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1년동안 무슨 일을 하던지 결과에 매이지 않고 사람들의 평가에 매이지 말고 이익이냐 손해냐 거기에 구애되지 말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을 따라 살겠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손을 잡고 합심기도를 했는데 그 때 모인 분들이 성령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고 영적인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는 신문사를 경영하는 사장님도 있고, 기업을 경영하는 분도 계시고 공무원도 있고 교사도 있고 남녀노소 골고루 모여서 50명이 참석했습니다. 놀라운 변화의 현장이 그 교회에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교회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함합니다.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임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많은 사람도 복음을 증거했지만 대부분 한사람에 집중하여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다나엘을 찾아가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장은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예수님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요한복음 3장은 밤중에 니고데모라는 관원이 찾아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분의 대화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은 사마리야에게 찾아가 그 여인의 남편을 치료하며 그를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가장 질병으로 오래된 38년된 병자를 치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주변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그 주변의 치료하시고 복음을 증거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황희 정승은 소를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농부의 큰 교훈으로 자신이 듣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저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증거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선포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정과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들이 우리의 삶속에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도 있지만 우리 개개인에게 어떠한 삶을 예지 예정하여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그 예정된 길이라도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 예로 제가 설명절에 대전집에 갑니다. 여러 가지 방법의 길이 있습니다. 기차로 가는 길 길차 설로로 예정된 길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장로교회) 그러나 대전까지 가는 길은 고속도로도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갈 때에 일차선도 타고 이차선도 타고 그리고 망향휴게소에 서서 소변도 보고 그리고 안성 휴게소에서 국밥도 먹고 그리고 쉬어가면서 대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국은 대전에 도착한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입니다.
우리에게 운명처럼 삶의 현상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택할 길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팔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린다고 하여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벌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나를 오늘 밤에닭울기 전에 3번 부인하리라.” 예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갔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면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닭이 울기 시작하였고 그는 그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가룟유다의 예수님의 예언적인 말씀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에서 수차레나 예언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1) 12명이 있는데 다는 네 제자가 아니고 한 사람은 마귀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2) 내 떡을 먹는자가 나를 팔리라고 하였고,
3) 그릇에 손을 넣는자가 나를 팔리라고 하였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께 와서 입을 맞출때에 회개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 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그리고 가룟유다는 최소한 베드로처럼 회개하여 지옥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예정되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 예정이 그대로 이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의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베드로처럼 회개하든지, 아니면 가룟유다처럼 성전에다가 은 30냥을 헌금하고 죽든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