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4절, 거듭남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7월 21일 금요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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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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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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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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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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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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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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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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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작가 오 헨리가 쓴 단편소설 중에 소매치기가 있습니다.
청소년 때부터 소매치기로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직업이 그렇다보니까 소매치기하는 것이 남보다 탁월했습니다. 이 소매치기는 남의 돈을 훔쳐서 재산을 모으고 인생을 즐기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부와 환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매치기가 거리를 지나던 한 여인의 핸드백을 털어서 그 속에 있던 지갑을 몰래 끄집어냈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을 한 번 처다 보았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어요. 어디에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소매치기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 여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자세히 보니까 그 여인은 고향에서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책상을 같이 쓰던 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순진하고 청순한 아름다운 모습, 교회에 다니자고 자기에게 권유하던 열심있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소매치기는 옛 친구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친구는 저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나는 남의 돈을 훔쳐서 사는 소매치기로 생활하고 있으니…”하면서 스스로 한탄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내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내 자신이 무척 싫어집니다.”라고 가슴을 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렸습니다. 이 소매치기는 집으로 향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참 성공이 아니었구나, 지금까지 행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참 행복이 아니었구나.”이런 생각을 하고서는“옛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야지. 새로운 결심을 가져야지, 어렸을 때의 고향친구 그 여자의 모습으로 선하게 살아야지”이런 결심을 하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매치기가 옛 고향 친구를 만나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였듯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출발로 거듭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하여 다시 태어남, 그리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래 무속종교가 신을 이용해서 축복을 받자는 기복적인 종교인데 비하여 기독교 신앙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내가 새로워져서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을 다시 태어 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입니다.
- 주님을 만나야합니다.
-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님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이러한 표적과 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른 측면으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를 아는 것은 예수님이 단지 누구인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거듭남의 삶으로 살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거듭난 삶은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다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예수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신앙의 성숙이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표적과 기사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한 차원 나가서 우리는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말씀을 의미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 기도의 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서 생활해야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찬송가를 열심히 부릅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납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시간 예배를 드리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거듭난 생활을 하지않습니다. 여전히 싸우고 다투고, 혈기내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아무런 변화된 삶의 흔적이 없습니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거듭남은 엄마 뱃속에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육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두번 태어나는 것인데 바로 육적으로 한번,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한번 태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은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는 것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지만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일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자꾸해야합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의 찬양은
-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1)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세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맘에 강같이 흐르고
- 찬송가 438장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톨스토이는 고백론에서 “나는 예수님을 만난 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소원하던 것을 이제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과거에 소원하지 않던 것을 원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나쁘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좋게 보이고,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나쁘게 보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육은 1837년에 태어났지만 영으로 태어난 나이는 1856년입니다. 언제 내가 죽을 때에 1837년에 태어난 무디는 죽었지만 1856년에 거듭난 무디는 지금 하늘나라에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라고 적어주십시요.
인간의 수명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갑니다.
- 믿음의 선조들은 항상 거듭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시간이고,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가시덤불 사이에 불꽃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베드로는 바닷가에서 주님을 만나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 바람이 임의로 불게하소서
-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그러나 성공 후에 계속적인 성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는 바로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나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두 성령이 임의로 개인에 불고, 교회에 불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윗트니스 리(Witness Lee)는 니고데모의 이때 나이가 60-70세쯤 되는 노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나이는 이제 30세 약간 넘은 젊은 예수님입니다. 그를 선생님,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말과 그리고 삶 속에서 정말로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는 분에게 찾아와서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1) 마음을 바꿔야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 “인간의 두뇌는 종이와 같아서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모꼴도 될 수 있고 네모꼴도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생각과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겸손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4장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인간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고 인격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삶이 변화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0절에 가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변호하는 사람이 되었고, 19장 39절에 보면 예수님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져와서 장례를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몰약이나 침향은 값비싼 향료인데 구약시대에는 왕의 장례식에나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바쳐서 예수님의 장례를 가까이에서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니고데모가 처음에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변화된 모습으로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늘 겸손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려야합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하니 185,000명이 하루 아침에 죽었습니다. 앗수르의 멸망입니다. 그리고 병들었을 때에 기도하니 15년을 연장 받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하나님의 응답으로 대국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옆의 나라 바벨론이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축하해주었습니다. 사실 히스기야는 바로 거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환영하고 자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벨론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허영심이 가득하여 모든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궁궐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언 14:15~18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자신이 치료받은 것, 그리고 앗수르 군대를 물리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 자랑만 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와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결론입니다. 근대신학자 대부인 쉴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하는 통로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이고, 둘째는 성경이고, 셋째는 예배의식중에서 성찬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