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도 없으신 하나님과 변덕스러운 나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1월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금은 잘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이빨이 비쌉니다. 다이야몬드도 잘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반지로 다야몬드를 합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까요? 세상의 시대 풍조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철학과 사상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도퇴된다고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화하지 말아야합니다. 진리가 변화하면 그것이 진리이겠습니까? 진정한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옷장에 있는 옷도 변하고 냉장고 있는 음식도 변하여 음식을 빨리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특별히 세상의 인심이 참으로 많이 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빠어디가) 왜요 나이가 들면 인간의 모습이 추하고 더려워지는 변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의 모습을 순수한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조변석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어제나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분의 지혜나 그분의 지식은 더해지거나 감소되거나 축소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현제이요 언제나 동일 하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께서는 I was고 하지 않고 I am that I am 나는 현제의 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도 나는 무엇 무엇이라고 하였습니다. ( 포도나무, 목자 라고 하였습니다. )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말3:6)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시작과 끝이 같으신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마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에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리고 변덕스러운 나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변함없이 추수감사를 주시고 그리고 변함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 저는 짧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변함이 많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결심하고 몇 번이고 그 결심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일을 잘하다가도 목회를 잘하다가가도,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변덕을 부리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왔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애굽에 내려가서 창피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매번 알면서도 변덕스럽게 살아가고 그리고 하나님께 채망과 훈계를 받는 모습을 통하여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변덕스러움을 어떻게하면 고칠가하는 것입니다.
1.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에게 본능이 있고 그리고 이성이 있기 때문에 많이 배우고 학교에서 가빵끈이 긴 사람들이 본능과 이성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고 부흥회를 통하여 성령을 체험하였지만 여전히 옛모습을 돌아가 죄인으로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능은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본능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는 본능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측은히 여겨 도와주는 본능말입니다. 고속도로에 화제가 났는데 그것을 지나치니 않고 보호주는 사려깊은 운전자들있습니다. 전철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고 자신은 살신성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변덕, 즉 부정적인 본능입니다. 게으름, 비교의식, 탐욕, 음난등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당신없이 못산다고 하였지만 결혼 후에는 당신 때문에 못산다는 변질들입니다.
변질, 변덕은 무엇 때문에 생길까요? 바로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변질을 막는 것입니다. 변덕을 막는 힘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변덕스럽고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로말미암아 지금까지 중동과 이스라엘 싸우고 있습니다. 역대상 1장에 보면 이스마엘 후손중에 느바욧이 있습니다. (29절) 느바욧은 아라비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야는 어디입니까? 사우디 아라비야입니다. 메카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연단을 통하여 다시 이삭을 낳고 이삭을 드리는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연단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약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 6:15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오래 참음으로 땅과 자손의 약속을 받았다.
성경에서는 유난히도 인내와 오래참음이 많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오래 참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대학을 나와서 필리핀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때에 영어도 모르고 그리고 신학도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말로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순복음교회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른다고 포기할 수 있었지만 잘 참은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이 신앙의 생활을 깨는 가장 근본적인 적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가다보면 죄악에 빠져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길을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이성인 것입니다.
저 자신도 그러합니다. 기도의 변덕스러움이 있습니다. 분명히 기도해야하는 것을 기도를 많이 하면 능력이 나타는 것을 압니다. 많은 목회 활동 생활 가운데 일을 그르쳤던 경우을 보면 내가 변덕을 부린 때였습니다. 변덕스럽고 잘 인내하지 못한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내 잘못인 줄 알면서 남을 탓을 하고 주변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인생의 삶속에서 저희 친구들과 저의 지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한 인생의 철길 위에서 끝에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 모두가 변덕을 불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 노아처럼 일편 단심으로 방주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최종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변덕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모세….. 위대한 목사님들의 마지막 모습들입니다)
저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열왕기상하를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성경의 진리는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가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보다는 남유다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여호사밧, 히스기야, 웃시야, 요시야 왕들입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 보다 한참 뒤에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북이스라엘은 왕들이 단명하고 그리고 일찍 앗수르에 망하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가 바로 히스기야 왕 때였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히스기야의 기도로 18만 5천명의 군대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그 복을 계속 누리지 못하고 실수한다는 것입니다. 잘 되었을 때에 죄를 짖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한 가운데도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왕을 보십시오. 히스기야는 바벨론사람들에게 자신의 내탕고를 자랑하다가 그 나라를 잃게 되는 예언을 받게 됩니다. 여호사밧도 하나님께 찬양함으로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동맹을 맺고 이방 우상들을 용납했습니다. 요시야도 하나님께 정말 훌륭한 왕이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으면 모든 우상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 묻지 않고 므깃도에서 전투에 나갔다가 죽게 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잘 되었을 때에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한심하게 보이든 말든 간에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은 다윗처럼 예배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그 마음에 합한자라고 하였습니다. 소위 좀 똑똑하고 스스로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더 많은 잔디가 있는가? 늘 옮겨다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성원순복음교회의 잔디가 제일 좋습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제일 좋은 하나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는 잔디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쪽으로 바라보면 잔디가 파랗게 보이고 이쪽을 바라보면 금잔디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곳과 저곳으로 옴겨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가보면 별로 잔디가 없습니다. 늘 상 옴겨 다니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우물을 파니 그 우물에서 생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을 이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변덕을 부리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기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케이별 케이스다. 다 틀린 것도 아니고 다 맞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역하시지만 사탄도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
작시한 폴라드 AA Pollard라는 자매는 젊어서부터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를 꿈꾸고 기도해 왔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비로서 아프리카로 가는 문이 열리며 바로 그 시점에 선교사로 헌신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서서라는 아름다운 찬송시를 만들었습니다.
새찬송가 425장 (1)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2)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밭앞에 엎드리니 나의 …
2 이러한 변덕이 생길 때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갈리디아 5장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대한민국 사람들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조급합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입니다. 인내 할 줄 모르고 기다릴 줄 모른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은 보면 사랑의 15가지 특성이 나옵니다. 신기하게도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즉 참고 참고 그것이 힘들면 견디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자신이 참을 수 있는 선을 그어놓고 그 선까지 만 참는 것입니다. 그 선을 넘으면 화를 내고 뛰처나가고 그리고 견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래 참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은 무수히 70번씩 7번이라도 참으로 하시는 말씀은 무한히 견디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개역한글] 마태복음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현대인은, 교통신호가 바뀌고 나서 0.5초 이내에 차가 출발하지 않으면 뒤차의 운전사가 짜증을 냅니다. 컴퓨터 앞에서 화면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3초 이상이 걸리면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각종 매표소에서 큰돈을 내고 잔돈을 거슬러 받는 시간이 30초를 넘기게 되면 사람들은 짜증을 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3분을 넘기게 되면 역시 짜증을 냅니다.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면 기다리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낚시꾼이 한 곳에서 3시간 앉아 있었으나 한 마리도 못 낚게 되면 그는 십중팔구 자리를 바꾸게 됩니다. 현대인은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에는 그 자리에 아예 드러누워 버리고 맙니다. ‘오래 참지’못하는 것입니다.
[개역한글]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여러분 번덕스러운 마음을 잡아 이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줄 아십니까? 인생은 1년 2년 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살아가는데 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나의 변덕스러움이 평생을 살아갑니다. 도박 술 마약, 소매치기, 도적질, 간음, 제가 김승인 목사님교회를 방문했는데 국가 기관에서 옆집에 강간범이 산다고 우편물이 왔다고 하여 교회 게시판에 붙어 놓았더라고요. 나이 67입니다. 나이가 그렇게 먹어도 안됩니다. 혀를 물고 자신의 손가락을 끝어도 않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합니다.
3. 변덕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에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갈리디아 5장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십자가 앞에서 내려 놓아야합니다.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와야합니다. 환경을 주님의 환경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집을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그렇게 만들어야합니다. 새벽마다 그것을 이기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늘 그러한 마음이 들 때에 그것을 이기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늘 좋은 역할만 하려고합니다. 나는 언제나 다윗이요, 이스라엘 조속이요. 아브라함의 씨요, 베드로와 사도 바울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는 사울왕 처럼 가룟유다 처럼 아합왕 처럼, 아나니야와 삽비라처럼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조명해 보아야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변덕스러운 마음에 굴복한 사람들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며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아주소서 (구호제창)
예수님이 십자가의 경주에서 먼저 이겼습니다. 그 이긴 주님앞에서 우리의 모든 자아를 내려놓아야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맞겨야합니다. 성경에서는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나를 유혹하여도 환경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때에 새벽에 주님께 나오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니다. 주님이 참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신앙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참고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3:6)
내가 환경에 맞추워서 세상의 풍조와 유행에 맞추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맞추워서 살아야합니다. 변함없는 주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오래참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견디느나라로 끝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