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5절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1월 첫주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누룩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식품입니다. 우리 식생활의 큰 발명품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누룩이 없이는 빵도 만들 수 없습니다. 누룩이 없이는 술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아닌 주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는 그 필요한 것이 오히려 주의의 대상이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중요한 것이 주안에서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세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크나큰 가치 기준의 차이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 돈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멀게하는 요소가 되기도합니다.
즉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이 주를 만난 사람에게 때론 매우 쓸모없는 것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기에 그 세상에 어울리는 많은 필요한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전히 만나면 그 가치 기준이 바뀌어 이전에 꼭 필요한 것이 더 이상 내게 가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삭게오가 돈을 위하여 살고 돈의 매력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남으로 그는 그 돈을 선하게 사용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지금 이세대에도 그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암 보덴 씨는 1904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큰 낙농장의 법적 상속인으로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일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큰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다「나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성경 뒷표지에 「지체할 수 없음」이라고 썼습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보수가 보장된 일자리를 거절하고 성경 뒷장에 이번에는「후퇴 없음」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러나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 여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지체함이 없이」,「후회함이 없이」그리스도께 순종할 것인가?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윌리엄 보덴씨 누룩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누룩의 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삶을 가꾸는 것이 주님을 따른 것이요. 주님의 일을 다 못하여도 그것이 후회없는 생활인 것입니다.
폐암 4기라는 죽음 앞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김영술 변호사님. 이분은 한 때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변호사로 꿈을 키워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는데, 2000년도 총선에 도전하여 그가 정치에 입문하였지만 그 다음 계속 낙선을 합니다. 교회를 다니긴 다녔어요. 아들이 자폐 증세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다녔는데 정말 기쁨으로 주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도에 몸이 너무 상태가 안 좋고 기침을 심하게 하고 그래서 몸을 돌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병원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오셨습니까? 선생님은 이미 폐암 4기, 폐암 말기인데 온 폐에 암이 덮여 수술할 수 없고 오래 사셔야 6개월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그냥 집에 돌아가셔서 잡수시고 싶은 거 마음대로 잡수시고 몸조리 잘 하시고 그렇게 남은 여생 사십시오. 의사로서 해줄 일이 없습니다.” 청천벽력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정신없이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막 힘쓰고 애쓰고 달려왔는데, 하루 아침에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선한 일 했던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표를 얻으려고 했던 잘못된 것임을 회개합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주님 다시 한 번 나에게 기회를 주시면 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런데요 이분이 150번 항암주사를 맞았어요. 항암주사가 보통 고통스럽지가 않습니다. 150번을 맞으면서 믿음으로 견뎌내고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라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 앞에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던 그가 8년 넘게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서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8년이 넘게 지금 연장해주셨어요.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지만 그는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누룩이 제거되고 있는 것이지요.
2. 누룩의 기능
누룩의 기능 중 하나는 실제의 모습을 없애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다. 술을 빚는 경우 이 누룩의 효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그 술로 인하여 병들고 그리고 그 술로 말미암아 많은 어려움을 격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룩의 두 번째 기능은 빵을 불풀게 하는 것입니다. 빵을 아름답게 만들고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누룩의 역할입니다. 즉 허영과 과장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우리나라의 설과 같은 명절입니다. 가장 큰 명절이지요. 유대인들은 유월절의 유래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즉 애급에서 구출한 날입니다. 10가지 재양을 통하여 (피, 개구리, 이, 파리, 동물 악질, 사람에게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때에 가장 강력한 것은 처음 것에 대한 죽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그 재앙이 넘어갔다. 즉 페스오버(passover), 제앙이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 때에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무교병, 누룩이 없는 빵입니다. 쓴 나물입니다. 왜 누룩이 없는 빵입니까? 바로 부풀리지 않고 겸손하고 있는 그대로 자랑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누룩없는 빵입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한 분이 그렇한 어려움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늘 겸손하게 목회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항)
바로 이러한 점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자연히 없어지는 혹 없어져야하는 부분을 주의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주님을 만나는 신앙생활과 나의 세상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바뀌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속에 세상이 들어와야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속으로 세상에 동화되고 혼합주의가 되어 예수님 믿는 신앙생활이 중간시대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알고 하나님을 알지만 야곱처럼 남을 속이고 이기주의로 살고, 나 자신의 행복과 물질의 축복만을 간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을 속이고 그리고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살았습니다.
저나 여러분들도 마찮가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은 누룩을 사랑했습니다. 나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성령으로 변화되고 예뻐보이고, 잘 살아보이고, 자신을 자랑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더 큰게 나타나려고하는 모습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너무 포장하여 나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못하고 살았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세상과 맞추며 유행에 맞추며 살아가다보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삶의 주체를 되어 주객이 전도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빽이 아름답워보이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매력을 느끼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차와 그리고 물질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 삶의 영과 혼과 육체는 간곳없이 세상의 나만 보이는 부풀려지고 변화된 누룩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누룩을 벗어던지는 그리스도인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누룩을 벗어 던지며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솔찍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질이 없는 나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본질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세인과 세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 이하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 있어야 나의 성찰있고 그리고 나의 고침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발견하지 않고 어떻게 치료하고 어떻게 회복될 수 있습니까?
세상을 누룩처럼 크게, 아름답게, 멋있게, 부요하게만 우리의 뇌 속에있기 때문에 강박증과 우울증과 허무함으로 만들기 때문에 롯도의 대박, 성적인 분륜, 성법죄, 마약, 수면제, 사이코페스등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도 전혀 죄의식이 없는 마음들이 바로 그러한 마음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나 목회자 저 자신이나 그리고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모든 일들이 꾸미거나 과장되게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있으면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그대로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위대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문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언급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있는 그대로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과장된 모습을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고 돈으로 계산하니 이백데나리온(200)입니다. 물론 마리야가 드린 옥합 삼백데나리온(300) 보다는 싸기는 하지만 물질의 누룩으로 가득찬 제자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건강하게, 더 부하게, 더 화려하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볼까봐 얼마나 안 그런척 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큰면 얼마나 큽니까? 작은면 얼마나 작습니까? 좀 바보스러워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4. 예배에 누룩을 제거합시다.
레위기 1장 3절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구약성경에 보면 5대 제사가 있습니다. 그중에 번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로 태워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가 바로 제사입니다. 예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각을 뜨는 일입니다. 각을 뜨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가죽을 벗기는 것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내 몸과 마음에 붙어 있는 학력, 성품, 출신, 학벌, 외모, 직위, 성격의 가죽을 벗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화장을 하고 왔습니까? 여성들은 화장이 변하여 분장, 변장, 환장이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실제의 모습을 위장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번제에 두 번째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태우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태우는 것입니다. 죄의 모습을 태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장까지는 지울 수 있지만 우리의 옛모습, 옛죄의 습성을 완전히 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초적인 본능을 태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배는 많이 들이지만 아직도 그것을 태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부분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있는데도 비리가 있고 더러움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이면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굶주린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태우는 것을 성령으로 해야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무척이나 누룩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상은 어전히 죄악된 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할 세상입니다.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나의 성품을 내려놓아야합니다. 나의 삶을 내려놓아야합니다. 나의 끝덕지 붙들고 있는 죄성을 내려놓아야합니다. 내 힘으로 살을 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나의 죄악을 나의 죄를 스스로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이 내 성품을 다스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무엇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바다와 육지에 있는 모든 생물이 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도 지으시고 우리의 생각도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가죽도 벗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 등록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