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올해를 시작하며

2013-01-23 14:49:47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월 6일

차동엽책 참고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슈마허가 독일 남부 코버그에서 30km 떨어진 게휼츠에서 새 애완견을 데리고 공항으로 가는 길이였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가자 그는 택시 기사의 허락을 받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F1 챔피언의 솜씨가 발휘되는 순간이였습니다. 택시 기사 일마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슈마허의 운전은 그야 말로 대단했습니다. 코너에서도 전속력을 내더라구요 저는 뒤자리에 앉아만 있었죠 슈마허는 자신이 운전을 하고도 택시 요금과 그 배에 가까운 팁을 얹어주었습니다. 수마허의 해프닝이 우리에게 번쩍이는 깨달음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느려터지고 신통치 않은 우리의 인생도로에서 예수님께서 운전대를 맡겨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정확하고 가장 안전하게 목적지로 이끄시는 분 그분이야 말로 우리의 주님입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시간에 히브리서 12장 2절의 믿음의 창시자요 예수님을 바라보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 한 방편으로 영성일기를 쓰자고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영성일기를 어떻게 쓰는것인데요.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쓰시면 됩니다. 여러분 한번에 여러분들을 실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성도들이 실천하기까지는 약 3달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여러분 계속적으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영성일기를 쓰고 있는지?

미국 동부에 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기차에 갓난 아이를 안은 한 승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혹여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날 칠까봐 잔뜩 신경을 쓰는 중이였습니다. 맞은편 한 시간가 그 모습을 보고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얼마 후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 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군요 어서 내리세요.”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갓난 아이와 여인은 기차 밖으로 서둘려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 들어서자 신사는 머리를 깜싸 안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여인이 내려야 할 곳이 바로 이 역이였습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간이역에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내릴 것을 말했던 것입니다. 이튿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 아기를 감싸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비극입니까? 이런 일은 우리 삶 가운데 그대로 일어납니다. 잘못된 진리를 가르처 줌으로서 엉뚱한데 내려서 결과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차를 고치면서 그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대순진리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절에 간다고하여 건전한 절이라고 하여 내비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2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몇 달전에 알게 되었는데 대순진리회를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박도 해보고 이혼도 하지고 하였지만 집을 나가고 대순진리회관에서 합숙을하고 있다고 하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자녀 아들 2이 있는데 하나는 경찰공무원이고 한명은 삼성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잘키웠다는 것입니다. 빨리 도와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성도들에게 매년 첫 주일예배 시간에는 우리성도들이 일년간 아니 평생을 살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본질적인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올해는 기도하는 생활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당나라 때 두드러진 개성으로 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백거이가 항주 지사로 있을 때다. 한번은 가가 항주에 덕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 도림(道林)이라 하는 고승을 찾았다. 백거이가 도림에게 물었다. “도(道)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악한 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행하지 않는 것이오. 선한 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행하는 것이오.’ 너무나 평범한 대답을 들은 백거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응대했다. “거런 거야 세 살 먹은 아이들도 아는 소리가 아니겠소?” 그 말을 듣고 도림은 엄숙하게 말했다. “그러하오. 세 살배기 아이들도 아는 것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오.” 그러자 백거이는 진심으로 절하여 예룰 갖추고 도림을 스승으로 셤겼다. 새삼 기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예화 속의 백거이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거 다 아는 얘기 아냐?” 다 아는 얘기일지언정 실제로 해 봐야 기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해 봐야 깨닫는다. 기도의 여러 유형들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성 아우구스티노)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교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등 많은 설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공감하는 것은 오리게네스가 내린 정의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여기서 ‘현존’,’대화’,’바라봄’이 바로 기도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원복래 안수집사님 집에서 설교한 예화를 다시한번 우리성도들이 못들은 성도들이 있어서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하는 것은 마치 부친계를 만들고 난뒤에 파전을 뒤집는 뒤 집게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어려움에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뒤집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려움이 닥첬습니다. 모르드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만의 모함을 받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에스더가 죽으면 죽이라고 결심하고 3일 금식기도후에 아하수에로 왕앞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밤에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혔는데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아마, 대궐 문]을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고 하였다. 왕이 말했다.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뒤집게가 왕의 등허리를 들석이게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밤에 서기를 읽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게에게 상을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모르드개는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뒤집게가 반전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하는 사람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누가 뜰에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르렀다. 하만은 악을 행하는 데 열심이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악을 이루려고 왔다. 왕을 섬기는 신하들이 고하였다.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말했다. “들어오게 하라.” 하만이 들어오자, 왕이 물었다.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은 심중에 말하였다.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그는 왕께 아뢰었다.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이에 왕은 하만에게 말했다.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시편 23:5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을 이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교만을 꺾으시고 그의 뜻을 이루신다.

왕은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 곧 두 번째 잔치에 나아갔다.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왕후 에스더는 대답하였다.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2)” 에스더는 유대 민족의 말살이 왕국에 세금이나 노동력의 큰 손실일 것을 암시한 것 같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였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 에스더는 말하였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에스더는 왕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였다. 왕은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갔다. 하만은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였다. 왜냐하면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왕이 말하였다.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강간하다’는 원어(카바쉬)는 ‘폭행하다’(force)(BDB, KJV, NASB, ≑NIV), ‘강간하다’(KB)는 뜻이다.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하만의 얼굴을 쌌다.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을 위해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즉 약 25미터]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은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고 말하였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쳤다

2. 올해는 감사하는 생활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요즘은 철이 없는 계절입니다. 한 겨울에도 수박이 나오고 포도도 먹고 우리나라에서나지 않는 망고 망고스틴도 먹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철없이 살아갑니다.

사람이 철이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철이들어 간다는 것은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장하고 고난을 격고 난뒤에 군대를 갔다온 뒤에 철이들어 인생을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에도 철이 드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생활은 아직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홍해의 기적이 얼리고 하늘에서 만나와 매추라기가 떨어져도 늘 원망과 불평으로 한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아름답고 좋은 음식을 주어도 무엇이 때문에 맛이 없고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불평불만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없어도 감사하고 있어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성도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성도들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성숙한 성도는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성도입니다. 제가 책을 한권을 보았는데 그 책 내용에 손양원목사님이 일제치하에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하지않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6.25 사변때에 자신의 두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자신의 양아들로 삶았습니다. 그때에 자신의 딸이 반대가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들을 도저히 오빠라고 부를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딸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원수를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말씀을 준행하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하며 딸을 설득하였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 즉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무시기전에 하루에서 감사 조건 3가지만 생각하고 주무시면 편안한 잠자리에 들것입니다.

3. 올해는 성경을 읽는 생활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영적인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매일 3끼식 밥을 먹으면 여러분들은 하루에 3절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매마른 종교인의 삶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상한 방법으로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마시고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하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올해는 십일조 생활입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말 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저는 일년에 딱한번 십일조 설교를 합니다. 새가족이 오든지 오지 않는지 그러나 평상시에는 십일조 설교를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초에 우리가 하나님앞에 올바라로 살아살며 어떻게 살아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것이 주의 종의 역할입니다.

아브라함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뒤에 멜기세댁에게 나갈때에 그의 십일조를 가지고 갔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물질을 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자신의 판 땅을 사도들의 발앞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물질과 밀접한 관계가있습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오히려 드리는 사람보다는 받아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더 하나님앞에서 책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 물질을 잘 못 관리한 게하시나, 가룟유다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큰 어려움을 당한 것이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신앙생활하시는분들 중에 이러한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헌금을 잘못쓰고 있기 때문이 어려운 개척교회나 농어촌교회에 드리려는 성도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예수님 당시에 성전세로 인하여 잘못되었지만 그 잘못된 유대교의 성전에 세금을 낸 것을 보게 됩니다.

1) 헌물과 십일조는 성찬을 때는 곳에 드려야합니다.

2) 내게 주시는 모든 부분들은 하나님께로 부터왔으니 하나님께 그 일부를 드리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3)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나를 가르치는 곳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4) 자신을 축복해주고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곳에 예물을 드려야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리했습니다.

민 6: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에서는 사냥꾼이고 야곱은 농사꾼 가정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에서는 아버지 중심으로 살고, 야곱은 어머니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모든 축복권은 하나님과 아버지를 통하여 온다는 것을 알고 장자권에서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권을 받기 위하여 팥죽을 써서 형의 장자권을 넘겨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잘 맡았던 것은 성경에서 에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 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과도 연결된다. 교회에서 주의 종들이 하는 말씀을 정작 대소롭지 않게 여기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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