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13절 시편 37편 7절 기다림
기다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히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히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주간입니다. 대통령선거와 서울시 교육감선거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합니다. 학교 경력 그리고 출신등 프러나 성경의 지도자는 성경의 기준으로 지도자를 뽑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원순복음교회는 목사님만 지도자가 아닙니다. 우리 구역장님들만 지도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든 어린 선우부터 시작하여 지동현권사님까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의 지도자, 한 가정의 지도자, 한 구역의 지도자, 한 역사속의 지도자가 어떤 덕목이 있어야하는가요? 그에 해당된 덕목을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성령의 열매중에서 인내와 오래참음의 열매인 기다림에 대하여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모에 대하여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가끔 자신이 어려서 읽은 책 이야기를 할 때에 왜 저는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책중에 겨울방학 중에 경희 언니의 집에서 대망이라는 소설책을 빌려서 읽은 기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우리 시대에 많은 분들이 대망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한번 이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하여 홍대 앞 을지문고에 가서 대망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총 36권의 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중고등학생들도 꼭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떡을 치고, 히데요시가 떡을 먹음직스럽게 빚었고, 도구가와 이에아스가 그 떡을 먹었다고 합니다. 천하 통일의 과정을 비유한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예화를 잘알것입니다.
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려라 (오다 노부나가)
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라 (히데요시)
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늘씬하게 큰 키에 잘생긴 오다 노부나가는 칼날 같은 성품을 지녔습니다. 그는 통일의 꿈을 품고 일어나서 그 대망을 이루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난세를 이길 수 있는 것을 힘으로 보았습니다. 노부나가는 어떤 생각을 냉정하게 계산하고 되풀이하여 생각한고 단 뒤에 막상 일어나면 여지 없이 상대를 때려 높히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면을 지닌 노부나가입니다. 그 때문에 결국 마음에 상처를 입은 측근 아케치 미쓰히데에 의해 49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 사람의 특징중에 하나는 신무기(조총)를 받아들여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맞으면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등용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추운 겨울날 자신의 신발을 따뜻하게 하므로 그 사람을 등용하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원숭이처럼 생김)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그 대업을 이어받아 무력으로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평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작은 몸집에 쪼글조끌하게 못생긴 원숭이 얼굴을 한 히데요시는 그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천지난만했습니다. 망상으로 그치거나 안개나 구름처럼 사라져버릴 일도 히데요시는 끈덕지게 그 착상을 길게 다듬어 기어이 살려내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사람과 대결하여 진 기억이 없을 만큼 그는 강하면서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노하면도 웃고, 울면 위로해서 반드시 상대를 마음먹은 대로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하였고 이순신으로 패배를 당하므로 뒤처리로 고초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는 일본에 많은 선교사와 천주교의 믿지 못하게 핍박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없는 자식복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하였습니다.
도쿠카와 아에야스 (대망)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오늘 설교제목이기도합니다. 기다림입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그의 할아버지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로 미카와에서 상당한 세력가였습니다. 아버지는 히로카다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24살의 젊은 나이에 살해당했습니다. 이에야스는 겨우 8살이였습니다.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도의 세력에 놀려 미카와의 마쓰다이라 가문 영지는 요시모도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이에야스는 볼로가 되어 스루가로 유배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시작은 볼모의 인고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셋 선가는 대장훈련을 시꼈습니다. “너는 대장이 되고 싶으냐? 부하가 되고 싶으나? 부하는 마음이 편하다 목숨도 입도 주인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나 대장은 그렇수 없다. 대장은 아지랑이를 먹어도 통통하게 살찌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얼굴은 싱글벌글 웃고 있어야합니다.
오케 골자기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하자 그는 드디어 미카와의 오카지키 성으로 돌아와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 미카와 지방을 통일한 다음 오다노부나가와 유대를 맺고 협력하며 다케다 신겐 호조 우지야스와 싸워 멸망시키으로써 노부나가의 통일위업을 도왔습니다.
혼노사의 정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은 다음 문벌이나 실력으로 보아 당연히 이에야스가 뒤를 이어야하느는데 민첩한 히데요시에게 선수를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착실히 자신의 기반을 굳였습니다. 천하통일을 꿈을 꾸면서 히데요시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 자연스럽게 그 대업을 이어받아 막부를 설치하여 정치조직을 개선하고 아들 히데타다에게 쇼군 직책을 물려준다음 오고쇼로서 도쿠가와 가문의 정책을 총감독하며 300년의 태평세월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얼마나 오랫참았는가 오다 노부나가 자신에게 충성하는지 시험할 때에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죽임으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다하며 오래참았다.
저는 왜 이야기를 오랫동안 여러분들에게 할까요? 일본의 대표적인 3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후대에는 그리고 그의 사람을 통하여 자손들에게 300년동안에 통일왕국을 물려준 인물이 있다면 도구가와 이에아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울때까지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하면서 우리의 사람은 무엇일까? 바로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모든 면에서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리고 나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라며 살아온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현대는 얼마나 모든 것을 빨리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과 세상은 상반된 논리로 살아갑니다.
저는 기다림에 살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구약의 아브라함입니다.
히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히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은 시각적인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중동사람 즉 회교(무스림) 사람들은 자신들이 적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첫째 아니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조광지처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100세에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25년동안의 기다림을 완성하셨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이 인생이며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언제나 기다림의 종착역에서 주시는 복입니다. 사람이 만든는 복은 허물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시는 복은 영원하고 그리고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공부를 통하여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자들은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식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지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심으로 그 삶속에서 적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이끌어가게 하십니다.
솔로몬이 파악한 사명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잘 다스리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사람이 공부를 통항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젋고 경험이 없는 솔로몬은 그것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판단했습니다. 그가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 똑똑한 제자였던 빌립의 대답이다.
어느 사이에 계산완료 되었다. 불행히도 그의 계산은 ‘안 되는 것을 알아 맞춘 계산법’이었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 진행형의 논리’이다. 왜 이런 논리가 나오게 되었을까? 불가능하다는 그의 전제는 문제해결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그의 실행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실행해 보아야 안되니 실행할 필요가 없어.’ 그것은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패배주의는 성공할 수 없고 자기의 뜻도 늘 배반한다. 이 패배주의는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두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실행하지 않는다.
인생의 세상에는 빨리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사람들이 그것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빨리 컴퓨터가 움직여야하고, 그리고 핸드폰도 빨리 움직여야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짧게 드려야 은혜로운 교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급한지 소변을 보고도 소변을 털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옷에서 냄세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성질을 죽이고 살아야합니다. 어떤 사람들 자판기에 커피가 내려오는 것이 너무 느려 그것을 뽑다가 손을 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급한 분이 아닙니다. 늘 여유있는 분입니다. 노아는 120년동안에 기다리며 방주를 짖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게 25년의 세월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고 난뒤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금방 오신다고 하였는데 2000년을 기다렸지만 아직도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 선우가 그러는데 2012년 12월달에 종말이 온다고 기도제목에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도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를 성전을 짖는데 오래 오래 기다리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신약성경의 기다림 (안나) 성탄의 기다림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사람들의 복의 기준을 물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복도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평강이라고 합니다. 평안하고 건강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더 큰 행복들은 앞으로 이루워지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상태를 더 아름다운 행복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성탄절날 이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제 양말에다가 선물을 주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당일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밤에 명화극장 중에서 크리스마스에 해당된 무용같은 크리스마스 영화를 가족과 한 방에서 보는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지금 가장 귀한 순간, 아닌 밤마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순간이 바로 우리교회 입당한는 날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잠이 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장차 커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고 그리고 요셉처럼 각 나라에 흩어져 지도자가 되는 모습들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 꿈을 꾸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다림의 순간이 행복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어는 간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유복자 아들을 키우기 위하여 생선장사를 하고 마침내 아들을 의사가 되게 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들이 의사가 되었는데 아들이 장가를 가는 순간 자신에게 멀어지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는지 모른다는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성공한 의사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을 최고의 소망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그 낙을 며느리가 빼앗아가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성경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구약성경의 주제입니다. 약속의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의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가 오신 것이 신약입니다. 신약성경의 기다림이 바로 요한계시록인데 그 주님을 오실 것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4살에 결혼하여 7년을 남편과 살다가 과부된지 84년입니다. 그러면 몇 살입니까? 105살인 안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꼭 메시야 주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무려 84년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매일 성전에 금식하고 그리고 기도로서 주님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들도 이 안나 과부처럼 성전에 주님오실 날까지 기다리며 살아야하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헤롯처럼 유명한 사람들을 쓰지 않습니다. 무명의 마리야 그리고 무명의 안나, 무명의 목동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의 메시야 됨을 보이셨습니다.
미천한 사람이라도 꿈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면 그 꿈과 소망을 하나님이 들어주시는것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아름다운 꿈을 이루워주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교회력으로 말하면 대림절입니다. 우리 말로 말하면 큰 기다림입니다. 위대한 왕이신 예수님께 오실 것을 2000년전에 기다리고 지금은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3. 현대의 기다림
–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노예가 없는 세상을 기다렸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인생의 굴곡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때 마다 그는 시편 37편 7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워싱턴 DC에 가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성경책이 펴져있는데 시편 37편 7절의 말씀이 펴져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리고 결단하여 행동할 때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 아브라함 링컨은 이 본문의 말씀을 손가락을 집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사사기에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입니다. 기드온은 겸손했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왕이 되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리쳤으나 시간이 갈수록 교만과 자만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여인에게 70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기드온의 첩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비멜렉이니다. 그는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바위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그를 가시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불행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망대에서 성를 공격하다가 망대에서 던지 맺돌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오차도 없이 그 머리를 깨첬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바위에서 형제를 죽였으므로 돌로 그 머리가 부셔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 은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사건을 사람과 사람들의 사이에 악한 영을 감싸게 되어 그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행동을 우리가 하면 선한 성령의 영이 돕지만 악한 행동을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라 악한 악한 영이 우리를 괴롭히 안 좋은 방향으로 그 행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롱펠로는 하나님의 맺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완전히 빈틉없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끝으로 설교의 마지막 부분은 항상 주님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오랫동안 기다려야합니까? 이 2012년의 종말을 강조한는 계절에 우리는 누구를 기다려야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의 삶에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늘 처음처럼’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매일 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대림절 기간에 ‘늘 마지막인 것처럼’사는 모습 또한 지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