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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아름다운 이야기

2012-09-10 09:00:54


 

사도행전 26장 13절 사도바울의 이야기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행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 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저는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 진흥리가 제 외가입니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을 다녔는데 강남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강남에 있어서 강남국민학교가 아니라 서울 상도동에 있어도 강남국민학교입니다.

시골에 있을 때에는 우리 외할머니와 외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제미있고 가슴뭉끌한 이야기였습니다. 외 할머니는 자신이 대동아 전쟁 때에 즉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싸우던 시기의 어려움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할머니의 이야기 생각납니다. 우리 어머니의 옷을 만들어주셨는데 옷 속에다 일본 돈을 만들어주셔서 대리고 다녔고 그리고 한번은 방공호 속에서 있는데 간삿기가 나타서 폭탄이 떠저서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때에는 늘 전쟁속으로 나 자신이 있게 된 것을 기억 생각납니다. 외 할아버지가 작은 목선을 사가지고 조선 사람들을 태우고 목포에 도착한 이야기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에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여관을 했는데 불이 타 김제로 오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는 미국들 상대로 설탕 우유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나오셔서 씨름이 장사셔서 소도 탄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있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는데 잠이 깨고 나면 머리 위에 고무가 놓여있어 그것 먹고 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소변보러 일어나면 우리 동생 정기가 고구마를 먹고 똥을 잔득산 기억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우리 유년주일학교 전도사님이 수요일마다 예배가 있었는데 설교중간에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희들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 아 재미 있어라 선생님의 말씀 아 어쩌면 어쩌며 그렇게도 잘 하시나 고맙습니다 이 말씀 잘 듣고 잊지 않았다가 이 다음에 우리도 좋은 사람되겠어요 고맙습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처와 함께 평강이 컴퓨터에 깔아놓은 백설공주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각색해서 잘 만들었는지 참으로 신기하고 제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어린 시절 미운 오리새끼, 그리고 백설공주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성년이 되어서 그 내용을 보내 옛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요즘은 이야기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자를 보내도 어른들은 긴 문자인데 아이들은 흐흐… 이모티콘으로 문제를 보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자기 개발서나 그리고 건강에 해당된 책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에 대한 주식과 돈버는 방법에 대한 경제서적들이 책에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시집을 사서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류시화 여우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 류시화님의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에서 –

요즘의 뉴스를 들으면 섬뜩하고 무섭니다. 영화도 그러한 영화를 합니다. 모든 삶속에서 정서가 없고 이야기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내용이나 그리고 신문에 내용들을 살펴보면 긴 기사의 내용은 읽지 않습니다. 오직 읽은 것은 해드라인 뉴스만 읽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책을 읽고 싶은데 잘 글이 빨리 읽지 못하여 저희 작은아버지 홍성관목사님에게 가서 책을 읽어 달라고 간적이 있습니다. 그 때 책 내용이 홍길동전인 것 같습니다. 분량이 많고 길어서 읽어주다 만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유년 주일학교를 수요도 간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기도 하였지만 우리 전도사님이 그곳에서 가끔 옛날 이야기 동화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동화를 듣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집에 와서 제 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준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동화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야한 동영생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서설이 길게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구약과 신약은 모두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 이삭의 이야기, 야곱의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의 이야기, 다니엘의 이야기, 예수님이야기로 가득차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도행전서 3번하고 있습니다. 사도 행전에 얼마나 많이 쓸것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야기, 그리고 사도 베드로의 이야기, 그리고 초대교회들의 개척이야기,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이야기들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사도행전 28장 중에 3번이나 길게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사도바울의 이야기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 바울이라는 이름 받기 전에 사울이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도 바울선생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도라고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 사도인데 왜 자신이 사도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째든 사도바울은 이전의 유대인과 같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주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줄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일에 충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떤 유대인보다 더 유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바리세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변 투표를 하게 되었고 해외로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도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은 은혜가가 예수님의 사랑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다메섹 선상에서 주님이 사도 바울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은혜롭고 축복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복음성가 ∮∮∮♬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 떠난 사람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놀랍네 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를 위한 그 사랑…∮∮∮♬

여러분도 사도 바울과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 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웅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왔고 그리고 그 예수님이 자신을 영화롭게하였다고 간증한 이야기 최고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 기간 자신의 신앙을 알린 대표적 한국 선수로는 장미란 역도 선수와 김재범 유도 선수가 있다. 장미란 선수는 런던올림픽 역도 여자 75kg 이상급에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인상 125kg, 용상 164kg을 들어올려 합계 289kg으로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장 선수는 용상 3차시기 170kg에 실패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는 입술에 대었던 손으로 바벨을 어루만지며 아쉬움을 달랬다. 비록 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국민들도 장 선수의 신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재범 선수는 런던올림픽 81kg이하 급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하늘을 향한 기도 세리머니’를 완성했다. 김 선수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하나님께 가장 먼저 감사드린다”고 했으며, 감격에 겨워 “정말 하나님은 제 은인이시다”고 말했다. 그는 “몸 왼쪽을 거의 쓰지 못했다. 제가 한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죽기살기로 했더니 졌다. 죽자고 했더니 이겼다”고도 했다. 김재범 선수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졌다.

2. 사도 바울 속에 예수님의 이야기 (군중속에 전도이야기)

행 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행 22:2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행 22: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행 22: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행 22: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행 22: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22: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22장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사도 야고보(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이미 순교)는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곳 4사람과 함께 결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도 바울은 결례를 드리고 나오는데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오는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돌을 던지고 폭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리가 천부장에게 들린 것입니다. 천부장이 군대를 이끌고 소요를 진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성문에서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건이 사도 바울에게 큰 사건입니다. 이렇게 위협적인 상황가운데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 증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북한에서 이남으로 월남하게 된 동기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신사참배도 살아서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하였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저도 그 상황에 있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저도 우유부단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살길을 찾지 않고 강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을 제를 날리면 사도 바울의 말을 더 듣지않고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가운데 이야기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수다의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것인가요? 쓸 때없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것입니다. 핵심이 없는 설교를 오랜 시간 설교를 듣는 것 보다 화나는 것이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정치인들이 대중들 앞에서 조리있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해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중에 가장 실수한 말은 못해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못하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가 그렇게 말을 잘합니다.

어는 국회의원이 입후보하면서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눈에 안대를 대고 있었나봅니다. 한 후보가 그 후보를 가리키며 현 세대를 바로보는 눈이 애꾸는으로 보면 제대로 세상을 이끌어 갈수 있습니다. 연설장에 폭소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당황함이나 어색함이 없이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저는 일목요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일목요연이란 (한 번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는 자신이 한쪽 눈을 가지고 있지만 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모세의 율법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3. 개인에게 하는 전도 이야기 (아그리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간증)

행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 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사도행전 9장은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회심입니다. 사도행전 22장은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입니다. 사도행전 26장은 자기의 회심에 대한 왕과 총독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에 자시는 핍박자요, 폭행자요 악행자, 죄인중의 괴수라고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주심에 주님에게 대하여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 5절에보면 자신은 가장 엄한 바리새파의 생활하였지만 이러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도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의 표현을 보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4절 하)

가시채란 무엇입니까? 가축을 앞으로 몰기 위하여 끝이 뾰족한 막대기입니다. 가시채는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이때 만일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여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가 가시채를 뒷발질하면 결국 누구만 상하게 될 뿐입니까? 소 자신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모습인 것입니다. 몸 된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의 몸된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이 너 자신만 상한 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 그와 같지는 않습니까? 연신 가시채를 뒷발질 하고 있는 모습 등이 말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대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우리 평강이가 어린 시절에 일기를 쓴 것을 제가 다 모아두었습니다. 우리 평강이 엄마나 가끔 읽으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아들의 일기중에 어떤 부분은 방학중에 밀린 일기를 쓴 부분이 있습니다. 내용이 한 결같습니다. 그것은 한달치를 쓰니 무슨 기억이 있겠습니까? 매일 일기 가운데 아빠에게 엄마에 혼난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실패한 이야기 예수님이야기가 들어갈 때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이 이야기가 자신의 간증이였습니다. 사람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간증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의 간증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그러한 간증을 모든 군중 앞에서 하였고 이번에는 왕과 총독 앞에서도 자신이 주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이 때에 배스도와 아그리파왕은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그러나 사도 바울은 베스도 각하에게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을 전도합니다. 그때에 아그립바 왕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행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사도 바울처럼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찬송의 제목이 이와 같아야합니다.

찬송가 204장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 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성원순복음교회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이야기의 간증들이 넘처나기를 축복합니다. 원복래 안수집사님의 간증, 유병무 안수집사님의 간증, 지동현권사님의 간증, 김성애권사님의 간증, 박복래권사님의 간증, 김예기 권사님의 간증, 정서남권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이 나를 만나고 예수님 자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솔직한 이야기, 진실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진실된 예수님의 이야기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진실된 이야기 많아질 수록 우리 사회는 변화되는 것이고, 세상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란스런 자리라 할지라도 누군가 한 사람, 진실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정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진실한 말을 하게 될 때에 잃어버린 참-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아, 이게 진정 내 인생이구나.”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말을 하면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로 인하여 인생이 더욱 빛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서 솔직한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또한 진실한 이야기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못듣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 밭에 무궁한 사랑과 상상력을 심어주는 성경의 이야기 꿈은 이야기를 통해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그 아이들에게서 또다른 아이들에게 끝임없이 이어지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Never Ending Story, Never Ending Drea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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