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장 1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출 21: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출 21: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1. 종에 대한 세상의 생각들
로마에서는 도구를 분류할 때에 3가지로 분류합니다.
삽이나 수레 따위는 소리내지 않는 도구라고 하고
소나 말 같은 가축은 소리내는 도구라고 불리고
인간의 형상을 한 노예는 말하는 도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첨단 기술의 꽃으로 각광을 받는 로봇(robot)이 인간을 닮은 기계라면 고대 노예들은 기계를 닮은 인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로마의 대농장에는 온종일 채찍을 맞으며 고된 노동을 했고 밤에는 창고에 갇혀서 지냈다. 노예들이 자유롭게 되는 길은 용서받을 수없는 문제를 일으켜 주인의 손에 죽는 것입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 인구는 150만명입니다. 그중에 90만명이 말하는 도구로 구성되었습니다. 노예 3사람이 로마시민 2사람을 먹여 살리는 셈입니다. 로마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카이사르는 갈라아 정복 때에 무려 100만명의 노예를 얻었다고 합니다. 당시 최대 인신매매 조직의 두목인 셈입니다.
생산의 주역인 노예들이 늘 고분고분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노예 반란은 기원전 73년에 일어난 제 3차 노예전쟁입니다. 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입니다 (Spartacus). 자신의 피로 귀족과 부유층의 잔인한 취미생활을 충족시켜 주던 검투사 200명이 피의 축제를 거부하고 양성소 담장을 넘어서 탈출한 사람은 70명입니다. 베수비오 화산으로 숨어들어 노예들을 모집하여 봉기하여 순식간에 1만명이 되었고 로마 군단을 배후에서 기습하여 로마정부군 2개군단을 격파하였고 남부이탈리아 일대는 노예 봉기군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어 노예 봉기군은 12만명으로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알프스 산을 넘지 않고 지중해 따뜻한 지역에 머물다 로마군이 전열을 정비하여 브린디시항 부근에서 크라수스의 군단과 마지막 결정을 벌이다가 폼페이우스에게 격파당해 3년간 6만명의 노에가 전사하였고 6000명의 포로가 십자가에 못 박혀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2. 종에 대한 성경적인 생각들
세상의 종의 개념과 희브리적인 종의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히브리적인 종의 개념은 억압에 의한 개념이 아닙니다.
레위기 25장 10절에 보면 히브리인의 종이 되는 경우는 3가지 경우입니다.
1) 전쟁에서 패했을 경우입니다. 고대에서는 주변 이웃과 늘 전쟁하였습니다 이때에 전쟁의 포로로서 이웃나라에서 종이 되는 경우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때에 기브온 거민들의 경우입니다.
2) 빚의 문제로 죄의 문제로 과거의 잘못된 문제로 노예로 팔렸을 경우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신학생남편의 죽음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이 채주의 손에 팔리는 경우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칠 경우 희브리인들은 7배를 배상해야합니다. 소 한 마리를 훔칠 경우는 소 7마리를 배상해야하기 때문에 값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종이 되는 경우입니다.
3) 아버지가 노예이면 자신이 노예인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구약 율법에 의하면 6년동안 주인을 섬기고 칠년째 되는 해에 자유를 주는 규정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되기를 거부하는 종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로 종이 주인을 너무 잘해주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종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 주인이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주인의 종으로 왔다가 주인의 여자를 사랑하여 스스로 종이되기를 소원하는 경우입니다. 종살이 도중 결혼한 처자는 주인에게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데리고 나갈 수없기 때문입니다.
종이 이렇게 영원히 종이 되길 원하는 경우 재판장에게 가서 문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는 경우입니다. 영원한 주인의 종으로 예속되는 경우입니다.
쉽게 우리 남자들이 군대에 들어갑니다. 그러데 군대에서 사고를 치거나 그리고 사회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이 군생활을 계속하고 싶을 경우에 군에서 말뚝을 빡는다고 합니다. 즉 성경적으로 군에 귀를 뚫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군생활을 할때에는 의무적으로 군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군생활의 말뚝을 밖으면 의무가 아니라 자원해서 군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군이라는 곳에 속박되기를 결정하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종의 해방에 대한 계념
1) 육년동안 종으로 일하다가 제 7년에 자유를 줄 것임
출 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 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 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2) 혼자 왔으면 혼자 나갈 것이요, 장가들어서 왔으면 아내와 함께 나갈 것이요.
출 21: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3) 혼자 왔다가 주인이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와 자녀는 주인의 것임으로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출 21: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4) 영원히 종이 되려는 경우
출 21: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출 21: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5) 희년에 종의 해방
희년이란? 한문으로는 희년(禧年), 즉 ‘복된 해’이다. 히브리어로는 ‘요벨의 해’라는 의미인데, 요벨은 ‘수양의 뿔’을 가리킨다. 이런 명칭이 붙은 것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어 희년을 알린데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희년은 안식년이 7번 지난 다음 해, 즉 50년째 해에 지켰다. 그 기간은 49년째 대속죄일인 7월 10일 저녁부터 다음 해 대속죄일까지 1년 기간이다.
* 세계적인 흑인 가수 <마리아 앤더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노래를 잘 불러 교회의 후원으로 성악공부를 하게 되었다. 마침내 성악가가 되어 그 유명한 뉴욕 <맨하탄 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신문 및 언론매체마다 악평이 쏟아지고 더구나 인종차별이 심한 시기여서 그녀는 절망하면서 노래한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을 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위로하는 유명한 말을 한다. “ 앤더슨아! 네가 위대해 지려면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듣기보다 먼저 은혜를 알아야 한다. 오늘 네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냐? 네가 남보다 재능을 가졌던 것, 네가 공부할 수 있도록 교회가 후원해 준 것, 네가 무대에 서기까지 좋은 지도자를 만났던 것, 네가 그 꿈에 그리던 맨하탄 홀에 설수 있었던 것을 다 생각해 보라. 은혜가 아니냐?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왜 박수소리에만 민감하니…?” 어머니의 신앙충고에 <마리아>는 박수소리만 듣고 자신을 평가했던 어리석음을 회개를 한다..그리하여 은혜를 아는 유명한 가수가 된다.
희년의 축복의 핵심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자유를 누리고, 안식을 맛보고, 회복의 은혜를 입는 것, 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3. 영적으로 종이 되는 경우입니다.
저는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서 성도들이 변함없이 이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이곳에 왔고 그리고 있다가 다른 교회 성도들도 보았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의 영적인 종으로 귀를 뚫고 계시는 성도들도 보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 교회 못나오게 하여도 이 교회에 충성하려고 합니다.” 하시는 성도도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분들에게 그러한 헌신들을 하게 하실 까요?
여러분 성원순복음교회에 왜 영원한 종이되려고 하시려고 하십니까?
1)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귀를 꿇습니다.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장에서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때 주님께서 생명의 떡을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육신의 떡 때문에 나를 찾지만, 내가 바로 생명의 떡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나를 먹는 사람이 생명을 먹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생의 떡을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오병이어의 떡을 먹고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6).
왜 이러한 현상이 나옵니까? 주님의 말씀이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단순히 떡을 주는 분, 자신의 요구를 체워주시는 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에는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교회에 오는 분들이 예수님의 생활의 도구 나의 필요을 체워주시는 분으로만 오시면 어려분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백성들 처럼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이고 예수님이 나의 목표와 삶의 푯대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2) 분명한 천국이 있으면 영적인 귀를 꿇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평생을 지하 카타콤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에서 잘입고 잘살고의 꿈이 아니라 목숨에 대한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입니다. 잘 먹고 살입고 살사는 것은 그 다음이 였습니다. 평생을 지하에서 살아서 기형아도 낳고 그리고 햇빛을 받지 못하여 건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30-40살을 살지 못하여도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생활을 비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아버지 돈을 쓸 때와 아버지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것이 어떤 것이 길고 행복했을까요?
우리의 생활중에 가장 가치있고 행복한 부분이 영원한 천국에서의 상급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가 이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목회자가 되고 그리고 수도원생활을 하고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참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이 무엇입니까? 바로 순교입니다. 많은 선인들이 수많은 곳에서 순교를 당하였고 지금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오지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곳에서 핍박당하는곳으로 왜 찾아가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분명히 천국이 있고 그리고 천국에 큰상급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약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명령을 받아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갈데아 우르를 출발하여 유브라데스강을 거처 하란에 이렇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거느리고 다시리는 사병만 318명이면 많은 식솔을 먹이고 입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고 자신의 고향 갈데아 우르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금이 환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본향을 하늘나라로 두었던 것입니다.
히 11: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특별히 여러분 자신의 집과 많은 물질을 얻어 좋은 성을 쌓고 그리고 좋은 집을 짖고 살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텐트를 치고 살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1: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 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들은 천국의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암투병하는 한 권사님의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극도로 피골이 상접하였습니다. 치료를 위하여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 권사님이 분명하게 저희 심방대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오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살아있어도 행복하고요. 하나님이 제병 치료하지 않으셔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믿음으로 극복하려고합니다. 행여 내마음속에 불안한 마음이 있어도 이 길 밖에 없기에 주님을 따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느 전도사님의 가정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전도사님의 아버지님이십니다. 제가 설교하였습니다. 시편 127편을 그리고 우리의 장막집이나, 그리고 자녀 사업도 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너무 애착을 가지고 살지 마시고 죽음앞에서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러나 끝까지 사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목사님이 오셨다니까? 형식적으로 기도받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소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가슴아픈 일입니다. 죽을 때 영적인 귀를 뚫고 죽어야한데 그러지 못함을 너무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3)세상의 가치보다는 영적인 가치가 더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이 자유의 몸이 될수 있지만 자유의 몸이 되지 않고 상전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마음은 왜 입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의 가치가 보다는 예수님의 가치가 더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와 베다니 문둥이 촌의 한여인과의 만남입니다. 이 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병들었을 때에 치료하시고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가치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그 가치를 돈의 가치 세상의 가치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300데나리온은 얼마나 많으 가치입니까? 빌립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 전에 이 많은 사람들을 식사비용이 200데나리온이라고 하면 장정 5000명이 먹을 정도의 분량의 돈입니다. 그 많은 돈을 예수님의 몸에 부어드리는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의 절대가치, 나의 메시야, 나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였습니다.
여러분 이영무선수가 축구할때에 기도하는 것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주영입니다. 이영무선수가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기도하는 것은 축구보다는 더 위대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 여러분들을 이제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많은 죄를 짖고 그리고 예수님께 갚아야할 것이 많기 때문에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귀를 뚫은 종이 된이 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순교로 모든 생애를 마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진정으로 영적으로 여러분의 귀가 뚫려서 예수님과 우리 성원교회 영원한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의 상급과 땅에 축복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