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벧엘로 올라가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6월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치유는 사모하는 자에 임합니다.
은혜는 사모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은 사모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기적은 사모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107편 9절의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모든 시간은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이 있지만 사모하는 자에게 카오로스와 같은 기적의 시간이 임합니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보다는 사모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축복의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1장 2절~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같은 배에서 나와서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이나 신분, 혈통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사모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야곱에도 3번의 위기가 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에서의 낯을 피하여 홀로 도망치던 밤에 루스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자는 시기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
얍복강에서 브니엘의 축복을 만납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복을 받아서 돌아오는 시간에 형 에서는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입니다. 절망의 방에 그는 구원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천사가 그의 환도뼈(고관절)를 부러뜨려 육신의 힘을 완전히 꺾으셨을 때, 야곱은 오직 하나님만 붙들었고 결국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속이는 자)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는 ‘브니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김경애 집사님’
세겜의 학살과 영적 위기, 다시 벧엘로 (창세기 34~35장)가는 위기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 세겜을 사고 그곳에서 안주하려고 하였습니다. 유흥가가 있고 부요의 땅에 디나가 나갔다가 수치를 당합니다. 분노한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끔찍한 학살을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다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는 위기(창 34:30)
그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창 35:1)”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이 있어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식이되었습니다. 개척할 때에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열정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예배가 형식과 습관이 되고 사명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격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은 처음 만난 곳 벧엘로 올라가자.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처음 사명을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SFC 대구 서현교회, 인천의 제일장로교회에 수련회에 참석했던 일들, 도곡산 기도원에 올라 기도하던 모습, 삼각산에 올라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생각,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올라 기도하던 일들입니다. 우리 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우리 안수집사님과 함께 청년들과 함께 필리핀 윤정열목사님과 김종국선교사님의 사역지를 돕던 일들도 생각납니다.
벧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인생을 회복되어야합니다. 자리만 따뜻하게 대우고 가는 성도들이 아니라. 처음의 신앙을 소유하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사모가 처음 만나는 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멀리 광주까지 내려가는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냥 보고 싶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일년에 한번가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첫사랑은 매 주일마다 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겜(Shechem)은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지리적 요충지이자, 하나님의 언약과 인간의 연약함이 교차했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현재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나블루스(Nablus)’라는 도시 근처에 유적지(텔 발라타)로 남아 있습니다
- 우상을 버리자입니다.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작은 우상부터 큰 우상까지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느부갓네살 왕의 우상이 있습니다. 시편 115편 4절: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오늘날의 우상은 돈을 사랑함이 우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동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이 있어야 할 내 마음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저는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사람이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그 돈을 지울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상의 생명력보내주신 고백 중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문장은 “그것을 없애지만 또 생기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고 했습니다.
내일 죽는데 여전히 포기 못하는 우리 전도사님의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우상을 없에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악과 우상으로 더러워진 상태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배자로서 야곱은 마땅히 영적인 예의 거룩함을 갖추고자 하였습니다.
외삼촌 집에 훔쳐온 드라빔과 세겜 족속에게 약탈한 이방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우상과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창 35:2)”
‘죄악의 의복’을 벗는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에 시므온과 레위가 저지른 잔혹한 학살로 인하여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심각한 오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디메오가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우리의 죄악의 옷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7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지어지신 ‘의의 옷’을 입었기에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뀜
(고린도후서 5장 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부끄러운 현실인 “성도답지 못하고, 목사답지 못한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그렇기에 더욱 “그리스도의 옷을 강력하게 입어야 한다”는 결단으로 나아가시는 모습이 큰 울림을 줍니다.
-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내가 가는 길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1)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자로서 삶
하나님은 꿈속에 나타나셔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강력한 동행의 약속
20년동안에 외삼촌 라반이 자신을 속이는 일 그러나 하나님의 20년 동안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20년 동안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했습니다. 외삼촌은 야곱을 속여 품삯을 10번이나 바꾸며 그를 착취했습니다.
밤새 야곱과 씨름하시며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리셨지만, 결국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마음을 녹이셔서 칼을 들고 오던 형이 야곱의 목을 어긋맞기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하게 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세겜’ 땅에 머물며 딸 디나가 수치를 당하고, 아들들이 세겜 부족을 학살하여 주변 모든 민족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파멸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영적 안일함으로 악취가 났던 세겜의 길 (창세기 34장)
(창세기 47장 9절)야곱이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극적으로 만나고,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회고합니다.”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시편 50편 15절)”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야곱이 살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유일하게 깨닫는 것은 나의 가는 길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 두려움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마귀는 사탄 귀신은 무서움의 두려움이지만, 하나님은 경외함의 두려움입니다. 거룩함의 두려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상을 버리고, 옷을 성결케하고 벧엘로 올라가니 환경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마음속에 가나안 족속의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야곱에게 주변의 있는 모든 민족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예배가 회복되니,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야곱이 과거 도망치던 시절 하나님을 만난 벧엘로 돌아와 예배를 회복하니 하나님의 벧엘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새이름 이스라엘과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야곱 사기군을 이스라엘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자로 바꿔주셨습니다. 이제는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정하고 총횡와 왕들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
어머니의 젖가슴을 뜻하는 ‘샤드(Shad)’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힘이 센 독재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려 모든 영양과 생명을 아낌없이 채워주듯 자녀의 필요를 완벽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내 힘과 능력이 완전히 바닥나 ‘불가능’이라고 말할 때, 자신의 전능함으로 우리의 빈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엘 샤다이는 인간의 끝, 하나님의 시작: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 하나님은 “나는 엘 샤다이(전능한 하나님)라” 하시며 이삭을 약속하셨습니다.
“내 사업이 무너졌을 때”, “의사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선고했을 때” 내 힘을 빼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의 공급하심만으로 기적같이 다시 살아나게 하신 ‘완벽한 충족’의 하나님을 간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