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0장 1절 히스기야와 루터

열왕기하 20장 1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비대면 예배로 진행하는 수요예배에 성도님들이 한분도 오시지 않아서 수요예배를 사랑의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김지찬총신대교수님)

설교의 내용 루터가 종교개혁만 힘쓴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전염병인 흑사병, 페스트까지 헌신한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흑사병으로 마을의 1/3, 마을의 1/2이 죽고 유럽에서는 인구 1/3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527년엔 루터가 머물던 독일 비텐베르크에서도 페스트 환자가 쏟아져 나왔다. 루터는 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교회를 떠나갈 때에 루터의 행동은 이러했습니다. 목회자들은 반드시 지역사회와 교회를 지켜야합니다. 다음으로 남아야할 사람들은 지도자들과 공무원, 의사와 판사라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루터가 지역사회와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믿음입니다. 시편 47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군가처럼 부르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지키심을 믿고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루터는 집과 마을을 교회를 소독하고 내가 꼭 가야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음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한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루터의 이중고, 종교개혁과 흑사병의 상황이 히스기야의 상황과 비슷하여 오는 본문 우리 시대에 주고자 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1. 그때는 어느 때입니까?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열왕기하 19장 35절에 보면 앗수르 진영에 군사 십팔만 오천명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송장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왕 산헤립이 니느웨로 돌아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코로나바이러스를 하루 아침에 다 지구 상에서 없어지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 앗수르 군대를 하루밤에 몰살한 것과 같이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히스기야에게 시련을 주었습니다. 이사아가 이렇게 예언합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고 네가 죽고 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를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기도하면서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였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본문에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왜 고난을 주십니까?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생각으로 얼굴을 돌려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끼우거나 제가 어린시절 기억하는 것은 저희 부모님에 대한 섭섭합니다. 어려서 참으로 열심히 물을 길고 그리고 열심히 부모님을 도와주었는데 부모님을 저를 빼놓고 동생들과 함께 제주도를 가는 것입니다. 정말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삐저 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를 피하여 작은 방에서 벽을 보고 슬피 운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섭섭합니다.

 

2) 다른 생각은 선지자로부터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생각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중의 하나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윗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왕이 아니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 잘못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이 히스기야를 훌륭한 왕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3절이하에 보면 히스기야는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여러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었고 모세가 만든 놋뱀인 느후스단을 부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만 의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전후 유다 여러왕 중에 이러한 자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연합하였고 여호와를 떠나지 아니하고 모세의 명하신 계명을 지키므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어는 것이 맞는지 하나님의 나라에게 가서 히스기야에게 물어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섭섭한 부분을 중심으로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섭섭한 부분은 어려번 나오는데 나만 장군의 예입니다. 자신은 한나라의 군대장관으로 멀리서 왔는데 선지자는 나와보지 않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씩으라고 하니 섭섭하여 원망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잘하는 마르다와 마르아의 예입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에게 물신 양면으로 잘하였고 그리고 조금만 일찍 오면 오라버니가 살수 있는데 완전히 죽을 때에 오시니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변의 나라로부터 공격당하고 포로생활하니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섭섭의 근원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복을 주시여야하는데 왜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지않지 하는 생각입니다. 섭섭의 근원은 자기가 이만큼 열심히 하였으니 하나님이 교회가 자신을 알아주어야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섭섭한 것입니다. 내가 8시간 일했는데 1시간 일한 사람과 같이 취급하니 섭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욥을 생각하여야합니다. 주신이도 하나님이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2. 하나님의 계획 (자녀 문제)

히스기야는 남 유다 13대(B.C. 715~687년)왕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아하스라는 사악한 왕이였고 우상숭배하는 왕이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의지했습니다. 반면 히스기야의 어머니는 아비야라는 분입니다.

 

역대하 29장 1절에 히스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년을 치리하니라 그의 모친의 이름은 아비야라 스가랴의 딸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신앙이 좋은 분입니다.

 

히스기야의 부모님중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서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시스야의 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올수 있고,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악한 자녀가 나올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나 우리 시대의 목사님의 자녀들이 바로 그 예인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 사무엘의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의 자녀들이 바로 그 예입니다. 히스기야는 자녀교육을 잘 못했습니다. 설교 잘 한다고 하여도 그 자녀가 잘 살아야지 되는데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이유는 그의 자녀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15년중에 3년째 되는 해에 그의 아들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사춘시 시절에 13살에 히스기야가 소천하여 사춘기 시절에 왕이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자 우상숭배를 하고 히스기야가 허물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못된 일만 골라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성경은 므낫세라고 하였습니다. (왕하 24: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므낫세가 죽은 지 56년 만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70년동안 종살이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므낫세가 그렇게 된 이유를 또한가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자식에 대하여 신앙교육보다는 세상의 교육과 훈율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잠 29:15, “매와 꾸지람은 지혜를 얻게 만들어 주지만, 내버려 둔 자식은 그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

 

● 한국교회가 바로 이러한 시점에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가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피땀흘려서 이 나라를 이렇게 잘 살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세대가 문제인 것입니다. XYZ 세대 즉 알파펫의 마지막 시대인 것을 의미합니다. Z세대에게 신앙이 전수도 않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첫째로 자녀의 감소입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예전에는 가장 많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일학교가 있는 교회가 드물 정도입니다. 둘째로 부모의 자녀교육입니다. 학교의 교육보다 교회의 교육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학교 성적제일 주의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게을리하면 혼내어도 신앙생활, 주일예배 드리지 않는 것을 혼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사기를 보면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다음 세대’(next generation)와 다른 세대(another generation)는 완전이 다릅니다. 다음세대는 신앙이 전수된 세대를 의미하고, 다른 세대는 신앙이 전수되지 않는 세대입니다.

우리 아들의 결혼조건을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흑인이라도, 백인이라도 괜찮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빠는 좋다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신앙이 전수되어야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세대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져야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가장 안타까운 것이 지0현권사님의 가정입니다. 그렇게 그 가정에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손빨레 다 해주었지만 그 할머니의 신앙이 그 자녀와 손주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손주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둘째달이 지0현 권사님을 간호하고 있으니 정말 마음이 아품니다.

 

3. 히스기야의 기도응답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주권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히스기야를 살려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자로 생각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살려주신 이유도 물론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히스기야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성을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에서 구원해주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서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15년의 생명을 더하였습니다. 20년도 30년도 살릴 수 있는데 왜 15년입니까?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위하여 히스기야를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다음 후개자의 문제입니다. 히스기야가 일찍 죽으면 이스라엘 나라에 큰 혼란이 옵니다. 너무 어리면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15년을 연장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김정은이가 자신의 후개자가 아직 어리니까? 자신의 여동생에게 일단 맞기고 자녀가 다 성장할 때까지 통치하라는 의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통치하느냐에 따라서 나라가 어려움을 격게 되고 나라가 평안할 수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같은 말 같은 지역에 살지만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4. 자기만 살면 되는 히스기야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여러분 인생을 어린시절, 청년의 시절, 장년의 시절, 노년의 시절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시절이 저는 노년의 시절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의 시절에 방황하고 노년에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시절과 장년의 시절에 잘 살다가 노년의 시절에 예수님을 버리고 신앙을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회를 목회하시는 분들도 바로 그러합니다. 열심히 목회를 잘하다가 말년에 사고를 치고 그리고 말년에 교도소를 가고, 말년에 성도들과 트러블이 있어서 원로목사님으로 계시지 못하고 존경을 땅에 내 팽깉치는 목사님들을 종종보게 됩니다. 어찌 목회자만 그러합니까? 성도들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절대 강자 앗수르와 신흥강국인 바벨론과의 패권전쟁이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강자인 앗수르를 물리친 것입니다. 그래서 신흥강국인 바벨론의 시신이 온 것입니다. 축하하고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하여 온것입니다.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신의 치덕으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신하들에게 자신의 보화를 다 보여주는 것입니다. 처들어와서 이곳을 보물을 가져가라는 것인지 어떤 생각으로 보물을 보여주었는지 모르지만 당연컨대 자신의 영량과 자신이 한 과업을 자랑하기 위함으로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만한 히스기야에게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아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합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을 있을 진대라고 답변하므로 자신의 사는 날도안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나만 행복하 나만 축복받고 내 후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어어가지 않는 것은 참으로 몰쌍식한 부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히스기야를 15년을 살려준 이유는 이스라엘을 위하고 그리고 그의 후손인 므낫세가 장성할 때까지 계획을 가지고 가졌는데 그의 마음속에 오직 자신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자녀가 가장 악한 자녀로 이스라엘에 오명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결론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루터처럼 지역사회와 교회를 위하여 믿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성도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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