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0년 5월

 

요한복음 1장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2장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인본주의이고, 신본주의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사탄이 중심이고 신본주의는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의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내 주 왕이 어찌하여 이 명령을 내려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시나이까하면서 권면하지만 듣지 않고 죄를 짖게 됩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의 죄를 짖게 됩니다. 사탄이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마음을 심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인본주의입니다.

먼저 인본주의란 영어로 휴머니즘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여기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입니다.

인본주의는 신이나 사탄, 영혼, 천국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보이는 자연과 물질, 인간의 기술과 과학, 그리고 이성에 판단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을 믿고 적자생존과 용불용설을 믿고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무지와 종교로부터 해방해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 바로 존 듀이입니다. 심리학자로는 스키너와 같은 사람입니다. 요즘 리차드 도킨스도 인본주의학자입니다. 마슬로와 에릭 프롬도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신본주의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저희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찌 보면 신본주의로 사는 것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울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진화론에 배우는데 오직 우리만 창조론을 고집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 떨어진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주일날 열심히 돈을 벌고 살아야지 부자로 살지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뒤에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산 사람들이 잘 되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서유럽과 잘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잘 믿는 국가가 잘 살게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인간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는 일년에 매년마다 필리핀을 간 기억이 있습니다. 갈 때마다 저는 기분이 좋고 마치 내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휴가 가는 느낌이 들어 행복합니다. 필리핀에 가면 착각이겠지만 저만 처다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줄 수 있고, 설교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조금씩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조종석에 들어가서 이렇게 이렇게 운전하여 주십시오 하고 부탁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냥 묻지 않고 그냥 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운전할 줄 도 모르고 어떻게 가는 방법도 모릅니다. 그냥 맞기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운행하시고 운전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맡기고 그분에게 기도만 할 뿐입니다.

이성재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친구분이 목회자가 되었고 그리고 신대원을 같이 다니는데 그 목사님이 이러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는 일마다 안되는 것입니다. 돈을 벌으면 족족 사기 당하고, 결혼하려고 하면 헤어지자고 하고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낭떨어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걸려 살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오게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사람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피부속에 그리고 마음과 영감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으로 가는 길속에서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신앙고백이 확실해야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고백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해야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육으로 난 것은 혈육입니다. 혈육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습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나오는 고백이 바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 고백이 분명해야합니다.

이 소설 ‘양치는 언덕’은 일본의 ‘미우라아야꼬’라는 여류 소설가가 쓴 소설이다.

여자 주연은 ‘나오미’이고, 남자 주연은 ‘료오찌’이다. ‘나오미’는 목사의 딸이다. 여고시절에 알게 되었던 료오찌를 졸업 후에 다시 만나게 되고, 나오미는 료오찌와 눈이 맞아 부모를 버리고 집을 나간다. 나오미는 몇 년을 료오찌와 함께 살았지만, 술버릇이 나쁘고 바람기가 심한 남편과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어서 도망을 나와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때 료오찌가 폐병에 걸려 나오미에게로 온다. 나오미는 받아주려 하지 않았지만 친정 부모의 권면으로 받아 주게 된다. 처갓집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료오찌는 장인 장모의 믿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서 점점 몸과 마음이 건강해 져 간다. 료오이찌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매일 다락방에 올라가 그림을 그린다. 나오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하여 그리는 그림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언제나 하얀 천으로 덮어 놓는다. 나오미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전에 사귀던 전에 사귀던 좋지 못한 여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할 수 없이 나가서 만난다. 그 여자가 술을 권하지만 사양한다. 하룻밤 함께 지내자며 유혹하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그 여자가 몰래 술에 수면제를 타 넣은 후 이 술 한 잔만 마시면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료오찌는 그 술을 받아 마신다. 그리고 잠이 오지만 그곳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나왔다가 길거리에서 잠이 들어 동사하고 말았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료오찌를 장례한 후 료오찌의 그림을 벗겨 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 청년은 료오찌 자기 자신이었다. 장인인 나오미의 아버지는 목사다. 나오미의 아버지가 말을 한다. 이 그림은 료오찌의 신앙고백이라고…. 나오미는 23살의 나이지만 재혼을 하지 않고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참고 서평모음)

2. 천국가는 동안 우리의 할 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한복음의 특징중에 하나가 바로 표적을 보여주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23절입니다.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 표적이 요한복음 2장이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는 표적입니다. 요한복음 2장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두 번째 표적입니다. 그 표적도 신하의 아들을 고처주시는 표적인데 그 사람이 믿으니 아들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왕을 삶으러고 하였던 것을 보게됩니다.

요한복음 7: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물론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였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그러나 요한복음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용문산 기도원에서 설교 들은 내용입니다. (앉은뱅이의 기적)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원리도 절대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을 의지 않고 사람의 인기로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시험을 받으실 때도 사람들의 보는 앞에서 뛰어내리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는 것을 삼가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자신이 가시는 길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살았다면 오병이어의 기적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왕이 되어서 그 땅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들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기 연애인들을 보았습니까? 그들이 가장 인기 있을 때에는 오빠 오빠 하고 따라다니지만 인기가 없고 악풀이 난무할 때에 연예인 스스로 자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남겨진 제산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법적인 소송까지 나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바로 인간의 욕심입니다. 탐욕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변함을 알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부모라고 하여도 자녀를 벌릴수 있고 자녀도 그렇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자녀가 부모를 벌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익과 돈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입니다. 로마서 7장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나는 육신의 정욕을 죽이노라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래서 우리는 늘 내의 몸된 성전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 말씀에“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교회중심으로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교회에 안수집사님이나 권사님의 가정에 피치 못하게 이사가시는 경우도 있지만 되도록 성원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신 분들입니다. 교회에서 걸어서 10분에서 20분정도입니다. 홍대나 합정까지의 거리입니다. 그래야 교회에 무슨 일이 있으면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무슨일이 생기면 교회와서 기도할 수 있는 거리기 때문입니다. 교회 중심으로 사시는 분들이 복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100%라고 말씀들릴 수 없습니다. 항상 예외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께 대부분이 복을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3. 천국가는 동안 우리의 할 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신본주의는 인본주의와 조금 달리 이상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쇠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높여주시고, 나누워주는데 네가 풍성해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복음성가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가지지않는것 이상하다 동전한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

우리 평강이가 십일조 복을 받은 아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십일조의 개념이 조금 약해지지 않았나하여 부모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늘 준비하고 봉투를 준비하고 있는데 조금 씩 늦게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먼저 띠어놓고 드리니 아깝지도 않고 하나님께 마땅이 드리고 받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는지 믿음이 조금 신앙이 조금, 신본주의가 조금 식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본주의는 주일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보면 주일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인본주의는 주일날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일하지 않아도 더 풍요로움을 볼수 있습니다. 북한은 천리마 운동, 천 샆 뜨고 허리 한번 피고 매일 열심히 노동해야 잘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함께 성경공부하고 그리고 한 주간 열심히 돈버는 삶이 복있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본주의 삶은 세상에 기준을 두지 않습니다. 한번은 이러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모와 함께 은행에 갔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목사님은 신용이 안되서 돈을 빌려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모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운영해야하는데 목사님은 돈이 없어서 교회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은 성령이 없어서 문을 닫는지 모릅니다. 인본주의로 목회를 하다가 문을 닫고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들을 키우를 때 1960년대 70년대에는 많이 욕하고 때리고 키웠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한가지 잘 한 것이 있습니다. 코를 딱아주면서 흥해라 흥해라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흥하게 되었다고 하는 부흥강사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흥해라고 해서 되겠습니까?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신본주의로 살아가기 때문에 흥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즉 신본주의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그 길들을 만들어주셨고 또한 우리도 예수님의 길 신본주의로 살아야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하였지만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순복음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목회의 길 교회의 길들을 만들어 놓으니 많은 목회자들이 그길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를 조직함에서 그리고 큰 교회들을 분리 독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교회에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김–목사님이 큰 교회들을 분리 독립시키는 것을 보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목사님처럼 하시는 것을 보고 또한 영감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길을 가는데 하나님이 저에게도 그러한 모델이 될 만한 길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고 하는 기도를 하곤 합니다.

결론입니다.

Satan: I will cause anxiety, fear and panic. I will shut down business, schools, places of worship, and sports events. I will cause economic turmoil.

Jesus: I will bring together neighbours, restore the family unit, I will bring dinner back to the kitchen table. I will help people slow down their lives and appreciate what really matters. I will teach my children to rely on me and not the world. I will teach my children to trust me and not their money and material re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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