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7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월 22일
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오늘 새벽기도회는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4번 그것도 요한일서 요한이서에 나옵니다.
요일 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복사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복사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복사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약하면 적그리스도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워질 수록 많다는 것입니다. (요일 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두번째 적그리스도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인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세번째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영입니다.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넷째로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육체를 부인하는 영입니다.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요이 1:7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우리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복음증거입니다.
복음 증거나는 큰 복음 증거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의도광장에서 빌리그램 전도집회와 같이 중요한 집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개인적인 전도 집회입니다. 빌리그헴목사님은 개인적인 심방도 자주하시고 복음증거도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오병이어 칠병이어와 같은 많은 사람도 복음을 증거했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한 개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하고 한 개인에게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복음증거하는 사람들이 지금 호텔에서 강사목사님을 모시지만 예전에서 집으로 모셔서 예배합니다. 그 때에 복음증거자들 그 집에 식구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증거자들이 다 좋은 사람들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도 미혹하는자들도 함께 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집에 복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이단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부녀들에 부탁합니다.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말도 하지마라고 우상을 멀리하는 것처럼 이단도 미혹하는 자들도 적그리스도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된 큰 종교중에서 유대교가 있고 므슬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유대종교도 아브라함을 자손들임을 자랑합니다. 기독교도 아브라함의 복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이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은 예수님을 그냥 사람으로만 선지자나 제사장으로만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합니다. 육체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린양으로 오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여기에서 기독론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의 유명한 권면을 나누어 주셨군요. 이 문장은 그의 저서나 설교에서 ‘진리와 사랑의 균형’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정확한 문맥을 반영하여 다듬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이 진리로 견고해지지 않으면 그것은 나약함(감상주의)에 빠지게 되고, 진리가 사랑으로 부드러워지지 않으면 그것은 딱딱함(율법주의)에 굳어지게 된다.”
스토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로 ‘진리 안에서의 사랑(Love in Truth)’과 ‘사랑 안에서의 진리(Truth in Love)’를 강조하셨습니다.
진리 없는 사랑: 비원칙적이고 감정에만 치우친 타협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 없는 진리: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비난만 남는 무기가 되기 쉽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