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7-1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12월 31일 마지막 새벽기도회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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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34-40절, 마가복음 12장 28-34절, 누가복음 10장 25-28절 등에서 예수님께 율법사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또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가지 계명을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예배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예배도 없습니다. 이 예배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고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시작과 완성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대표적인 장이 있다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9번 나옵니다. 요한일서 4장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총 32번 나옵니다. 이 장은 특별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강조된답니다. 7절에서 12절까지 10회, 16절에서 21절까지 14회, 그 외 다른 구절에서 8회 나옵니다.
사랑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사랑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을 구분할 때,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에로스(Eros), 즉 남녀간의 사랑, 필리아(Philia)적인 사랑 즉 친구의 사랑, 부모님에 대한 사랑 스토르게(Storge),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 아가페(Agape)가 있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죄에서 살리는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영을 해보셨습니까?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수영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덩어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로 저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우리 형제들이 있는데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하는데, 나에게 잘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강대상)
하나님은 사랑 유전자, 마귀는 미워하는 유전자입니다. 미움과 증오, 거짓과 속임수, 교만과 불순종, 시기와 질투, 고소와 정죄, 분열과 파괴.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9절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독생자를 보내심/주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요 3:16)” 또는 “세상에 보내셨다(요일 4:9)”
요한일서 4장 9절: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그 행위 자체가 사랑의 명백한 증거이자 표현임을 강조하는 것이죠.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누구를’ 그리고 ‘어떻게까지’ 사랑하셨는가 (범위와 강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세상을 이처럼”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온 세상 모든 인류임을 강조하고,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크고 깊은 사랑임을 부각합니다.
요한일서 4장 9절: “우리에게” – 이 구절이 포함된 요한일서 전체가 믿는 자들(성도)에게 주는 편지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믿는 자들에게 나타남을 강조하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세상을” –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온 세상 모든 인류이며,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님을 선포하며 보편적 구원의 초청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결과적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믿음’이라는 구원의 조건을 명시하고, 결과로 ‘멸망하지 않음’과 ‘영생’이라는 두 가지 대비되는 상태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5명의 아들이 있는데 무자한 가정에 자식 하나를 주지 못하는 이유? 이유들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부모가 자녀를 향해 느끼는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과 책임감을 드러낸답니다.
큰아들 장남, 둘째 아들 돈 잘 벌어서, 셋째 아들 아프고 약해서, 넷째 아들 똑똑해서, 다섯째 아들 보기만 해도 자기 닮아서. 결국, 이 모든 이유는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분신이자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어떤 특성(문화적 역할, 잠재력, 취약성)으로든 자녀를 포기할 수 없다는 깊은 부모 마음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