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7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8월 7일
베드로전서 3장 7절: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 베드로전서 3장 6절까지는 아내들에게 말씀하지만, 남편들에게는 딱 1절만 말씀합니다.
- 당시에 교회 내에는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더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교회 내의 문제는 남편들보다는 아내들에 대한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시대의 여성들은 한 인격체로서 인정하기보다는 소유물로 보기도 했습니다. 함부로 여성을 대하고 때리고 박해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중동의 나라들을 보면 아직도 여성에 대한 박해와 핍박이 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멘에서는 여성이 혼자 하는 법정 증언은 무시하며, 강간, 절도, 명예훼손, 남성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성적인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사우디와 모로코에서는 여성이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됩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아버지가 결정합니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하는 관습이 있는데, 파키스탄에서는 이를 가족 내부의 문제로 규정하며 고의적 살인에 포함시키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란에서는 히잡 및 복장의 강요로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히잡 시위와 죽음(2022년 9월,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의문사하면서 이란 ‘히잡 시위’의 촉발점이 되었습니다. 16세 소녀 니키 샤카라미도 성폭행과 폭행으로 의문사했습니다.)
조선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淑儀 文氏), 또는 ‘문녀(文女)’라고 불리던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숙의 문씨는 본래 궁녀였으나 영조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고, 영조 임금은 그녀를 정4품 소원(昭媛)으로 책봉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봉은 당시 신하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승지(承旨) 윤광의(尹光義) 같은 신하들은 영조의 어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소신료들은 영조가 문씨에게 지나치게 눈이 멀어 얼토당토않은 일을 한다고 여겼고, 그녀에게 정4품이라는 품계를 주는 것이 너무나 파격적인 승진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의혹과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후궁 책봉 문제를 넘어, 당시 세자였던 사도세자와 영조 임금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데 숙의 문씨가 연루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었습니다.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를 이간질하는 역할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 대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동안 숙의 문씨가 저질러온 죄악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대응했습니다. 이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복수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대해야 할 이유
- 육체적으로 연약합니다. 여성이 육체적으로 약합니다. 성경은 아내를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쉽게 깨집니다. 여성을 경멸하거나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세하게 다루고 무리하게 힘을 주어 던지면 깨진다는 것입니다.
‘약하다’는 것이 지적으로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 쉽게 깨진다는 것입니다.
● ‘약한 그릇’이라고 했기에 남편이 해야 할 일 (핵심 의미) 아내와 동거하고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 존경하고 귀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깨지면 남편도 깨지고 가정이 다 깨지는 것입니다. 아내를 마치 보물처럼 귀하게 다루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같은 존재입니다. 똑같이 구원받고 영생을 상속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귀히 여기는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남성들은 육체적이고 이성적이고, 세상적인 존재들입니다.
● 아브라함은 어떠한 일에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 조카와 헤어질 때, 이스마엘을 내쫓을 때), 그러나 사라가 죽을 때에 크게 눈물 흘렸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3장 8-9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 21장 11-14절: “그 일(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이 아브라함에게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대로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은 127세로 죽은 아내 사라를 위해 깊이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몇 안 되는 감정적인 표현 중 하나입니다.
창세기 23장 2절: “사라가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 땅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더니”
히브리어 원문에는 ‘슬퍼하며'(스파드, 사파드)와 ‘애통하며'(바카)라는 동사가 사용되는데, ‘사파드’는 큰 슬픔을 자제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바카’는 소리 내어 울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이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 앞에서 깊고 인간적인 슬픔을 드러냈음을 보여줍니다.
왜 아브라함은 애통하였을까요? 사라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스러움과 감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