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11절 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절.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절.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절.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절.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거류민과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류민과 나그네의 특징은 여행하고 있고 본향으로 가고 있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짐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짐이 많으면 여행하기 어렵습니다. 필리핀을 여행하면 공항에서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 짐이 적으면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사할 때도 좋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모든 물건을 다 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하고 살았는데 힘들게 살았습니다. 대전 집에 가면 어머니의 방은 아주 단출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방은 물건으로 가득합니다. 사람 딱 들어갈 정도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무엇입니까? 몸의 정욕입니다. 몸의 정욕의 특징은 교회 나오더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교회에서도 나간 뒤에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형식이고 내 마음은 벌써 세상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모가 학교 갈 때에는 새벽기도회를 빨리 마치고 얼른 새벽에 음식을 준비합니다. 무슨 반찬을 만들까 하는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모가 옷 갈아입고, 그리고 화장하고, 머리 정돈하고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차분히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정연준 장로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갑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 육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합니다. 육적인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한 2주 동안 덥기 때문에 자유롭게 새벽기도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고 가면 그때 일어나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 본다고 기도하고, 누가 보지 않는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지 목사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이기면 육적이 되고, 성령님이 이끄시면 교회 나와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행실을 선하게 가져라. 왜 행실을 선하게 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에서는 얼마든지 선한 행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는 선한 행실을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도 운전할 때에는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살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보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교회 앞마당을 보면서 비방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세탁소 건물의 주인이 주변을 청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한 행실입니다.

저는 가끔씩 느끼는 것은 이창동 감독님이 기독교의 목사님들을 영화에 등장시켜 은연중에 욕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은연중에 세상의 방송국들이 교회에 욕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폭탄은 안에서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폭탄은 교회에서 터지면 아군들이 많이 죽습니다. 그러나 폭탄은 적군에 터져야 합니다. 밖에서 터져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선한 행실을 교회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코로나 확진 지역인 것처럼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방역 준칙을 잘 지킴으로서 교회에서 욕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다 방역 대책을 세워놓고 절대 교회 내에서 마스크를 벗고 설교를 하거나, 마스크를 벗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4등한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영선수 4등하였습니다. 다이빙선수 4등하였습니다. 높이 뛰기 4등하였습니다. 탁구 4등하였습니다.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하였지만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얼마나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4등해도 대단한데, 아시아에서 4등해도 대단한데, 전 세계에서 4등하였기 때문에 대단한 것입니다.

13절.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총독이나 왕에게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공산주의 사상들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과 좋은 교류를 맺기 위한 정책이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로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나라 이 민족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나, 총독들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치 요나의 처지와 같은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은 일본 천황에게 신사 참배하라는 순사의 말을 듣고 “내 방식대로 하면 내가 참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순사가 “내 방식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쳤습니다. “왜 일본의 천황께 절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순사가 “당신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것이 일본의 법이라면 따라야겠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일본 식민지 밑에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입니다.

15절.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우리의 선한 행실로 인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는다고 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성적으로 문란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성적으로 정결하였습니다. 사회에서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기독교인들과 결혼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정결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6절.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우리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를 악하게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예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시간, 삶은 다 주인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것입니다. 죄에서는 세상으로부터는 자유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자유가 아니라 종처럼 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빛과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구원에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입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으로 나타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구원의 증거가 있습니다. 외적인 증거입니다. 성령의 외적 증거는 방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입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거룩한 행실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하여 방언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과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 행실이 잘 나타나지 않을까요? 바로 우리나라의 군대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군대는 의무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끌려오기 때문에 의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대 가기가 싫어합니다. 그러나 끌려가지 않고 자원하여 가면 기쁨이 있습니다. 군 생활 잘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신앙생활도 군대 생활입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교회에서 새벽기도하면 할 수 없습니다. 자원함으로 새벽기도해야지 일부러 교회 와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한다면 기쁨이 없습니다.

17절.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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