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행복한 신앙생활: 의무감, 사명감, 그리고 행복감 (신명기 33장 29절)


[하나님의 말씀] 행복한 신앙생활: 의무감, 사명감, 그리고 행복감

신명기 33장 29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홍철기 목사

성원교회

2004. 12.

1. 의무감의 신앙생활

우리의 신앙생활은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의무감으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공무원, 의사, 교사, 그리고 일반 회사 직원들은 직업 윤리 의식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산다면, 굳이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의무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 강제적인 의무감: 남자의 국방의 의무, 모든 국민의 납세의 의무처럼 법적으로 정해진 의무가 있습니다.
  • 자발적인 의무감: 윤리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의무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의무, 어머니로서의 의무, 자녀로서의 의무 등이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강제적인 의무감을 짊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구레네 시몬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져야 했습니다.

반면, 성도에게는 자발적인 의무감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와 같은 성도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감을 다할 때, 가정이 행복해지고, 교회가 부흥하며, 나라가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물에게도 일정한 질서와 행동 양식을 주셨습니다.

  • 미생물의 핵을 보십시오. 태양계를 보십시오. 지구 자전축이 23.5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기온 변화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 바닷가의 미물조차도 썰물과 밀물 때를 맞춰 움직이며 생태계를 유지합니다.

2. 사명을 담당하는 성도

두 번째로, 우리는 사명을 담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의무감만으로는 성도가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목회자도 의무감으로만 목회하면 교회는 성장하기 힘들고 기쁨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명감 때문에 집회를 돕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처럼 헌신하게 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매사에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됩니다.

그러나 사명감이 있으면 어떠한 시련이 와도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강재구 소령은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껴안아 부하들을 구했습니다.

원 목사님과 함께 공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랄 로버츠 대학교에 다닐 때, 겨울에 대전에서 서울로 차를 몰고 가다가 차가 논바닥에 굴렀습니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살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영순 집사님, 박춘자 권사님 (열림교회), 박동규 부목사님도 살아야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까지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나아갔지만, 10명의 정탐꾼은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3. 행복감으로 일하는 성도

세 번째로,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감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처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의무감의 성도에서, 사명감의 성도를 넘어, 행복감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해운대순복음교회 정경철 목사님은 집회를 준비하면서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조용기 목사님과 조용목 목사님께 간절히 부탁하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문둥병에 걸려 부모님 집에도 갈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생활하던 중 병자에게 전도하는 전도지를 발견하고 굴속에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침내 질병이 낫게 되었고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철 안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기도했던 그는 결국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주의 종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행복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돈, 명예, 맛있는 음식, 좋은 영화를 보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해외여행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 괴테는 “나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큰 물고기를 잡았지만 결국 다 잃고 돌아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 마릴린 먼로는 많은 물질과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돈, 쾌락, 사업, 예술 등 세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마치 돌덩이를 깎아 조각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재료로도 명작을 만들 수도 있고 졸작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구원받은 행복

진정한 행복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자연과 조화롭게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산호초는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맹그로브 나무는 해일과 재해로부터 육지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고 지구가 가벼워졌다는 것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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