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노래

저는 정서남 권사님이 주신 책 하나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마틴 슐레스케라는 분입니다. 이 사람은 일곱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학교로 손꼽히는 독일 미텐발트 국립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사람입니다.

 

가문비 나무는 저지대에서 몇년만에 서둘러 자란 일반 나무와 달리, 고지대에서 200년 300년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 나무와 견줄수 없습니다. 세포벽이 단단하고 나이테의 폭이 촙촙하고 단기간에 자란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 매력적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굽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가문비 나무가 생존하는데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울림의 축복이 있습니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들이 아주 단단해지니까요.

 

인생은 고난을 헤쳐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얻습니다. 기독교는 고난 속에서 자라난 종교입니다. 순교의 피가 우리 교회와 나에게까지 전해저 우리가 아름다운 주님의 복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가문비 나무는 옳지 않는 것과 헤어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합니다. 솔직함, 진정성, 정의, 자비가 없는 것은 울림이 없습니다.

 

노래하는 나무는 자기 생명에 해로운 것을 버립니다. 희생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죄짓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버릴 선택의 자유입니다.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취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좋은 울림이 탄생합니다. 생명의 진수가 생겨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삶은 힘들고 어렵지만, 가지는 삶보다 제한적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겠지만 그만큼 더 진실되고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언뜻보기에 늘 손해보고 더 가난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가 칭찬한 가난은 많은 선택지 중에서 자신의 소명에 해가 되는 쪽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름진 땅, 저지대의 온화한 기후에서 나무들이 빠르게 쑥쑥 자라납니다. 우리가 복으로 여기는 풍요로움도 종종 그렇습니다.

 

옛날 선조들은 산속 계곡에서 나무들을 뗏목으로 날랐습니다. 그러나 물살 센 곳에 이르면 나무 둥치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뗏목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무 중 몇몇은 청명한 소리로 울렸고 바이올린 제작자들은 그 소리를 들고 좋은 바이올린이 될 만한 나무를 가려냈습니다.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만 그루 중에 한 그루가 될까 말까합니다.

 

망치의 뭉툭한 쪽으로 톡톡 두드리며 진동을 느낄 때에 온마음을 기울여 바이올린으로 탄생한 만한 나무를 찾았을 때 바이올린 제작자의 가슴은 높이 뜁니다. 수 없는 시도 끝에 종소리와 같은 울림을 가진 나무를 발견했을 즈음 몸은 벌써 지쳐있습니다.

 

노래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불리한 조건에서 자랍니다. 노래하는 나무가 클 수 있는 지역은 알프스 산에서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고도 방위 풍향, 기후 토질등 역경을 견뎌야 하는 척박한 땅에서 울림 있는 나무들이 자랍니다.

 

노래하는 나무들은 반드시 죽음을 거처야합니다. 나무는 바람에 부러지거나 인간의 손에 베임을 당해야합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거센 물살을 경험해야합니다. 장인의 손에 가공되어 바이올린으로 울리게 됩니다.

 

열정이 없다면 기름진 땅에서 자란 이 나무를 선택하지만 울림은 좋지 않습니다. 길가에 있는 나무는 힘들이지 않고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울림이 없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깊은 산속으로 가봤자, 옛날에 우리가 다 해봤어, 체념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조심해야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을 내게 알려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 알려주겠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믿는 종교적 교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힘쓰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의하여 들어납니다. 몽상으로 좋은 나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게으름으로 좋은 나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울림이 없습니다.

 

헷세는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는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물관을 통하여 뿌리로부터 수분과 영분이 올라가고 바깥쪽 체관을 통하여 단물이 뿌리쪽으로 내려갑니다.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영양분이 전달되지 않으면 잎이 시들고 뿌리가 말라죽는 것입니다. 뿌리와 잎은 반대 방향으로 자랍니다. 한쪽은 땅속 깊이 파고 들어 가고 한쪽은 빛을 향해 뻗어갑니다. 깊은 곳에 있는 물을 찾아애는 뿌리, 빛에 열려있는 잎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나와 똑같아지기를 바라지 않고 그의 장점과 능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그냥 비추어 주십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있으면 빛을 향하여 나뭇잎이 활짝 펼치면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 싫으면 내면의 귀를 닫고 잎을 열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계시록 3장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가문비 나무는 위쪽으로만 생가지가 있습니다. 빛을 통하여 바늘 잎이 나고 자랄 수 있습니다. 빛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받은 사람만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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