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5장 25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3월 7일 금요철야
-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 가에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
- 하나님은 마음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입니다.
1) 마음을 일으키다는 말씀은 마음에 감동을 주다.
2) 마음을 일으키다는 말씀은 마음에 자극을 주다
3) 하나님은 마음을 일으키다는 말씀은 마음을 유혹하거나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본문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일으키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잘못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징계하십니다.
이사야 10: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비유를 통해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끼[앗수르]가 그것을 자르는 자[하나님]를 향하여 자랑하겠느냐? 톱[앗수르]이 그것을 움직이는 자[하나님]를 향하여 스스로를 높이겠느냐? 마치 막대기[앗수르]가 그것을 들어올리는 자를 움직이는 것과 같고, 지팡이[앗수르]가 나무가 아닌 자[하나님]를 들어올리는 것과 같으니라.”
역대상 5:26에서 BC 740년에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이 베가가 이스라엘 왕으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땅으로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첫 번째 유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7:3-6에서 BC 722년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왕이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하였고, 마침내 그의 후계자인 사르곤2세(Sargon II)가 사마리아 성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앗 시리아의 포로로 끌고 갔다고 두 번째 유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앗 시리아의 설형문자로 남겨진 비문에 의하면 사르곤 2세는 이스라엘에서 27,29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간 27,000 여명의 숫자는 3년간의 포위된 사마리아 성에서의 전쟁에서 죽은 이스라엘인의 숫자보다 적은 수이며, 이보다 먼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리 도망쳐버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수의 이스라엘 10개 지파 사람들은 당시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던 유대 왕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앗수르에 끌려간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앗 시리아 제국으로 끌려간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유대 왕국의 백성들과 달리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북 이스라엘 열 지파를 끌고 갔던 앗 시리아는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유대 백성을 끌고 갔던 바빌로니아는 페루시아 제국에 멸망했습니다. 페루시아의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귀환을 허락하였을 때에 북이스라엘 백성들도 돌아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역대기하 36장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에스라 1장 1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역대하의 제일 마지막 부분과 에스라의 처음 세구절이 동일하기 때문에 경건한 서기관 에스라가 역대기 상하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에스라는 기원전 458년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역대기 상하를 쓰는 이유는 하나님의 귀환하는 백성에게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1)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2) 죄와 주변 민족의 우상숭배에 대한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역대하 36:14-21 참조).
역대상 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여러지파중에서 세 지파인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 므낫세 반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의 아들,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방패와 칼을 들고 활을 쏘는 데 능숙하고 전쟁에 능숙한 용감한 군인 4만 4천 7백 60명을 거느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 낙타 5만 마리, 양 25만 마리, 나귀 2천 마리, 그리고 그들의 사람 10만을 빼앗았습니다. 그 결과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 가에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
- 하나님은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1961년 생으로 80학번인데, 일년을 재수하여 81학번되었습니다. 학교내 고시원에서 생활하기 위하여 학교에서 하는 일들을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근로장학생) 저녁 오후에 대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해야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읽는 책으로 장길산(황석영), 한강, 인간시장, 태백산맥, 등을 읽었습니다. 가서 책을 빼서 학생들에게 제공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삶을 그리고 있는 책들은 다 장편소설과 같고 연속극과 같은 것을 느낌입니다. 책을 통하여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1)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심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예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안요한목사님게 구약성경 320페이를 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둘째로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라고 나옵니다.
누가복음 20장 38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라고 나옵니다.
나의 삶과 사모의 삶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진실하게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저는 기독교에서 무당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제일 역겹게 생각합니다. 어떤 신령한 권사님이, 능력받았다는 목회자 분들이 신령한 것 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보기도는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야고보서 2장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살아 있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행동으로 실행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결국 죽은 믿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마음을 일으키다라는 눈을 뜨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고 죽어있는 영안을 살아있는 영안으로 바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력은 2.0입니다. 그러나 독수리의 시력은 4.0에서 8.0사이입니다. 인간은 100미터 거리의 물체를 구분할 수 있지만 독수리는 400미터에서 800미터의 거리도 선명하게 볼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야는 340도입니다. 인간은 180도가지 볼수 있습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상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먹이를 저확하 구분하고 추적할 수 있습니다. 몽골에서 독수리를 훈련할 때에 눈을 가리고 훈련합니다. 그 이유는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눈을 열어주면 힘차게 올라가서 먹이를 낙아체서 주인에게로 가져옵니다.
말도 경주할 때에 눈을 가립니다. 경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합니다. 가면의 생긴 모양에 따라 각기 용도가 다르다. 물론 말의 나쁜 버릇을 교정하는 데는 가면뿐만 아니라 여러 보조 장구들이 있다.
눈가개는 말의 공포심을 없애 줍니다. 말의 눈은 3백50도 정도로 아주 넓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접근하는 물체를 볼수 있습니다. 말은 큰 체구에 걸맞지 않게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사람도 마귀의 속임수에 죄를 짖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손이 없어서 돕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죄악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게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일으키셨다는 것은 그 마음을 눈을 제거하여 주셔서 사물을 정확하게 볼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